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승의 날에 받은 어린 제자의 편지

2009.05.30 08:16:00

스승의 날을 맞아 아침 일찍 내 책상 위에 몇 년째 잊지 않고 보내오는 화분이 놓였다. 반갑고 고맙지만 부담스럽고 낭비라는 생각이 들어 전화로 “고맙네. 올해가 마지막이야. 내년엔 내가 없으니 절대 보내지 말게”라고 당부하는 전화를 건다. 중학교 때 산골에서 담임이었던 내게 화분을 보내온 그는 지금 대학교수이다.

그리고 자리를 비운 사이 내 책상 위에 요즘은 받기조차 어려운 편지 한통이 놓였다. 비록 편지봉투도 없고 연필로 쓴 초라한 작은 편지지만 학생의 담임도 국어선생도 아니어서 시간 중에 편지쓰기를 가르친 적도 없는 내게 편지를 보내다니 너무 반갑고 어떤 선물보다 값어치 있는 귀중한 정성이란 생각이 들어 아침부터 괜히 기분이 상쾌하다. 내용은 이랬다.

이장희 선생님께
안녕하세요. OO입니다.
아직은 만난 지 얼마 안 되어 지금 조금은 어색합니다. 하지만 지금부터 선생님께 궁금한 것을 물어보고, 선생님과 대화를 많이 할 것입니다. 여태까지의 멘토링 선생님과는 별로 해 본 게 없습니다. 저는 졸업하기 전에 선생님과의 추억을 만들고 싶습니다. 선생님도 올해로 마지막이라고 들었습니다. 선생님의 제자이자 선생님의 후배로 남고 싶습니다.
저는 세상에 나오기 전에 할머니가 돌아가셨고 제가 아기일 때 할아버지도 돌아가셨습니다. 그래서 할머니 할아버지 얼굴을 못 봤습니다, 모르고요. 그래서 선생님을 할아버지처럼 편하게 생각하고 싶습니다. 그러니 저를 편히 생각해 주세요. 스승의 날 축하드립니다.
2009년 5월 15일.    OO 올림

그와의 첫 만남은 4월 초에 가정 사정을 파악하기 위한 날이었다. 멘토-멘티 결연상황에 대해 학생에 대한 교사로서의 각오와 어려웠던 내 개인적인 경험에 대해 소개하였더니 학생도 거침없이 어머니는 몇 년 전에 집을 나갔고 아버지마저 공장 업무 중에 허리를 다쳐 거동이 불편하시며 동생 3명과 함께 살고 있다는 딱한 사정을 들려준다. 생일도 묻고 성적이나 취미, 평소 가정생활에 대해 상황을 청취하는 등 진지하고 화기애애한 상담을 했다. 자신감을 가지도록 격려와 내가 할 수 있는데 까지 도우겠다는 의사를 전달한 첫 날이었다.

장래 희망을 물었더니 요리사에서 호텔경영으로 바뀌었다고 했고 1학기 1차 지필고사를 앞두고 성적 향상을 위해 특별히 힘써야 할 과목에 관한 준비에 대해 의견을 나누었는데 영어와 수학이 부족하단다. 영어, 수학은 진로에 관계없이 기본 도구과목이니 둘 중 1과목에 집중해서 분발을 촉구하고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지 찾아올 것을 당부하기도 했다.

두 번째 만남에서 그의 이야기를 통해 평소 동생 뒷바라지나 가정을 이끌어 가는데 헌신적임을 파악하고 칭찬과 격려를 하였는데, 내게로 온 학생이 특별히 성실하고 용돈 씀씀이 등 생활이 매우 검약한 점을 충분히 파악하고 보니 상담을 할수록 한 만큼의 효과를 거둘 것 같은 학생이라는 느낌이 들어 멘토로서 아주 푸근한 마음이 들었다. 지난번 시험 성적 결과를 반성하고 더욱 노력해 평균50점대에 머물러 있는 수학성적 70점대 진입을 결의하기도 했다.

며칠 후 우리가 미리 약속해 둔 시간에 그가 와 주었고, 처음으로 저녁식사를 함께 하면서 취미 생활 등에 대해서도 이야기하다보니 운동 중에서는 야구를 좋아하고 팀은 롯데, 선수는 선동렬, 김광현, 이승엽에게 호감이 간다고 한다. 나와 취미가 비슷한 점도 많다면서 적극 공감의 의사를 표하고 건전한 취미 개발, 유지에 힘쓰도록 격려하였다. 음식을 가리지 않고 잘 먹으며 자기 생각을 숨김없이 이야기하는 마음가짐이나 윗사람을 대하는 자세가 참으로 예절바르고 의젓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10년 전 실업계고교 담임시절 부모와 떨어져 살며 매일 밤마다 무슨 핑계꺼리를 만들어 외출해 조부모님을 걱정하시도록 하던 한 학생을 바른 길로 이끌었던 성공담도 들려주고, 어릴 때 시골서 자라 사회의 역군으로 훌륭하게 된 제자의 미담도 소개했었다.

스승의 날을 맞아 나의 이야기가 감동으로 다가간 덕분일까? 누구의 감사편지인들 귀하지 않을까마는 오늘 그의 편지는 구구절절한 어떤 유명인의 사연보다 고맙고 희망적이다. 앞으로 어려운 학생들에게 더 많은 사명감을 가지고 더욱 훌륭히 가르치라는 은사의 격려말씀처럼 가슴에 와 닿는 것이었다.
이장희 안심중학교 정년퇴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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