헷갈리는 일제고사 거부

2009.12.24 09:42:00

현장체험학습이 학급단위는 물론 개인에게까지 허용되지 않았다. 그래도 체험학습을 떠난 학생들이 있다. 중1,2학년 학력평가가 실시된 날의 이야기이다. 1주일동안 체험학습을 신청하고 가족들과 외국에 나간 학생도 있었다고 한다. 그래도 그 학생은 무단결석으로 처리해야 한다고 한다. 2-3일간 연속으로 체험학습을 낸 학생도 있었지만 역시 무단결석이라고 한다. 학력평가가 실시되는 날에는 어떤 형태의 체험학습도 허용되지 않았다. 그런데도 체험학습을 가야한다고 주장하는 이가 있었다.

아침일찍 경찰서로부터 전화 한통을 받았다. 일제고사 반대 1인시위를 교문앞에서 할 것이라는 정보가 입수되었다는 것이다. 잠시전에 교문앞에 들렀지만 시위자가 없었다고 한다. 다시한번 살펴봐 달라는 것이었다. 학생들이 가장 많이 등교하는 시간에 교문앞으로 나가봤다. 중년의 남자가 혼자서 1인 시위를 하고 있다. 그는 '일제고사보다 더 좋은것'이라는 문구를 몸의 앞 뒤에 걸치고 있다. 일제고사보다 더 좋은 체험학습을 가야 한다는 문구를 본 것 같다. 그런데 그의 행동에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었다.

학생들에게 체험학습을 권고하는 글이 적힌 전단지를 나누어주고 있었다. 그리고 컴퓨터용 싸인펜을 한 자루씩 나누어주고 있는 것이었다. 학생들에게 물었다. 컴퓨터용 싸인펜인지.... 그렇다고 한다. 이 모습을 지켜 보면서 그에게 가까이 갔다. 어디서 왔냐고 물었다. 선생님 이냐고도 물었다. 그는 선생님은 아니라고 한다. 어디 사느냐고 물었다. 시민단체라고 대답한다. 그리고 또 이 지역에 사는 주민이라고 한다. 왜 여기서 이러고 있느냐고 물었다. 일제고사 반대를 위해 1인시위 중이라고 한다. 여기 말고도 서울시내 300여개 학교에서 회원들이 1인 시위를 하고 있다고 대답했다.

경찰서에서 전화가 걸려왔었다고 했다. 그러니 이제 그만하고 돌아가라고 했다. 그럴 수 없다고 한다. 전단지와 싸인펜을 모두 나누어주어야 한다고 한다. 더 이상 할 이야기가 없어서 그대로 돌아섰다. 그리고 교무실로 들어와서 시험준비를 했다. 그리고 생각해 보았다. 그는 왜 거기에 서서 1인 시위를 하는 걸까. 그것은 그래도 어느정도 이해가는 부분들이 있다. 그런데 의문점이 있다. 그는 왜 컴퓨터용 싸인펜을 나누어 주고 있는 것일까.

일제고사를 거부한다면 도리어 학생들이 준비해온 싸인펜을 내 놓으라고 해야 하는 것 아닌가. 그런데 싸인펜을 나누어 주다니.... 시험을 보지 말라고 하면서 싸인펜을 주는 그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왜 그랬을까. 계속해서 의문이 가시지 않았다. 그 순간, 혹시....라는 생각이 들었다. 싸인펜이 컴퓨터용이 아니고 일반 싸인펜이라면... 학생들이 표기한 답안이 채점이 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방송실로 달려갔다. 이미 1교시 국어 듣기평가가 진행되고 있었다. 듣기평가 끝나고 오늘 교문에서 싸인펜 받은 학생들은 싸인펜이 컴퓨터용인지 확인하고 사용하라는 방송을 부탁했다. 그대로 방송이 나갔다. 그러나 싸인펜이 컴퓨터용이 아니라고 대답한 학생은 하나도 없었다. 그는 왜 그랬을까. 최소한의 기본은 생각하고 한 행동이었을까. 지금까지도 그의 행동은 이해가 되지 않는다. 시험을 반대한다면서 싸인펜을 왜 나누어준 것일까. 이 글을 읽는 독자여러분들은 이해가 가는지 모르겠다. 헷갈리는 일제고사 거부 1인 시위였다.
이창희 서울상도중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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