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르침과 그르침 사이

2010.02.23 16:59:00

"악의 잎사귀를 천 번 잘라내기보다 악의 뿌리를 한 번 뽑는 것이 낫다" - 헨리 데이비드 소로


교육은 국가를 지탱하는 마지막 보루

최근 보도되고 있는 서울시교육청의 비리 사태는 한마디로 수치스럽다. 인터넷 세상에서는 모든 것이 투명하다. 감춰서도 안 되지만 감출 수도 없는 세상이다. 감추어진 것은 반드시 드러나는 세상이다.

'뜬 세상의 아름다움'에서 다산 정약용은 둘째 아들 학유에게 쓴 편지에서,

"남들이 모르게 하려면 안 하는 것이 최고고, 남들이 못 듣게 하려면 말하지 않는 것이 최고다. 이 두 개의 문장을 평생 동안 외우고 다닌다면 위로는 하늘에 대하여 떳떳하고 아래로는 집안을 지킬 수 있다. 세상의 재앙이나 우환, 천지를 뒤흔들며 자신을 죽이고 가문을 전복시키는 죄악이 모두 몰래 하는 일에서 빚어지는 것이다. 일을 하거나 말을 할 때는 반드시 치열하게 반성해 보아야 한다"라고 했으니 결코 일어나서는 안 될 일이 벌어진 것이다.

말로만 듣던 전문직 비리가 도마 위에 올랐으니 이젠 악의 뿌리를 근절시키는 데 주저하지 말아야 한다. 교육혁신을 부르짖고 개혁을 외쳐도 세상 어느 조직보다 느린 곳이 교직이라고들 한다. 세간에서 공교육이 죽었다고 야단을 쳐대는 상황에서 있어서는 안 될 비리마저 터져서 교육계가 초상집이다. 더군다나 비리 혐의로 직위해제를 당한 학교장이 자살로 삶을 마감한 학교의 선생님들이나 학생들, 학부모가 받을 충격과 상처를 어찌 한단 말인가. 교직은 신뢰를 먹고 산다. 불신은 대단히 비싼 대가를 치른다.

필자도 오래 전에 전문직에 종사하는 친구로부터 돈을 빌려달라는 부탁을 받은 적이 있었다. 부탁을 들어줄 수도 있었지만 그 때가 마침 그 친구의 근무평정 기간이었고 내심 의심도 들어서 정중히 거절했다. 가족도 모르게 써야할 돈이라면 문제성이 있다고 판단하여 도와줄 수 없다고 했던 것이다. 그런데 그 해에 전문직을 둔 동료 교직원도 연말이면 기백만원을 써야 한다며 보너스만 기다린다고 했다. 그러나 필자는 그런 일들이 이렇게 드러나리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비리에 연루된 전문직이 극히 일부의 이야기라고 생각하고 싶다. 오히려 열심히, 투명하게 일하며 교육현장을 돕기 위해 애쓰는 전문직이 더 많다고 생각하고 싶다. 어떤 조직이든 문제성이 있는 사람이나 체제는 늘 있기 마련이라고 합리화 시킬 수 없는 곳이 교육계이지 않은가! 교육은 사회를 선도하는 마지막 보루이기 때문이다. 어떤 이유에서든 용납될 수 없는 것이다.

어떤 직종보다 높은 도덕성 요구되는 교직

흔히 "악한 시스템이 만들어낸 악한 상황이 선한 사람을 악하게 만든다"(미국 심리학자 필립 짐바르도가 쓴 '루시퍼 이펙트'에서)는 말에 비추어 본다면 문제는 더욱 심각해진다. 근본적으로 악한 시스템이 상존해 있었다는 뜻이고, 악한 상황 또한 늘 존재해 있었다는 가정이 가능해진다. 금품이라는 조건으로 승진을 향한 직선도로를 남들보다 빨리 진입하고자 한 사람은 결코 선한 사람이라고 할 수는 없겠지만 그러한 꼬임으로부터 떳떳하게 자신을 지킬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그렇다고 금품을 주고받으며 전문직장사를 한 사람들을 옹호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이제라도 악한 시스템을 철저하게 박멸해야 한다는 뜻이다. 금품으로 전문직을 산 사람들이 눌러 앉은 교육청, 그 사람들이 학교로 나가서 무엇에 눈독을 들일지는 안 봐도 훤하다. 자기가 들인 만큼, 오히려 더 많이 그런 행위에 익숙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사람들이 학생들 앞에서 '바르게 살자' '정직해라' '실히 살아야 성공한다'고 훈화를 했을 것이고 장학지도를 했을 것이다.

미꾸라지 한 마리는 맑은 물이 흐르는 연못을 흐리게 하기에 충분하다. 끊임없이 샘물이 흘러들어도 흐린 물이 정화되는데 걸리는 시간은 오랜 시간이 걸린다. 자연계의 이치가 이러한데 사람의 조직은 더할 것이다. 아무리 공들여 공교육을 살리려고 애쓰는 헌신적인 선생님과 전문직이 넘쳐나도 이런 비리 문제가 터지면 모든 것이 수포로 돌아가고 개탄의 목소리에 파묻히고 만다. 한꺼번에 매도되는 것을 막을 재간이 없는 것이다.

새 학년을 시작하는 봄이 코 앞인데 마음은 한겨울이다. 힘들고 어려운 사람들, 불쌍하고 가엾은 아이들은 지난 겨울방학 동안 점심마저 굶었다는데 그 아이들을 챙겨야 할 어른들은 돈장사로 세상을 어지럽히고 부끄럽게 감옥에 가야 한다니, 우리 아이들에게 무슨 말로 가르쳐야할까?

철저한 조사로 교단의 청렴도 높이는 계기 만들어야

우리나라는 경제발전이나 사회 문화의 전반적 발전 속도에 비추어 공직자의 청렴도가 낮은 편이라고들 한다. 다른 곳보다 더 높은 청렴도를 이끌어야 할 곳은 학교나 교육청이어야 한다. 가르침을 실천하는 조직이기에 도덕성의 잣대가 엄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촌지를 밝히는 담임 선생님은 아이들이나 학부모가 존경할 리 없고 잇속에 밝은 학교장을 신뢰하고 존경할 선생님 또한 없다. 학교현장도 회계의 투명성과 집행과정이 많이 개선되고 맑아졌다고 자부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래된 종기가 터지듯 불거져 나온 이번 비리 사건은 한 점 의혹 없이 밝혀서 그 뿌리를 잘라내고 다시는 악의 씨가 떨어져 생존할 수 없도록 시스템을 혁신적으로 바꿔야 한다. 단순히 자리를 옮기거나 임시 방편으로 여론이 잠잠하기를 기다리는 수법은 없어져야 한다. 다른 조직보다 더 엄정한 잣대로 고의성이 드러난 비리는 철저히 단죄하여 교단의 청렴도를 높여야 한다. 그 길만이 실추된 공교육의 위상으로 상처받은 교단을 지키는 길이다.

가르침과 그르침은 모음 한 자 차이이지만 파급 효과는 전혀 다르다. 가르침보다 모범이 앞서야 할 교직사회에서 그르침으로 교육현장을 흙탕물로 만드는 사람들을 철저히 가려내는 자성의 목소리가 필요하다. 내부고발이든, 수시감사든 병든 조직을 살릴 수만 있다면 함께 나서야 한다. 깨진 유리창은 임시방편으로 붙여서 재활용해서는 안 된다. 새 유리창으로 갈아야만 한다. 그대로 두었다가는 대형사고로 인명을 다치게 한다.
장옥순 담양금성초/쉽게 살까, 오래 살까 외 8권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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