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교사는 말한다 <2>

2010.12.13 09:09:00

언어란 사람과 사람 사이를 연결하는 매체다. 그러기에 언어란 선한 사람이 선하게 사용하면 부드러운 향기로 표출되고, 악인이 악용하면 독약이 될 수 있다. 사람이 무기를 들어야만 남을 해치는 것은 아니다. 말이란 무기를 통해서 상대를 무력화시킬 수도 있고, 힘과 용기를 불러일으킬 수도 있는 것이다. 시간이 흘러 세월이 유슈와 같이 흘러가도 인간에게 변하지 말아야 하는 것은 인간이 지켜야 하는 기본양식인 것 같다. 아이가 어른을 멸시하고, 자식이 부모를 외면하는 인간의 법도가 무너져 가는 현실에서 아무리 우수한 지식을 인간에게 주입하여도 그것이 올바르게 사용될 지는 단정하기 어렵다.

청소년들의 언어는 갈수록 성적으로도 적나라하다. 예전에는 남학생이 사용하는 언어를 이제는 여학생이 대수롭지 않게 사용한다. 교사 앞에서 예사로 성적인 말을 표출하는 것이 마치 친구들 사이에서 이야기하는 것보다 더 자연스럽다. 표현에 있어서도 군더더기를 싫어한다. “짱 좋다” “완전 좋다” 등등은 오늘의 젊은이들의 용어에서 여유를 찾아보기 어렵다. 빠르고 짧게 그리고 강하게 표현하려는 것이 마치 승부수 세계에서 상대를 말로 제압하려는 그런 느낌을 받을 때가 많다. 자신에게는 너그럽고 상대에게는 거칠게 대하고자 하는 태도에는 철저한 이기주의적 사고를 내포하고 있다.

이런 이기주의적 사고를 학교 정문지도에서부터 고쳐보려고 인사를 하도록 시켜 보았다. 인사를 하도록 시키지 않았을 때와 어떤 차이를 보이는지 조용히 관찰해 보니, 부드럽게 학생을 대하면 학생의 인성도 부드러워지고, 거칠고 사납게 학생을 대하면 학생은 성난 이리와 같이 교사를 대한다. 그러면 성난 이리를 그 이상으로 대하면 학생은 어떤 반응이 나타날까 학생은 겉으로는 꺾이는 듯하지만 돌아서면 또 다른 것으로 교사에게 화풀이를 한다.

말의 윤리는 어디서부터 찾아야 할까? 초등학교에는 도덕과목이 있어 인간의 기본 태도를 배운다. 중학교, 고등학교를 거치면서 윤리에 대한 인식도 점차 높아 간다. 그런데 학년이 높아 갈수록 윤리가 이론적으로 치우치고 있다는 것이 문제다. 특히 인문계 고등학교에서 윤리는 이론적으로 치우쳐 체험학습 형식으로도 시청각 교육으로도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궁극적으로 윤리는 대학을 진학하기 위한 점수 획득 과목으로 전락돼 버린 오늘의 현실에서 윤리가 땅에 떨어졌다고 아우성치는 아이러니를 경험하고 있다.

진정한 윤리 과목의 가르침이 어디에 있어야 할까? 대학입시의 탐구과목으로 전략되고 있는 현실을 그대로 수용하면서 윤리를 가르쳐야 할까? 아니면 윤리가 학생들의 피부에 와 닿을 수 있도록 하는 체험학습 위주의 교양 과목으로 탈바꿈시켜야 할까? 어디에서부터 어떻게 인성 교육의 초안을 잡아야 할 지 한해를 넘기는 마당에서 아련히 명상에 잠긴다.
조기철 인천 초은고등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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