살찐 초는 제 욕심에 스스로 자진한다

2009.02.12 13:04:00


글을 읽는다는 건 사람을 읽는 것이기도 하다. 글속엔 그 사람의 생각과 고민과 체취가 묻어나기 때문이다. 그러나 글을 쓴 사람의 사상과 행동이 어긋나는 경우도 흔하다. 글을 통해 바름을 이야기하면서 행동은 그름의 길로 나아가는 사람도 많다.


미국의 대표적인 소설가 나다니엘 호손의 작품 중 <큰 바위 얼굴>이라는 글이 있다. 중학교 교과서에도 실렸던 작품이다. 작품 속에는 한 시인이 등장한다. 세상에 이름을 드높인 그 시인을 두고 사람들은 큰 바위 얼굴을 닮았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고대한다. 주인공 어니스트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실상 그의 시는 사람들의 심금을 울리고 감동시켰지만 시인은 자신의 생활이 자신의 사상과 일치하지 못하고 그저 천박한 현실 속에 살 수밖에 없었다고 고백한다. 자신의 시와 행동이 서로 달랐기에 시인은 괴로워했고 그런 자신을 원망하기도 했다.


말이 거창했나 보다. 허나 호손의 <큰 바위 얼굴>을 들먹인 이유는 어떤 사람을 이야기하기 위해서다. 1980년대 민중 판화가로 이름을 떨쳤고 지금은 생명과 생태 판화가로 유명한 이철수 판화가다.


난 그를 모른다. 만나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의 판화들은 책과 이런저런 잡지를 통해 줄곧 접해왔다. 이철수의 판화들은 단순하다. 아니 단순하기보다는 단아하고 선적이다. 그리고 상징적이고 현실적이다. 판화의 그림들이 현실적이라 말하는 것은 어쩌면 그의 생활과 연관이 깊다 할 것이다.

그는 지금 제천의 한 농촌에서 사랑하는 아내와 농사를 지으면서 판화 작업을 하고 있다. 그래서 그의 판화에는 낫 한 자루만 덩그러니 그려져 있기도 하고 잡초나 똥이 그려져있기도 했다. 자신의 생활 속에서 소재를 취한 그림들이 대부분이다. 그러나 이철수 판화의 맛은 그림에도 있지만 글에 더 있다는 느낌을 자주 갖곤 한다.


판화라는 이름 속에 글이 묻히기도 하지만 판화 속에 새긴 글들은 시이면서 짧은 수필이기도 하다. 이따금은 더럽고 냄새나고 썩어가는 현실에 따끔하게 충고를 해주는 침이기도 하다. 그래서 그의 그림과 글의 어울림을 찬찬히 한 자 한 자 뜯어먹다 보면 이철수가 보이고 이철수가 생각하는 것들이 보인다. 그의 삶과 생각과 말의 행동들이 보인다.

촛불은 자기 연민을 알아서,

저를 태우면서 때로 조용히 눈물을 흘린다. -초의 눈물-

살찐 초는, 제 욕심의 늪에 뿔꽃을 빠뜨려 스스로 자진한다.

욕심의 운명은 그렇게…… 어둡다. -초의 욕심-


초라는 놈은 스스로를 태워 세상을 밝혀주는 존재이다. 가끔은 그 태움이 아프고 서글퍼 눈물을 밖으로 주르르 흘린다. 그래도 초는 자신의 불을 꺼트리지 않는다. 작고 연약한 초이지만 자신을 태워야 어둔 세상에 그나마 작은 빛이나마 주어 밝게 함을 알기 때문이다.


그런데 살찐 초는 절대로 눈물을 밖으로 내보내지 않는다. 욕심을 채우기 바빠 스스로 촛농을 가두어 자진하게 한다. 살찐 초는 자신만을 밝히려 하지 타인을 밝히려 하지 않는다. 그 욕심 많음이 결국 자신을 죽게 한다.


세상에는 두 개의 초가 있다. 자신을 태워 어둠을 몰아내려 하는 초와 자신을 태우는 흉내만 내면서 자신만을 위해 살아가는 초다. 어쩌면 작년 온 나라를 덮었던 작은 초들은 앞의 초이고 많은 것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더 이상 내놓기 실어 내놓은 것마저 거둬가는 자들의 욕심이 뒤의 초가 아닐는지 싶다. 어쩌면 작가가 두 개의 그림을 그려놓은 것도 그런 우리 사회의 단면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자 한 것은 아닐지 싶다.

이철수의 판화는 세상에 대한 많은 관심이 있다. 인간에 대한 따스한 시선이 있다. 불의에 대한 비판의 시각도 있다. 불교의 선적인 그림과 글을 통해선 인생에 대한 성찰을 드러내기도 한다. 봄꽃을 바라보며 판화 위에 올려놓곤 세상 구경 그만두고 꽃 앞에 서고 싶다고도 한다. 그러면서 꽃이 화사하고 고운 이유는 뿌리에서 가지 끝까지 자신을 온통 긍정하느라 꽃 색이 붉고 곱다고 말하기도 한다.


그의 단순하면서도 단아한 그림과 짧지만 시적이면서도 촌철살인의 느낌까지 들게 하는 글을 대하다 보면 마음의 온도는 무겁기도 하고 따스하게 온기를 느끼게 하기도 한다. 혹 하루하루 생활이 힘들고 지친 이가 있으면 작지만 쉼을 줄 수 있는 이철수의 나뭇잎 편지인 <있는 그대로가 아름답습니다>라는 작은 의자를 권하고 싶다. 강팔라진 세상살이에서의 외로움을 달래줄 수 있을 것이다.
김 현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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