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을 중심으로 논의되는 `외국어고 폐지'또는 `자율형 사립고로의 전환'에 대해 전국 외국어고에서는 반대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다. 특히 외국어고 교장들은 한결같이 격앙된 반응을 보이고 있다고 한다. 사교육비 절감 방침에 동참하기 위해 학생 선발시에 영어듣기평가를 폐지하겠다고 밝힌 학교도 있다. 그러면서도 사교육비 증가의 주범이 외국어고는 아니라는 주장을 펼치기도 한다. 그동안 글로벌리더 육성으로 대한민국의 발전에 일조했다는 논리를 펼치기도 한다.
이들의 주장이 틀리거나 논리적으로 빈약한 것은 아니다. 그렇더라도 사교육비 지출의 주범은 아니더라도 확실히 보조역할을 한 것만은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중학교 3학년 학생들의 특목고 준비를 위한 과정을 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외국어고를 비롯한 특목고들은 입시요강을 발표하면 그것으로 끝이다. 학생들이 과도한 사교육비를 지출하거나 새벽까지 학원에서 입시준비를 하는 것은 특목고 진학을 위한 하나의 과정으로 바라보기 때문이다. 그들이 어떻게 공부하여 어떤 과정을 거쳐서 외국어고에 지원하는지는 큰 관심이 없었을 것이다. 중학교에서 학생들을 지도하는 입장에서는 말로 다할 수 없을 정도로 학생들이 고통을 감수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라는 이야기를 하고 싶다.
이제 와서 외국어고 폐지론이 고개를 들자 재빨리 영어듣기평가를 폐지하겠다고 나섰지만 시기적으로 늦어도 한참 늦었다. 심층면접도 간단하지 않다. 중학교 교육과정내에서 100% 출제가 되지 않기 때문이다. 중학교교육과정을 아무리 충실히 이수하더라도 외국어고에 진학할려면 학원을 다니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이 지원자들의 한결같은 이야기이다. 외국어고에서는 그렇지 않다고 하겠지만 현실적으로 새벽2-3시까지 학원에 매달리는 학생들이 있다는 것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겠는가.
외국어고에서 글로벌리더를 육성한다는 것에 공감을 한다. 문제는 그들을 육성한다는 데서 찾아야 한다. 외국어고를 비롯한 특목고를 준비하는 학생들은 해당 중학교에서 내노라하는 인재들이다. 그렇기에 그들이 학교교육과정을 넘어서는 과정을 공부해야 합격할 수 있도록 입시제도를 유지한 것이다. 그렇다면 외국어고가 아닌 여타의 학교에서 외국어고 만큼 유능한 인재들을 뽑아서 학생들을 가르친다면 어떤 결과가 나올 것인가.
최근 발표된 수능성적 학교별 공개에서 알 수 있듯이 다른 학교에서도 똑같은 인재를 확보했다면 결과가 외국어고에 결코 뒤지지 않을 것이다. 결국 외국어고는 글로벌리더를 육성한 것이 아니고, 훌륭한 인재를 뽑아서 훌륭한 인재로 계속해서 유지해 주었다는 결론을 얻을 수 있는 것이다. 그들을 더욱더 훌륭하게 육성했는지 따져볼 필요가 있는 것이다.
물론 극단적인 예이긴 하지만 전혀 근거없는 이야기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외국어고는 당초의 취지대로 글로벌리더를 육성하는 학교로 변해가야 한다. 즉 지금처럼 훌륭한 인재들을 가르쳐서 그대로 내놓는 학교가 될 것이 아니고, 이들을 더욱더 열심히 가르쳐서 더 훌륭한 인재로 육성해야 한다. 따라서 선발방향을 바꾸는 것은 매우 좋은 방안이라고 생각한다. 누구나 지원이 가능하도록 한 것도 매우 긍정적이다. 선발방향을 바꾸면서 사교육과 거리를 둘 수 있는 방법으로 개선하면 외국어고를 비난하지 않을 것이다. 외국어고 교장들의 주장대로 학교선택권을 다양화하는 취지에서도 외국어고를 폐지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다만 본래의 취지대로 이끌고, 중학교 학생들을 입시지옥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
결론적으로 훌륭한 인재를 더욱더 훌륭하게 육성하는 쪽으로의 방향전환이 필요하다. 따라서 이미 준비된 학생들 위주의 선발방식에 변화를 주어야 한다. 조금 덜 준비된 학생들도 선발하여 훌륭한 글로벌리더로 육성하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 이번의 폐지론을 거울삼아 외국어고도 변화를 주어야 한다. 다양한 학교를 선택하는 과정에서 외국어고를 많이 선택하도록 하는 것은 순전히 외국어고의 노력이 있어야 한다. 변화의 시대에 변화를 이끌어가는 외국어고가 되었으면 하는 바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