칭찬을 먹고 사는 아이들

2010.11.05 16:24:00

백일장의 관행, 이제는 고칩시다




<제27회 월출학생종합예술제 및 방과후학교성과발표회 덕진달오름소리공연장면>

2010년 11월 4일 목요일 영암실내체육관에서 제27회 월출학생종합예술제 및 방과후학교 성과 발표회가 열렸습니다. 본교는 식전 축하 공연으로 사물놀이 공연을 올렸습니다. 4, 5, 6학년으로 이루어진 공연단을 위해 평소보다 일찍 출근하여 아이들을 화장을 해주는 선생님, 악기를 나르며 고생하는 주무관님, 전교생이 백일장에 참가하므로 여러 번 운행해야 하는 통학버스 주무관님. 모두들 1년 농사를 내놓고 칭찬하고 격려하는 축제를 위해 마음을 다했답니다.

한 순간에 지나고마는 무대 공연을 위해 3년 동안 갈고 닦은 사물놀이 공연단은 관객들의 눈과 귀를 모으기에 충분했습니다. 방과후 학교 프로그램으로 열심히 배우며 공부 스트레스나 불우한 가정이 주는 마음의 병까지 날리며 북을 두드린 아이들입니다. 이제는 자랑스럽게 사물놀이를 배우는 4학년이 얼른 되기를 기다릴 정도가 되었습니다. 이미 전국대회에 두 차례 나가서 상위 입상까지 한 저력이 있어서 북채를 두드리는 모습도 자신감이 넘쳤습니다.

들러리가 대부분인 백일장 대회

사물놀이 외에도 우리 학교는 전교생이 그림이나 글짓기 행사에 참여핬습니다. 이렇게 직접 행사장에 나가서 백일장에 참가하면 다른 때보다 훨씬 더 좋은 그림이 나오기도 하고 글도 잘 쓰는 아이들이 많습니다. 아이들이 그만큼 집중하고 몰입하기 때문입니다.

좋은 작품을 만나는 기쁨도 잠시, 늘 아쉬움을 느낍니다. 그것은 바로 들러리 서는 아이들이 너무 많기 때문입니다. 참가 아동의 90% 이상이 수상권에 들지 못하고 작품마저 돌려주지 않는 백일장의 낡은 관행 때문입니다.

그래서 아이들은 학년이 올라갈수록 참여하기를 싫어합니다. 어차피 상을 탈 것도 아닌데 고생만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도 순진한 저학년 아이들은 기대를 걸고 내내 기다립니다. 그래서 주최 측에 건의를 하곤합니다. 좀 귀찮더라도 아이들의 작품을 수합하여 학교로 보내주었으면 좋겠다고 말입니다. 상을 주지 못하더라도, 상품은 없어도 좋으니 입선이나 참가상만이라도 주었으면 좋겠다고요.

아이들 작품을 돌려주었으면

적어도 몇 시간 공을 들여 만든 작품을 내놓고 상은 커녕 작품마저 자기 것이 될 수 없는 백일장 대회는 교육적으로 생각해 볼 때가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적어도 교육청에서 실시하는 대회만이라도 아이들이 자기 작품이나 기록물을 가질 수 있게 했으면 합니다. 그 과정이 복잡하고 일거리를 만든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주최 측에서는 심사가 끝난 뒤 그 작품들을 대부분 파기할 게 분명합니다. 책에 실리는 작품만이  겨우 빛을 볼 수 있을 뿐입니다.

그래서 나는 우리 반 아이들이 그린 그림을 디지털 카메라로 일일이 찍어서 가져옵니다. 글을 쓴 아이들도 최대한 자기 기록을 가져 올 수 있도록 연습 종이를 챙기게 하거나 작품을 베끼게 하고 싶지만 시간이 부족하지요. 학교에서는 힘들게 준비하여 나가는 백일장 대회이지만 참가자에 비해 너무 많이 탈락하니 아이들은 자신의 소질을 의심하고 자신감마저 잃게 하는 백일장 대회!

철마다 날아오는 협조 공문에 응하다 보면 수업 결손도 많은 작품 모집. 불조심 행사, 웅변 대회, 각종 글짓기 대회 등등 아이들이 상을 타면 자신감도 생기고 진로를 개척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부지런히 작품을 지도하고 제출하지만 어쩌다 건지는 대어 한, 두마리를 빼고는 거의 모두 들러리로 머물고마는 작품 모집.

그렇다고 출품하지 않으면 끈질기게 전화를 해대는 유관기관들의 부탁이나 협조 공문을 무시하기도 어렵습니다. 전교생 46명인 학교에서 35편의 불조심 작품이 나가도 우수상은 두 편, 군 도서관 독후감 응모에도 전교생이 거의 다 참여해도 작품은 우수상 1편(군 전체적으로 4편 시상)이니, 아이들에게 늘 미안합니다.

상장만 주어도 기가 살아요

올해에도 어김없이 들러리로 머문 아이들이 90%가 넘은 각종 작품 모집을 주관했던 담담자로서 아쉬움이 많았습니다. 오랜 경험으로 보면 특활 행사에 나가 상을 탄 아이들이 자신의 진로를 결정하는 경우를 많이 보았기 때문에 조금 무리를 해서라도 꾸준히 작품을 지도하여 응모시켜 왔습니다.

최대한 많이 상을 주어(상금이나 상품보다)최소한 아이들의 참가 의지만이라고 살려주는 작품 모집, 돌려 줄 마음만 먹는다면 아이들의 작품도 돌려줄 수 있는 '배려'문화가 정착되었으면 합니다. '응모한 작품은 반환하지 않는다'는 상투적인 표현이 이제는 없어졌으면 합니다. 세상은 바뀌었는데 여전히 변하지 않은 것이 바로 백일장의 관행이 아닌가 합니다. 

일정 수준 이상은 참가자의 절반까지는 못 주더라도 30% 정도는 상장만이라도 주었으면 합니다. 적어도 자신의 소질을 발견하기 위해 각종 대회에 참가하는 초,중,고등학생들에게. 특히 어린 싹이라 잘 다치는 초등학생들이 참가하는 백일장은 더욱 그랬으면 합니다.   아이들은 칭찬을 먹고 사는 예쁜 나무요, 꽃이니까요.

행사장에 직접 아이들을 데리고 가서 지도한 교사로서,우리 아이들의 밝은 미래를 위해 백일장의 낡은 관행이 고쳐지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합니다. 그리하여 우리 아이들이 세상에 나아가 감동을 주는 뮤지션으로, 화가로, 작가로, 국악인으로, 어떤 직업으로 가든 어린 날 받은 칭찬이라는 밑거름으로 당차게 살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 글을 올립니다.
장옥순 담양금성초/쉽게 살까, 오래 살까 외 8권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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