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심시간이다. 점심을 먹고 자리에 앉아 쉬고 있는데 몇 녀석이 우르르 몰려오더니 뭔가 내민다. 입가엔 웃음이 가득하다.
“선생님, 이것 좀 봐주세요.”
“그게 뭔데?”
“흐흐, 이거 우리가 쓴 시거든요. 우리 반 애들 여석 명이 썼어요. 누가 잘 썼는지 읽어 보시고 등수를 매겨주세요.”
녀석이 내민 종이를 펼쳐보니 연필과 볼펜으로 시가 적혀 있다. 시를 슬쩍 훑어보면서 ‘이 놈들 엉뚱한 녀석들이네. 갑자기 웬 시야. 좋아하지도 않으면서.’ 이런 생각을 속으로 하고 있는데 예의 종이를 내민 녀석이 말한다.
“여기 장난 아니에요.”
“맞아요. ‘야자시간’를 가지고 저희가 심혈을 기울여 쓴 거에요.”
“네, 그러니까 꼼꼼히 읽어보고 누가 잘 썼는지 이야기 해주시고, 왜 그런지도 알려주셔야 해요. 이따 5교시 저희 반 수업이니까 그때 꼭 말해주세요. 히히.”
그리곤 밖으로 나가버린다. 무슨 내기 한 거니? 하고 물어도 그냥 실실거리기만 한다. 뒤꽁무니만 내놓고 가는 녀석들에게 장난스레 ‘짜식들, 망둥이처럼 찾아와서 숙제만 내주고 가네.’ 했더니 손을 흔들며 ‘이따 뵈요.’ 한다.
5교시가 시작하려면 20분 정도 남았다. 세수를 하고 와서 녀석들이 놓고 간 ‘시’라는 것을 읽어보았다. 그다지 잘 쓰진 못한 시들이지만 자발적으로 자신들의 생각들을 표현했다는데 의미가 있었다. 그것도 밤늦은 시간에 공부하는 자신들의 생각을 표현했다는데. 아이들의 찬찬히 읽었다. 웃음도 났지만 시 제목들이 우선 마음을 짠하게 했다. 아이들이 쓴 시의 제목을 보면 이렇다.
<어둔 터널 속의 우리들>, <그리운 날에>, <같은 일상>, <우리들만의 세상>, <늦은 시간>, <얼굴들>이다. 아이들의 시는 텁텁하기도 하고 동시 같은 냄새도 났다. 그래도 자신들의 마음을 솔직하게 표현하려 한 모습이 보였다. 참고로 이 아이들은 글쓰길 좋아하는 아이들은 아니다. 어쩌다 저희들끼리 의기투합해서 시 쓰기를 하고 누가 잘 썼나 시합을 한 것 같았다. 아이들의 시를 한 번 읽어보자.
-어둔 터널 속의 우리들-
종소리가 우리를 의자에 앉힌다
운동하는 사람들 하나 둘 모여들고
우리들의 짧은 여행은 시작된다
까무잡잡한 배경을 옆으로
노오란 달빛 어스름으로 사라지고
잡곡 같은 것들을 비추면, 우리들은
그것을 응시한다
시계 바늘 10시를 가리키면
선생님의 말소리 반갑게 들리고
밀물처럼 우리들은 빠져나간다
밤바람이 데려다 주는 곳에
도착을 하고 나면
터널 여행은 짧게나마
끝이 난다 매일 반복되는 여행이
아이들은 시를 쓰고 자신의 이름을 적지 않았다. 아마 선입견을 주기 싫어서인 것 같다. 5교시 수업 시간. 아이들의 시를 가지고 괜찮은 시 순서로 제목을 읽어주었다. 그리고 쓴 사람한테 자신의 시를 읽게 했더니 교실 속의 아이들은 모처럼 문학의 향연 아닌 향연에 즐거워한다. 이렇게 각자의 시를 찾아 모두 읽게 했다. 아이들은 중간에 ‘우~~’ 하는 소리를 내기도 하고, ‘와~~’ 하는 소리로 내며 박수를 쳐준다. 그럼 다른 시 하나 더 보자.
-그리운 날이 오면-
달빛 머금은 저 하늘 아래 사알짝 보이는 빨간 넥타이, 회색조끼 아이들
무엇을 쓰는지 연필을 쥐어 잡고 흔들흔들
사뿐히 고개를 숙이고 조는 저 등짝
집중이 안 되는지 이어폰만 만지작 만지작
야자 끝나는 날이면
졸업을 앞두고 지금을 생각하는 날이면
그리고 고등학교의 추억을 마치는 날이오면
시원하겠지만 섭섭하겠지만
그래도 피곤해 지쳐있던 우리들의 오늘이
그리워지겠지 그러겠지
아이들의 공부하는 모습, 집중이 안 돼 이어폰만 만지작거리며 시간을 보내는 아이들의 모습이 선명하다. 그런 야자시간을 어떤 아이는 이렇게 표현하고 있다.
“오늘도 내일도 또 모레도 / 매일 같은 반복의 일상들 / …… / 공부하는 애, 잠을 자는 애, 딴짓하는 애, 가지각색이지만 / 똑같은 생각 똑같은 처지 / 같은 마음 같은 행동 / 그렇게 반복되는 우리들의 하루, 하루”
어떤 아이는 “우리의 미래를 위해 / 우리는 언제나 그렇듯 / 오늘도 우리들만의 세상을 기다린다” 라고 말하며 자신들이 꿈꿀 세계를 소망한다.
아이들은 각자의 글들을 읽으며 부끄러워하면서도 즐거워한다. 그리고 이런 표현, 이런 생각들이 참 좋다 칭찬 한 마디에 어깨를 으쓱해 보이기도 한다.
이 아이들은 오늘도 지친 어깨를 이끌고 딱딱한 나무 의자에 앉아 책을 보기도 하고, 꾸벅꾸벅 졸기도 하고 그럴 거다. 그러다 중간에 쉬는 시간이면 나면 몸매 관리해야 한다며 줄넘기를 가지고 우르르 밖으로 나간다. 그 시간이 아이들을 지탱시켜 주는 시간인지도 모른다. 짧은 시간의 휴식, 그 휴식의 달콤함을 알기에 아이들은 하루를 참고 이겨내는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