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가출하지마. 가출하면 안 돼. 알았지?”
노나미 아사의 <엄마의 가출>이라는 소설 제목을 보고 아들이 엄마에게 하는 말이다. 아빠가 <엄마의 가출>이라는 제목의 소설을 읽는 모습을 보고 혹 엄마도 가출을 하면 어쩌나 하는 염려가 들었나 보았다.
아이들에게 엄마의 존재는 자신을 낳아준 그 이상이다. 아빠가 조금 떨어진 상태에서 든든하게 바라봐주는 존재라면 엄마는 늘 마시는 산소 같은 존재이다. 항상 있기 때문에 소중함으로부터 벗어난 것처럼 보이지만 잠깐만 없으면 소중함을 이내 깨닫게 되는 존재, 그게 엄마이다.
아무 이유 없이 길을 떠나는 사람은 없다
아무 이유 없이 길을 떠나는 사람은 없다. 목적 없이 떠난 길이라도 이유는 다 있다. 노나미 아사의 열두 개의 소설들은 모두 그 떠남으로 이루어져 있다. 소설은 여행으로 시작된다. 소설 속엔 일본 전역의 유명한 관광명소가 주요 배경으로 등장한다. 조금은 특이한 소설구조로 열두 편의 소설이 다른 내용이면서 같은 구조로 이루어졌다.
뭔가 사정이 있는 여자가 있다. 소설 속에서 그녀들은 한 가정의 주부이며, 아내이며, 어머니다. 그런데 ‘그녀’들이 어느 날 집을 떠나 길을 나선다. 그것도 동행 없이 모두 혼자 떠난다. 그녀들이 안고 있는 문제는 다양하다. 남편 문제, 시어머니와의 문제, 자식 문제, 자신의 문제 등 일상에서 흔히 일어나는 이야기들을 여행이라는 테마를 가지고 이끌어가고 있다. 특히 가정 있는 남녀의 불륜 문제를 다룬 이야기(웃는 여자, 엄마의 가출, 마지막 거짓말)를 통해 현대 여성들의 미묘한 심리를 드러내며 여성에 대한 마음을 읽게 하고 있다.
<웃는 여자>에선 남편의 불륜 상대를 찾아 나선다. 남편과 별거 생활을 한 지 5년 정도 되는 그녀, 그녀는 남편의 여자를 찾아 집을 나선다. 그녀가 남편의 여자를 찾는 이유는 여자의 상판대기라도 보고자 한 것이다. ‘얼굴 한 번 보자. 남의 남편 가로채간 여자는 도대체 어떻게 생격먹었나….’ 하는 일종의 자존심과 복수심이다.
그러나 이야기는 엉뚱하게 흘러간다. 여자의 보모를 만나 고래고래 소리지르고 딸을 어떻게 키웠느냐고 욕설이라도 퍼붓고 싶은 충동을 겨우 진정시킨 그녀는 여자의 부모와 남편의 아이를 임신한 여자가 근무하는 회사를 찾아가면서 마음의 동요를 일으킨다. 아름다운 자연과 그 자연을 닮아 순박하고 따스한 여자의 부모와 이야기를 하면서이다.
그녀는 여자의 엄마에게 이상한 안도감과 친밀감을 느끼고 결국은 본래의 목적은 잊어버린다. 그리곤 여자의 부모의 권유대로 그곳에 며칠 묵고 갈 마음을 품게 되고 남편을 조금은 이해하게 된다. 그리고 잃어버리고 살았던 인간에 대한 정을 찾는다.
조금은 엉뚱한 결말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노나미 아사의 열두 편의 소설의 결말은 새로운 깨달음과 따스한 이해이다. 자기 생각에 갇혀 팍팍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본래의 자리로 찾아간다는 내용이 <엄마의 가출>에 드러난 소설들의 특징이다. 그중에 어린 나이에 죽은 아들을 추모하기 위해 여행을 떠나는 이야기 <청년의 보답>은 사람 사이의 위로란 게 어떤 것인가 보여주는 소설이다.
그녀(소설 속 인물들은 모두 이름 대신 ‘그녀’라는 지칭으로 등장한다.)는 어린 아들을 세상에서 떠나보내고 허공에 뜬 구름처럼 살아간다. 몇 년이 지나도 아들에 대한 마음은 지워지지 않고 상처만 쌓여간다. 그래서 견디지 못한 그녀는 차를 빌려 전국에 있는 사이노카와라(부모보다 먼저 죽은 아이들이 오는 곳)를 순례하기로 하고 사도의 사이노카와라를 찾는다.
렌터카를 타고 사이노카와라를 가는 도중 히치하이크를 하는 한 청년을 태우게 된다. 청년 또한 사이노카와라를 찾아간다. 차를 빌려 타면서도 조금의 고마움도 표시하지 않은 청년의 뻔뻔함에 불쾌감을 갖는다. 그러다 이야기를 나누면서 청년 또한 자신보다 더 큰 아픔을 지님을 알게 된다. 청년은 1년 전 자신을 뺀 가족, 부모님과 남동생, 여동생을 교통사고로 잃게 된 것이다. 그래서 청년도 그녀와 마찬가지로 가족을 대표해서 사도 모두를 돌아보는 중이었다.
두 사람은 우연한 만남과 여행 속에서 같은 아픔을 인식하고 서로의 상처를 치유할 수 있는 힘을 준다. 그것도 예견되지 않은 위로로 말이다.
“아들 이름이 뭐였어요?”
“유키. 살아 있다면 올해 열다섯 살이 되었을 거야.”
청년은 “열다섯이라.” 하고 중얼거리면서 바다를 향해 두세 걸음 옮기는가 tolv더니, 다음 순간 “유키!” 하고 온 세상이 떠나갈 정도로 크게 아들의 이름을 불렀다. 그녀는 심장이 튀어나올 것 같은 충격을 느꼈다.
지금까지 아들의 이름을 이렇게 큰소리로 들어본 적이 있었던가?
“걱정하지 마, 유키! 엄마는 잘 계신다.”
청년의 호리호리한 뒷모습이 바람에 휘날리는 듯 했다.
청년의 행동에 고마움을 느낀 그녀는 가슴에서 눈물이 났다. 그런 그녀에게 청년은 한 마디 한다. 차를 태워준 데 대한 보답이라고.
사랑하는 가족을 잃은 아픔과 슬픔은 그 누구도 대신할 수 없다. 시간이 흘러가면 잊혀지는 경우도 있지만 그렇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결국은 자신의 힘으로 극복해야 한다. 하지만 그게 쉽지 않다. 헌데 누군가가 뜻하지 않는 방법으로 힘을 줄 수도 있다. 청년이 그녀에게 주는 것처럼 말이다.
노나미 아사의 <엄마의 가출>에 등장하는 주인공들은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주부들이다. 그녀들은 작은 일에 행복해하면서도 상처 받는 마음을 위로 받기를 원한다. 그런데 우리들은 그런 마음들을 헤아리려고 하지 않는다. 어쩌면 그건 내 마음의 상처가 크고 막혀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노나미 아사는 여행이란 하나의 콘셉트를 통해 그 상처들을 어루만져주고 있다. 아름다운 풍경과 순수한 사람의 마음을 절묘하게 조화시키면서 말이다. 그래서인 소설을 읽다보면 여러 문제를 바라보면서도 가슴이 따스해짐을 느낄 수 있다. 아마 독자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