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 자모 이름의 유래

2010.09.24 21:10:00

우리가  ‘ㄱ’을 ‘기역’, ‘ㄴ’을 ‘니은’, ‘ㄷ’을 ‘디귿’이라고 하지만, 훈민정음이 처음 만들어졌을 때는 이 글자들의 이름을 어떻게 불렀는지는 알려져 있지 않다.
다만 훈민정음에 보면

ㄱ. 牙音. 如君字初發聲 ㄱ은 어금닛소리니, 君(군)자 첫소리와 같다.
ㅋ. 牙音. 如快字初發聲 ㅋ은 어금닛소리니, 快(쾡)자 첫소리와 같다.
ㅇ. 牙音. 如業字初發聲 ㅇ은 어금닛소리니, 業()자 첫소리와 같다.

ㆍ. 如呑字中聲 ㆍ는 呑()자 가운뎃소리와 같다.
ㅡ. 如卽字中聲 ㅡ는 卽(즉)자 가운뎃소리와 같다.
ㅣ. 如侵字中聲 ㅣ는 侵(침)자 가운뎃소리와 같다.

등과 같은 기록이 보인다. 즉 훈민정음에서는 글자가 어떤 음가를 가졌는가를 한자(漢字)의 음으로 표시하고 있다. 이 기록과, 다른 몇 가지 근거로 학자들은 자음은 ‘기, 니, 디,……’ 등으로 부르고 모음은 그 발음대로 불렀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한글 자모의 이름을 오늘날처럼 부르는 데는 최세진이 1527년(중종 22)에 아동들의 한자 학습을 위하여 만든 책 훈몽자회에서 시작한다. 그는 당시 가장 뛰어난 중국어 운서 연구의 대가였다. 그는 우리나라에서 한자 학습의 기본서로 사용되어 온 천자문과 유합의 결함을 지적하고 이를 대신하여 ‘훈몽자회’를 편찬하였다. 즉 이 책은 한자 학습의 기본서로 편찬되었던 것이다. 이 책의 ‘범례’에서 한글 자모음의 이름을 처음으로 정하고 순서와 받침 등을 정리하였다.

언문자모(言文字母) 속소위반절이십칠자(俗所謂反切二十七子)
초종성통용팔자(初終聲通用八字)
ㄱ(기역 其役), ㄴ(니은 尼隱), ㄷ(디귿 池末), ㄹ(리을 梨乙)
ㅁ(미음 眉音), ㅂ(비읍 非邑), ㅅ(시옷 時衣), ㅇ(이응 異應)
‘末, 衣’ 두 자는 다만 그 글자의 우리말 뜻을 취해 사용하였다.
기 니 디 리 미 비 시 이 8음은 초성에 사용되었고, 역 은 귿 을 음 읍 옷 응 8음은 종성에 사용되었다.
초성독용팔자(初聲獨用八字)
ㅋ(키 箕), ㅌ(티 治), ㅍ(피 皮), ㅈ(지 之), ㅊ(치 齒)
ㅿ(이 而), ㅇ(이 伊), ㅎ(히 屎)
箕 자 역시 이 글자의 우리말 뜻을 취하여 사용하였다.
중성에만 쓰이는 11자
ㅏ(阿), ㅑ(也), ㅓ(於), ㅕ(余), ㅗ(五), ㅛ(要), ㅜ(牛), ㅠ(由), ㅡ(應 不用終聲-종성은 사용하지 않음), ㅣ(伊 只用中聲-다만 중성만 사용함), ㆍ(思 不用初聲-초성은 사용하지 않음)




여기서 최세진은 우리의 음운을 ‘반절27자’라 하여 정리하고 있다. 초종성에 같이 쓰이는 8자는 두 자의 이름을 붙였다. 기역부터 이응의 각 명칭이 보여주는 것처럼 이는 초성으로도 쓰이고 종성으로도 쓰인다. 초성에만 쓰이는 8자에는 한 자씩 붙어 있다. 이는 초성에만 쓰였을 뿐 받침으로는 안 쓰였다. 그래서 ‘키읔’, ‘티읕’일 필요가 없었다. 결국 이들은 이름이라기보다는 소리의 예를 보여주는 것이다.

훈몽자회 범례에서 초종성 통용 8자 가운데 ‘ㄱ, ㄷ, ㅅ’에만 예외적으로 이름을 붙인 것은 ‘윽, 읃, 읏’ 등에 해당하는 한자가 없었기 때문이다. 최세진은 여기서 그와 비슷한 음을 가진 다른 한자를 빌려 쓰든가(역: 役), 한자에 해당하는 우리말 단어를 그 음으로 이용(귿: 末, 옷: 衣)하는 지혜를 발휘했다.

1930년 언문철자법(조선총독부 제공, 공포한 한글맞춤법)에서 한글 자모의 명칭을 정할 때 훈몽자회의 범례를 그대로 따랐다. 이때도 한글만으로 이름을 정할 때 규칙 있게 바로잡을 수도 있었으나 관례를 존중해 ‘기역, 디귿, 시옷’을 그대로 두었다. 그리고 범례에 한 자씩만 붙어 있던 초성 독용 8자의 이름을 두 자씩으로 한 것은 표기 방법의 변화를 합리적으로 반영한 것이다.

당시 조선총독부의 언문철자법에서는 ‘지읒, 치읓, 키윽, 티읕, 피읖, 히읏’으로 정한 바 있었다. 그러나 1933년 한글맞춤법통일안에서는 대부분 명칭을 그대로 따랐지만, 불합리하다고 판단되는 ‘키윽, 히읏’을 ‘키읔, 히읗’으로 바로잡았다. 그리고 1989년 한글맞춤법에서도 이 자모의 명칭을 그래도 사용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우리나라는 과거 불우한 역사의 굴레에서 벗어나 지구상에서 강대국으로 떠오르고 있다. 이는 우리가 한글 사용으로 국민 교육의 수월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특히 최근 사회에서 한국의 국제적 위치가 부각되면서 한국어가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다. 앞으로 한국은 물론 한글도 널리 알려질 것이다. 한글이 세계에 널리 알려지기 위해서는 우리부터라도 한글에 대해 정확히 알고 있어야 한다. 자모 명칭에 대해서도 불필요함으로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잘못된 생각이다. 모국어 사용자로 한글의 명칭 유래 정도는 알아야 우리글을 세계에 알릴 수 있다.
윤재열 초지고 수석교사,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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