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 선생님, 어떻게 그럴 수가 있지요? 부장교사를 하지 않으신다더니, 내게 양보한다더니, 번복을 해요? 이제 보니 참 위선적이군요. 글을 쓰는 선배님이라 존경했는데…….”
몇 년 전 9월 무렵 나는 참 힘든 시간을 보냈었다. 학교 도서관으로 나를 부른 후배는 나를 죄인 다루듯이 함부로 말을 해댔다. 그것도 아들 같은 신규 교사 앞에서 무참히 짓밟혀야 했다. 나보다 몇 년 후배에게 나는 태어나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그렇게 혹독한 꾸지람(?)을 당한 것이다.
40대 중반을 훨씬 넘도록 승진에 대한 꿈을 가지지 않았기에 부장교사는 남의 일로만 여겼던 그 때. 불행인 것은 내가 그와 동학년이었고 내가 부장점수가 없는 학년주임을 하고 있었다는 사실이었다. 학교의 형편에 의해서 갑작스럽게 생긴 부장교사 자리를 두고 내가 겪었던 마음의 상처는 그 후 몇 년 동안 나를 달달 볶으며 늘 달리게 하는 원동력이 되었다.
부장교사 자리가 나면 양보하겠다고 흔쾌히 이야기했던 내가 번복을 한 이유는 너무나도 간단한 것이었다. 한참 어린 후배교사 밑에서 동학년을 하며 작은 볼일에도 오라가라 불려 다니기 싫어서였다. 부장교사를 하면 당연히 학년주임까지 하게 된다는 걸 뒤늦게 깨달은 나의 부족함이 원인이었다. 경력으로나 전입서열, 이미 학년주임으로 근무 중이었으니 내가 부장교사가 되어야 한다는 여론에도 불구하고, 이미 승진을 위해 스펙을 쌓고 있던 그를 위해 윗분들에게 양보를 종용당하고 물러섰다.
학년주임을 하고 있던 나는 새로이 부장교사가 된 그녀의 교실로 볼일이 있을 때마다 나를 교실로 오라가라 불러대던 후배를 보며, 2학기 동안 괴로운 시간을 보내며 마음고생을 많이 했었다. 승진을 목적으로 꾸준히 점수 쌓기에 돌입하며 열심히 살던 후배에게 양보하겠다던 나의 번복은 욕을 얻어먹기에 충분한 빌미를 주었던 것이다.
그날 나는 정신적인 충격에 40여분 가까이 가슴에 통증을 느끼며 숨조차 제대로 쉬지 못할 만큼 죽음의 공포를 느껴야 했다. 후배에게 당한 쇼크의 충격으로 사흘 동안 잠을 이루지 못해서 심각하게 휴직까지 고려할 만큼 교직에서 받은 가장 큰 상처였다. 동료 선생님들의 격려와 배려, 종교의 힘에 의지하여 남은 학기를 무사히 마치는 동안, 나는 내가 받은 상처를 나만의 방법으로 승화시켜 가는데 노력했다.
내 작은 자존심을 지키려다 받았던 아픈 상처를 이기는 길은 아이들 속으로 철저하게 걸어 들어가는 것이라고 믿어서 더 열심히 가르치고 사랑하며 글을 남기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 결과 그 해가 다 가기 전에 망설이고 있던 작품의 출판을 서둘러서 두 권의 책을 내어 아픔을 승화시키며 적극적인 방법으로 나를 표현하기 시작했다.
세상에 태어나서 가장 호된 질책으로 정신까지 놓아버릴 뻔 했던 그 순간은 죽는 날까지 잊지 못할 것이다. 아니, 내 삶의 의지가 약해질 때마다 나는 치욕스럽던 그 순간을 반추해내어 나를 채찍하곤 했다. 눈에 보이는 승진으로부터는 멀어진 교직생활이지만 아이들과 나누는 교실 이야기를 세상에 전하며 부단히 책을 읽고 기록을 남기며 나를 일깨우는 작업에 박차를 가하게 만든 그날의 상처는 이제 고운 옹이가 되어 마음 깊은 곳에 아로 새겨져 있다.
그리고 꿈에서도 잊지 못할 후배의 이름은 더 이상 내 상처 속에 존재하지 않는다. 시간이 약이 된 것이다. 한 때 열심히 달려가는 길 위에서 걸림돌이 될 뻔 했던 나의 존재 때문에 힘들어했을 그 후배도 나처럼 마음고생이 많았으리라. 이제는 얼굴조차 보기 힘들게 멀리 떨어진 곳에서 각자 열심히 아이들을 가르치는 자리에 서 있는 우리들.
같은 학교에 근무한다는 것만으로도 숨이 턱턱 막혔던 그 몇 달이 내 인생에서 가장 어두운 시간이었지만 그 어둠의 길목에 서서 거듭나기 위해 몸부림쳤던 시간이 있었기에 지금의 나는 솔개처럼 발톱을 가다듬어 다시 세상 속으로 나오며 제2의 인생을 살고 있으니 오히려 감사를 드리고 싶다.
지금도 내 가방 속에는 그 날처럼 힘든 날을 대비하여 우황청심환이 들어 있다. 그 후로 몇 년 동안 한 번도 마시지 않은 상비약을 볼 때마다 내 가슴은 작은 떨림으로 긴장하곤 한다. 상처를 바라보며 흐트러지지 않기 위해, 무언의 자극제로 내 친구처럼 곁에 두고 있다.
이제 일곱 번째 교단에세이의 출간을 준비하며 그가 훌륭한 관리자가 되기를 바라는 내 마음을 실어 보낸다. 그대 덕분에 내 무디어진 발톱은 새로 태어났노라고, 우리 더 열심히 아이들을 훌륭하게 가르치자고, 어디에 있든지. 약속을 번복한 나때문에 받은 그 때의 상처가 다 나았기를 바라며 진심으로 훌륭한 관리자가 되기를 바라노라고. 이젠 모두 잊었고 용서하였으니 그대도 눈치 없던 나를 용서하기를! 그대와 내 앞에 놓였던 모난 돌을 우리 함께 반석으로 삼아 후반기 삶을 더 아름답게 펼치며 인생의 무지개를 만들기를 기원한다고.
요즈음 세간에 회자되는 교사의 승진에 얽힌 이야기가 우리를 부끄럽게 한다. 사실이 아니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지만 부정도 할 수 없는, 어느 정도 짐작하는 이야기이기에 더욱 슬프다. 영혼을 팔아야 승진한다는 슬픈 이야기는 더 이상 들리지 않는 교단이었으면 한다. 영혼을 팔아서 양심과 정직성, 도덕성이 결여된 선생님이 서 있는 교실에서 어떻게 싱싱한 아이들을 제대로 기를 것인가.
개학을 앞두고 새로운 관리자를 만나게 될 2학기에 기대를 걸어본다. 우리 아이들을 잘 이끌고 갈 멋지고 아름다운 영혼의 소유자를 관리자로 맞이할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