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병관 선생님이 들려주는 DMZ 이야기

2009.05.23 10:01:00




“둘로 나뉜 산과 들.
서쪽 임진강 어귀에서 동해 모래밭까지
끝없이 이어지는 철조망 249.4㎞
산과 들은 철조망 따라 남북으로 나뉘고”

책장을 펼치면 많은 생각을 주는 짧은 글이 읽는 이를 맞이한다. 그리고 한 장을 더 넘기면 비무장지대의 눈 덮인 모습의 사진이 눈길을 잡아맨다. 눈 덮인 산비탈, 작은 잡목들은 마른 몸짓으로 죽은 듯 있는데 푸른 몸짓으로 우뚝 선 소나무 한 그루가 쓸쓸하게 서있다. 그 소나무는 지난날 이곳, 이 땅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들려주려는 모습처럼 보인다.

DMZ. 비무장지대. 바쁜 일상에 쫒기다 보면 먼 나라의 일처럼 잊혀졌다. 무슨 일이 터지면 생각나는 곳. 그곳에선 지금도 남과 북의 젊은이들이 청춘을 보내고 있다. 서로의 가슴에 차디 찬 총부리를 겨누면서. 그러나 의외로 사람들은 그곳을 모른다.



책(울지마 꽃들아 / 최병관 지음)을 읽고 사진을 보다가 아이들에게 보여주며 DMZ를 아냐고 물으니 모른다 한다. 그럼 비무장지대란 말 들어보았냐 하니 들어본 것 같다고 한다. 몇 년에 보았던 영화 ‘공동경비구역 JSA’를 이야길 해주니 ‘아하’ 한다. 눈꽃 핀 철조망의 사진을 보여주니 아름답다고 말한다. 폭격을 맞아 부서지고 녹슨 채 잡목 속에 엎드려 있는 경의선 열차를 보여주니 몇 몇 아이들이 ‘빨리 통일이 됐으면 좋겠어요.’ 한다.

책속의 사진들은 한 폭의 수묵화처럼, 풍경화처럼 아름답기도 하다. 적막하게 펼쳐진 북녘의 산하, 우거진 숲을 모두 밀어버린 남과 북의 완충지대는 한가한 목장 같은 느낌마저 준다.

소리 없는 그곳, 목장 같은 그곳을 철조망이 인간의 발길을 잡아 둔 사이 그곳엔 새로운 생명들이 피어나고 생겨났다. 전쟁의 그림자는 옛 추억마냥 흘러가고 흰금강초롱꽃, 복주머니란, 패랭이꽃 등 희귀식물들이 고운 자태를 드러냈다. 멸종 위기에 놓인 산양, 두루미, 독수리 등 희귀 철새들도 이곳에선 자기 세상이고 자유의 공간이다. 꽃과 동물들의 천국 아닌 천국이 된 비무장지대, 시간이 멈추어버린 이곳엔 전쟁의 상흔들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시간이 멈춘 저 너머.
끊어진 철길, 사라진 마을, 이름 없는 무덤
발길 끊긴 철조망 너머 비무장지대에
가슴 아픈 전쟁의 상처는 아직 그대로”

비무장지대는 50년 동안 시간이 멈추어버린 곳이다. 시간의 멈춤 속에서 남과 북은 대결과 화해의 과정을 반복하고 있다. 책장을 한 장, 한 장 넘기다 보면 전쟁의 격전지였던 백마고지엔 녹슨 탄피들이 여기저기 널려 있다. 임진강을 가로지르던 경의선 철교는 폭격에 의해 기둥만 덩그러이 남아있다. 그 주위엔 아이의 깜장 고무신이 있고 이빨 빠진 하모니카도 널려 있다.

한때 사람들의 숨결과 땀이 어울렸던 면사무소, 물래방앗간이 있는 시골의 작은 마을엔 이제 사람이 없다. 그저 총탄 자국이 선명하게 가슴 아픈 전쟁의 흔적들만이 아직도 남아 있다. 저자는 그런 모습을 아름다운, 그래서 더 아픈 사진으로 담아놓았다.




그런데 저자는 이곳을 2년에 걸쳐 450일 동안 누비면서 사진을 찍은 이유는 무엇일까? 그리고 어린이들을 위한 책, <울지 마, 꽃들아>를 세상에 내놓은 이유는 무엇일까? 그건 단순하다. 인간의 발길이 닿지 않는 곳의 아름다움을 전해주기 위함도 있고, 전쟁의 상흔을 보여주기 위함도 있지만 비무장지대의 사진을 통해 자라나는 어린이들에게 평화와 생명의 소중함을 일깨워 주고 싶기 때문이란다.

지난날의 아픔과 역사의 모습을 통해 평화의 중요성과 생명의 소중함을 전해주고 싶어서란다. 그런데 저자는 전하고자 하는 것을 설명을 하지 않는다. 사진 한 장과 서정적이고 시적인 짧은 언어를 통해 스스로 생각하게 할 뿐이다.

한국전쟁이 끝난 지도 50년이 넘었다. 그러나 그 아픔의 상흔은 아직도 지속되고 있다. 전쟁은 잠시 멈췄지만 아직도 우린 그 전쟁 속에 살아간다. 다만 그걸 잊고 지낼 뿐이다. 그렇다고 <울지 마, 꽃들아>가 단순히 전쟁의 상흔을 보여주고자 쓴 책은 아니다. 저자가 말했듯 지난 역사와 문화가 고스란히 묻혀있는 거대역사박물관인 비무장지대의 모습을 통해 우리 아이들이 생명과 평화의 의미를 생각하는 계기를 주기 위해서다. 그래서인지 ‘비무장지대’란 단어는 어쩌면 우리들의 꿈인 통일의 모델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어떤 이념에도 물들지 않은 아이들의 순수한 영혼처럼 이곳은 자유롭고 평화로운 생명의 땅이기 때문이다.
김 현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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