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길애 시인의 첫 시집 <바지락이 해를 물고 있다>

2009.04.20 11:01:00



산야에 봄꽃들이 길손들의 눈을 끈다. 텃밭 귀퉁이 심어 놓은 수선화도 화사하게 꽃을 피웠고, 산의 진달래도 연붉은 꽃잎을 물고 나왔다. 일찍 핀 목련은 어느새 툭툭 생명을 내리고 있다. 그렇게 꽃은 두근거림으로 생명을 몰고 왔다 두려움으로 생명을 거두어가기도 한다.

시인에게 첫 시집은 두려움이고 두근거림이다. 그동안 가슴속에 간직해둔 비밀을 낯선 이들에게 드러내놓는 것은 두려움과 떨림의 교차로와 같다. 중년의 나이에 첫시집 <바지락이 해를 물고 있다>를 김길애 시인도 그 떨림과 두려움이 있었나 보다. 말머리에 누군가의 눈을 바라보며 말을 해야 한다는 것이 두렵고 어색한 날들이었지만 이제 누구의 눈이라도 마주 바라볼 수 있을 것 같다고 고백하고 있는 걸 보면 말이다.

뻘바깥으로 밀려나온
바지락이 해를 물고 있다

가슴이 훈훈해지길 기다리고 있다.
- ‘무의도’ 모두

군더더기가 없는 세 줄짜리 짧은 시이지만 많은 함축성을 지니고 있다. 그리고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바지락은 스스로 나온 게 아니다. 외부적인 힘에 의해 밀려나와서 해를 바라보고 있다. 팍팍한 가슴 훈훈해지길 기다리면서 말이다.

개펄은 바지락의 생명의 터전이다. 그런데 매립과 개발과 오염으로 개펄은 죽어가고 있다. 개펄의 죽음은 그곳에서 살아가고 있는 생명의 죽음이기도 하다. 바지락은 그 팍팍한 현장에서 가슴 훈훈해지는 무언가를 기다리고 있다. 사람도 마찬가지이다. 훈훈한 무언가가 없는 세상에서 따스한 희망의 해를 기다린다. 바지락처럼 말이다. 그러나 우리들이 살아가는 세상은 모래밭과 같다. 바람 불면 날아가는 모래밭.

나의 땅에는 모래들만 삽니다
바람이 불면
땅 한 조각이 끌려갑니다
내 땅을 밟고 지나가는 바람
그때마다 땅이 웁니다
아무 것도 키우지 못했습니다
내 땅은 황무지입니다
타인을 위해
출입 금지 팻말을 세웁니다
-‘울타리’ 모두

사람들 누구나 마음의 땅을 가지고 있다. 단단한 땅, 물렁물렁한 땅, 시인처럼 모래땅. 어떤 땅을 가지고 있느냐고 중요한 건 아니다. 그 땅에 무엇을 심고 그 땅을 가지고 무엇을 했느냐가 중요한 것이다. 나만을 위한 땅을 가진 자는 결국 나만을 위한 울타리를 치지만 타인을 위한 땅을 가진 자는 이웃을 위한 울타릴 세운다. 시인은 지금까지 자신만의 모래밭 같은 울타리를 걷어내고 남을 위한 울타리를 세우고자 한다. 이는 하나의 반성이고 깨달음이다.

그러나 그 반성은 자신의 내면에만 머물러 있는 게 아니다. 안에서 밖으로 시선을 돌리기도 한다. 지난 촛불 집회의 모습을 목련을 통해 노래한다. 하얀 목련과 붉은 촛불, 서로 조화롭지 않을 것 같은데 시인은 잘 끌어내고 있다.

일제히 피워올리는
촛불

아슬한 살얼음건너
지붕위까지 올려보내는
소리

창틀사이로
가지 끝에 웃음을 매달아
밀어넣는다

해마다 피어나는
촛불
하나, 둘, 셋… 아기들 목청
- ‘목련’ 모두

그날, 온 나라엔 촛불꽃이 피었었다. 어느 한 사람이 피운 꽃이 아니라 아버지, 어머니, 심지어 어린아이까지 꽃을 들었다. 이들의 꽃은 지붕 위로 올라가고 웃음을 매달았다. 그러나 그 촛불꽃은 짓밟히고 쫓겨났다. 그러나 그 꽃은 지금도 타오르고 있다. 하나, 둘, 셋… 꺼지지 않고 아기들 목청 같은 순수함으로 타고 있다. 시인은 그날의 촛불의 모습을 하얀 목련꽃에 비유하여 노래하고 있다.

시인의 관심은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현실의 부조리한 모습을 풍자적 수법으로 노래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 방법은 무척 완곡하다. 그리고 단순하다.

아들녀석 바지주머니에
돈든 것을 모르고
세탁기에 빙빙 돌렸다

만 원 지폐 한 장
천 원 지폐 한 장

눈 깜짝하지 않고
돈세탁을 하고 말았다
-‘돈세탁’ 모두

시의 관심은 세상에 대한 관심이다. 김길애 시인은 자신의 첫 시집에 다양한 세상의 관심을 실어놓았다. 그리고 내면의 모습도 올려놓았다. 이것뿐만 아니다. ‘행복마차’나 ‘웃음소리’란 시편을 통해선 가난하게 살아가는 서민들에 대한 따스한 애정과 관심을 보여주고 있다.

요즘 현대시들을 보면 난해한 언어를 늘어놓아 무슨 말을 하는지 알 수 없는 경우가 많다. 그런 면에서 김길애의 <바지락이 물고 있다>는 조금은 편안한 시다. 편안하다고 해서, 난해하다고 해서 그 문학성이 있나 없나 따질 수는 없지만 시란 게 평범한 독자들이 읽어서 무엇을 말하려고 하는지 공감은 해야 한다고 본다. 물론 그 안에 시인이 말하고자 하는 의미를 잘 형상화돼야 하지만 말이다.

김 현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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