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 직불금, 안 받았어도 명단보고 하라니

2009.04.09 11:38:00

며칠째 보았던 같은 제목의 엑티브 포스트 내용이 또 보인다. 예사로 보았던 내용이 예외라고 여겼던 나에게도 해당이 된다는, 그래서 당장 확인서를 제출하라는 다급한 연락이다. 내용은 이렇게 자세하다.

- 만약 미기재 하실 경우, 미기재 사유 반드시 작성해 주셔야 합니다.
- 배우자 없으신 분은 미기재 사유 미혼이라고 기재해주시고
- 직계존속의 경우 주민등록상 세대를 달리한다면 미기재 사유에 세대를 달리함이라고 기재해 주시고,
- 직계비속의 경우 세대를 같이할 경우 작성해주시고
- 세대를 같이 하더라도 1990년도 이후 출생일 경우 미기재 사유에 1990 년도 이후 출생이라고 기재해 주시면 됩니다.
- 바쁘시더라도 오늘까지 꼭 좀 부탁드립니다.
* 붙임1 미신고자 명단 작성요령 1부, * 붙임2 미신고자 확인서 1부

미신고자 확인서라는 양식을 보니 본인과 배우자는 물론 직계존속, 직계비속의 주민등록번호, 주소까지 적도록 되어 있는데 미기재이면 그 사유를 낱낱이 적도록 예시하고 있다. 사망이면 사망, 미혼이면…

쌀 직불금 부당 수령 공무원에 대한 보도가 큰 물의를 일으키며 온 세상을 떠들썩하게 한 후 잠잠하던 학기 초에 쌀 직불금과 관련된 보고 때문에 신고를 당부하는 내용이 교내 전산망을 통해 여러 번 연락이 왔지만 대다수 교직원들이 “나와는 아무런 관계없는 일이니 신고 같은 건 할 필요가 없다.”라고 판단했으며 전국적으로 대부분 같은 인식을 가졌을 것이다.

며칠 후 ‘쌀 직불금 미신고자 명단 작성' 대상자가 모든 교직원이라는 내용이 다시 올라왔어도 쌀 직불금 수령 대상이면서 직불금을 받은 사실이 있는 사람이나, 수령 대상자이지만 직불금을 받지 못한 사람이 보고 대상인줄 알았다. 그래서인지 아직도 ‘’나와는 무관하며 명단 제출 대상이 안 된다."라고 믿고 있는 몇몇 사람에게는 아침에 다시 제출을 독촉하기에 바쁜 분이 계신다.

조상으로부터 밭 한 뙤기라도 물려받은 사람, 스스로 농사일이 좋아 손바닥만한 밭을 가지고만 있었지 쌀농사와는 전혀 관계없는 사람도 보고 대상인 줄 아는 사람이 있다면 정보력이 뛰어난 열린 공무원이다. 입에 톡 털어 넣어 보려 한들 농토 1㎡도 없고 그래서 쌀 직불금 받을 처지가 안 되는 전혀 무관한 사람은 아예 보고 대상이 되지 않는다고 믿고 있었다. 심지어 행정실 직원들마저도 조사 대상 여부를 정확히 판단하지 못했던 것이 아닌가? 아니면 윗선에서 보고 대상 범위를 연거푸 수정해 다시 보고하라고 귀찮게 한 것은 아닌가?

공직생활을 하다보면 수십 년 똑 같은 보고를 해마다 하라는 전달을 받고 반복해 기록 제출하는 문서가 있어 시급한 개선이 요구된다. 학교에서는 매년 주당 몇 시간을 가르치고 호봉은 얼마이고 출신은 어떻고 잡무는 몇 시간…이라고 적어 내는 양식 말이다. 변경된 내용만 새로 입력하도록 왜 고치지 못하는지. 

이런 지경에 이번 <쌀 직불금 수령 미신고자 명단보고> 사태를 겪어 보니 잘못된 제도 입안과 그 처리과정의 미비점이 얼마나 불편부당한 과잉 행정실태이며 국가예산 낭비인지 확연히 드러난다. 특히 죄 없는 사람들의 주민번호와 주소 등 가족 사항, 미제출에 대한 이유까지 알뜰히 적어내도록 만들어 놓은 양식을 보면 대부분 개인 정보유출을 염려하며 괜스레 불편한 심정이 되는 것이다. 빈대 한 마리 잡기 위해 초가삼간 아니라 온 마을을 불태우는 광경을 보는 듯하다.

조사하는 이나 보고하는 공무원 모두의 시간적 정신적 노력의 낭비인 점을 직시하여 다시는 '쌀 직불금 미신고자 명단 작성 사태'와 비슷한 행정은 일어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장희 안심중학교 정년퇴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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