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을 이야기 하고, 그린 두 부부의 이야기 <서울 풍경 화첩>

2009.12.17 14:19:00




“문화특구에 대해서 파헤치는 텔레비전 프로그램을 보았다. 그렇지 않아도 조용했고, 가만히 놓아두어도 자연스럽게 문화적인 풍경이 형성될 동네를 문화특구라고 지정해 놓고 예산을 확보하고 이런저런 아이디어를 집어넣어 놓았더니, 문화는 모두 질식해 죽어나가고 쉬파리, 쭉정이, 시궁쥐들만 득시글거리더라는 이야기를 해외 사례까지 곁들이며 친절하고도 슬프게 전달해 주었다.”

문화란 외형으로만 보여지는 게 아니다. 기존의 것을 허물고 파헤치고 웅장하고 화려한 건물을 올려놓았다 해서 문화라 할 수 없다. 문화는 그 속에서 살아가는 숨결이 배어 있을 때 문화로서의 기능을 가질 수 있다. 그런데 우리는 어떤가. 겉만 그럴듯하게 꾸미고 있다.

왜 그럴까? 발로 걷고 눈으로 보고 손으로 쓰고 그린 임형남 . 노은주 부부의 <서울 풍경 화첩>에서 저자는 그 이유를 문화를 양적으로 판단하고 거죽만으로 치장하길 좋아하는 신자유주의적 문화정책이 문화는 없고 문화 같은 것만 만들어낸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그리고 그런 문화란 쉬파리이고 쭉정이 같고 시궁쥐와 같다고 힐난하고 있다.

우리 사회의 문화 겉치레, 그럴듯하게 보여주고자 하는 것에 대해 외롭게 싸우고 있는 외국인 데이비드 킬번 씨의 싸움은 그래서 외롭고 안쓰럽기까지 하다. 한옥의 매력이 좋아 한옥이 좋아 한옥 지킴이로 나선 ‘외국인 한옥 지킴이’로 데이비드 킬번 씨 기사를 볼 때마다 한편으론 낯부끄러운 생각이 든다. 외국인도 우리 문화의 숨결을 사랑하고 아끼는데 정작 주인인 우리는 그걸 포크레인으로 밀어버리려 하니 말이다.

지금의 서울, 즉 한양은 조선왕조 500백년의 역사와 문화의 흔적이 서린 곳이다. 그런데 지금 서울에서 인사동 골목이나 북촌 한옥 마을 등 몇 곳을 제외하곤 그 모습을 찾아보긴 무척 힘들다. 부부 저자인 임형남 . 노은주는 그 서울 골목골목과 대로를 발로 걸으며 사라지는 것들, 잊혀지는 것들에 대한 안타까운 마음을 짧게 그러나 조금은 무겁게 이야기하고 있다.

“고관대작들이 말을 타고 다니던 대로가 종로통이고 그 뒤로 그 꼴 보기 싫어서, 혹은 공연히 별 재미없을 것 같아서… 등등의 이유로 빽 없고 가난한 서민들이 피해 다니던 길이 피맛길인데, 그게 슬쩍 걷으면 드러날 정도로 무척 얇은 한 켜 뒤로 복닥복닥 모여 있었고 그 길이는 길고 몸통은 얇은 것이 마치 뱀 같기도 하고 기차 안 같기도 해서 재미있는 길이었다. 600년 가량 그렇게 굼실굼실 기어다녔다는데….”

‘그렇게 굼실굼실 기어다녔다는데….’ 다음에 하고 싶은 말은 뭘까. 이젠 그 길이 사라지고 없어진다는 것이다. 500년 아니 600의 길이 순식간에 없어진다는 것에 대해 우리 모두는 그저 무심하게 바라본다. 이에 대해 저자는 숭례문이 서울의 정신이라면 피맛길은 서울의 마음이라고 표현한다. 그런데 그 마음들을 얼마간에 보상금으로 몰아내려하고 있다며 안타까워한다.

“서울… 점점 존재가 희미하게 지워지고 있는 특이한 도시.
거의 천년 동안의 시간이 퇴적된 역사 도시라고는 하지만 그 시간이 만들어놓은 내용은 마무나 대충대충 그어대는 지우개질에 보기 흉하게 지워지며 떨어지는 지우개 부스러기마냥 주변에 여기저기 널려있다.”

저자는 잊혀져가는 서울의 모습을 어둡고 때론 스산한 형태의 수묵화화로 그려내고 있다. 글보단 그래서 그림이 더 아프게 다가오기도 한다. 그건 서울뿐만이 아니라 어느 도시이건 서울의 모습을 그대로 따라가고 있기 때문이다. 허름하다 해서 숨결이 있는 건 밀어버리는 현실에 안타까워하며 <서울 풍경 화첩>을 낸 임형남 . 노은주는 부부 건축가이다. 둘은 10년 동안 서울의 여러 곳의 모습을 찾아다니며 그들의 시각으로 이야기하고 대화를 나눴다. 그리고 그것을 짧은 소회의 글로, 때론 사실적 표현으로 썼고 그림을 그렸다.

그런데 두 사람은 서울의 이야기, 변해가는 서울의 이야길 하면서도 조금은 조심스러워 한다. 그래서 어릴적 기억 속의 서울의 모습과 지금의 서울의 모습을 함께 놓으면서도 깊게 들어가진 않는다. 깊지 않다고 해서 울림이 없는 것도 아니다. 찬찬히 읽고 생각하고 책속의 그림을 보다 보면 우리가 모르는 서울의 모습을 알 수 있고,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김 현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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