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저 정아에요."
"누구? 무슨 정아?"
졸업생 중에 같은 이름을 가진 애들이 있어 성을 밝히지 않으면 목소리만 듣고 누군지 알 수 없어 반문할 때가 있곤 하다.
"쌤, 너무 한 거 아니에요. 제 목소리도 잊어버리고. 유정아에요. 기억나세요 이제?"
"어~, 그래. 정아야. 미안해. 근데 임마 너 졸업하고 처음 연락하는 거잖아. 그니까 목소리 잊어버리지."
"헤헤, 죄송해요. 한단 한다 생각은 하면서도…… 쌤~ 잘 지내시죠?"
"그래. 잘 지내지. 넌 어때?"
"저도 잘 지내요."
근 1년 만에 연락을 한 정아(가명)는 밝아보였다. 학교 다닐 때도 밝은 목소리를 가지고 있었지만 그늘이 담겨 있었는데 그 그늘이 걷힌 것 같아 통화를 하면서도 마음이 놓였다. 졸업 후 가끔 녀석에게 전화를 하곤 했지만 통화를 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문자를 넣어도 답이 없어 늘 소식이 궁금했었다. 그럴 때마다 마음이 편치 않아서 전화를 피하는구나 짐작만 할 뿐이었는데 이렇게 전화를 받고 보니 그동안의 염려들이 일순간에 사라졌다.
작년 3학년이 끝나갈 무렵이었다. 정아가 눈 주위가 빨갛도록 울먹이며 찾아온 적이 있었다. 어려운 일이 있더라도 늘 웃는 아이였는데 그날은 달랐다.
“정아, 너 왜 울어? 누구한테 혼났니?”
“아뇨.”
“그럼 왜 울어. 늘 웃는 너가.”
“그냥 답답해서요.”
“무슨 일인데 그래. 이야기해주지 않을래?”
정아가 운 이유는 특별한 게 아니었다. 말 그대로 답답해서였다. 나빠진 경기불황으로 성적은 좋지만 취업도 안 되고, 대학도 못 가는 상황이니 답답해 할만도 했다. 하지만 정아는 겉으론 웃으면서 속으론만 가슴앓이를 하는 아이였다. 고민 없는 아이처럼 행동했다. 그래서 겉만 보면 유복한 아이처럼 보였다. 언제나 밝게 웃고 인사하는 정아를 볼 때마다 건강한 가정에서 자란 아이구나 하는 생각을 속으로 해뜨랬다. 나중에 그렇지 못하다는 사실을 알곤 놀랐지만 말이다.
실상 정아는 늘 아침을 굶고 학교에 왔다. 저녁도 굶는 날이 더 많았다. 어쩔 땐 정아의 우일한 식사가 학교에서 먹는 점심인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고등학교에 다니는 동안 아침밥을 먹고 온 날이 손가락을 꼽을 정도였다. 물론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말이다. 정아뿐만이 아니다. 지금도 형편 때문에 아침을 먹지 못하고 오는 아이들이 있다. 고등학생인데도 그랬다. 그렇다면 초등학교나 중학교 때라고 뭐 다르겠는가. 맘속으로만 눈물의 배를 채웠을 수도 있을 것이다.
2년 전에 졸업한 아이 중에도 그런 아이가 있었다. 아이가 6살 무렵에 부모가 모두 가출(아이를 버리고)하여 작은 집에서 자라다가 중학교 때부터 혼자 생활했던 친구다. 부모는 살아있는데 어디에 살고 있는지 전혀 알 수 없는 아이는 혼자나 다름없었다. 그 아이는 밥 해먹을 쌀이 없어 저녁이면 친구 집을 전전하기도 했다. 한 번은 먹을 걸 사가지고 반 아이들과 그 아이의 집을 찾아가 밥을 해먹고 온 적이 있었는데 그래도 녀석은 울기보단 웃음을 선택하며 살아간다며 걱정마라며 씩씩하게 말했던 기억이 난다.
요즘 경기도교육청과 경기도의회와의 무상급식 관련 문제를 보고 있노라면 예산을 삭감하려는 자들이 배고픔에 말도 못하고 눈물짓는 아이들의 마음을 한 번이라도 진정성 있게 생각해본 적이 있는지 묻고 싶다. 해마다 학교에서 저소득층 아이들을 조사하고 서류를 가져오라고 할 때마다 항상 조심스럽다. 아이들의 마음에 상처를 주지 않을까 싶어서다. 그런데 이제 그것마저 축소된다고 한다.
얼마 전 동료교사들 몇몇이 학력의 부익부 빈익빈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기회가 있었다. 특히 기초생활수급자 자녀에게 전액 지급되던 대학등록금 장학지원제도 폐지를 이야기하면서 한숨을 쉰 적이 있었다. 그때 우리들은 '있는 자들이야 없는 자들의 심정을 모른다. 아니 아예 알려고도 하지 않는다.' 뭐 이런 말들도 나눴다. 그때 우리는 주인이 배부르고 등 따스면 종의 배고픔과 추위를 생각하지 않는다는 흘러간 옛말까지 들먹였었다.
정부에서 취업 후 등록금 상환제도의 실시한다는 이유로 기초생활수급자 자녀에게 전액 지급되던 대학등록금 장학지원제도가 폐지되고, 대신 기존 지급액인 420만원의 절반액수인 200만원을 지원금 형태로 지급하겠다는 뉴스 보도를 보면서 왜 주인과 종의 이야기를 떠올렸는지 모른다. 다만 아예 돈이 없는 자는 배움의 기회도 박탈당하는 게 아닌가 하는 우려의 마음이 그런 생각을 하게 했는지 모른다. 이는 필자가 근무하는 학교의 아이들 중 삼분의 일 이상이 기초수급자이고 이들 중 상당수의 아이들이 대학을 가기 위해 공부하고 있기에 동료들끼리 답답한 마음을 토로했는지도 모른다.
이야기가 잠시 샛길로 빠졌지만 정아와 통화하면서 정아의 눈물이 떠올랐고 그 아이의 아픔도 떠올랐다. 그렇지만 지금 그 아이는 웃고 있었다. 그늘은 많이 사라졌다. 공부는 전교에서 최상위권을 유지했지만 형편 때문에 대학에 가지 못하고 졸업 후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이젠 어엿한 직장도 얻었고 언젠가는 하고 싶은 공부고 다시 하려고 한다는 바람도 전해주었다.
통화를 마치고 점심값이 아까워 급식을 안 먹는다는 한 아이가 머리에 아른거렸다. 말이야 안 먹지만 못 먹는 아이였다.
김 현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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