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와 폭력
언어폭력의 결과는 행동의 폭력이다. 언어를 바르게, 곱게, 부드럽게 그리고 온아하게 사용하는 사람의 마음에서는 안정감을 느낀다. 요즘 아이들이 매체를 통해 얻는 언어의 저속함이 가정에서 부모가 표현하는 말의 부드러움 속에서 정화되지 않는 것은 부모와 아이의 대화의 단절에서 오는 한 현상이다. 아이가 쓰는 억센 억양이 나타나도 부모는 아이가 좀 화가 났겠지. 저 아이는 그래 하고 단정해 버리는 것을 흔히 볼 수 있다.
행복한 가정에서 나타나는 감성은 아이의 언어에서부터 드러나기 마련이다. 깊은 산속에서 스며나는 산소는 대도시에서 품어나는 공기와는 다르듯이, 아이의 감성은 부모의 감성으로 나타난다. 밥상머리 교육이 좋다고 한 것도 어린 시절의 부모의 영향이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가를 절실하게 보여주는 것이다.
요즘 매스컴에서 연속적으로 터지는 교사 폭행과 폭언은 과연 학생들의 매스컴 영향으로만 돌려야 할까? 아무리 매스컴에서 폭력이 난무한다 하여도 폭력에도 정도라는 것이 있다. 자신을 길러 주는 자를 무참히 짓밟고, 자기를 지키는 자를 업신여긴다면 그 사회는 이미 병든 사회에 지나지 않다. 썩고 병든 교실이 이제는 막장교실로 표현되고 있는 실정이다.
교사를 학생들이 조롱하고, 학부모가 교실에 들어와 교사를 폭행하는 그런 부도덕한 사회는 이미 도덕적으로 정도를 넘어선 것이다. 교사는 이 사회의 마지막 전통을 지켜가는 보루다.학생을 보고 돈을 생각하고, 교실에 들어서서 황금을 얻을 계획으로 학생을 가르치는 교사는 없다. 그렇다고 교사가 경제에 문외한이 되어야 한다는 말은 아니다. 최소한 주가의 흐름이 현대 경제를 어떻게 좌지우지 하는가에 대한 정도는 알아야 한다.
교사에 대한 언어폭행이 기성을 부리는 요즘 진정한 교사의 위상은 무엇인가에 대해 회의에 빠지지 않을 수 없다. 학생인권조례가 제정되면서 더욱더 학생들의 폭력에 대한 무감각증은 교실 붕괴의 발판을 공고히 하는 것은 아닌지 의심스럽다. 서당의 회초리 문화가 현대 어린이들에게 올바르게 적용되지 못하고 학생 체벌로 이어지면서 교사에게는 면죄부로 살아 움직였다. 엉덩이를 회초리로 때리고, 손바닥을 매로 맞았다고 하여 어느 부모가 이의를 제기하겠느냐고 생각했던 현장 교사의 생각이 학부모의 생각과는 180도 다르다는 것을 사건이 일어난 연후에야 비로소 알게 된다.
영화 '주유소 습격 사건'을 보면 청소년의 흥미진진한 패싸움은 관객의 시야를 흥분의 도가니로 몰아간다. 이들의 내면을 조용히 파고들어가 볼 때마다 가정에서의 부모의 바른 일거일동은 자식을 바른 길로 안내해 주는 열쇄임은 그 누구도 부인할 수 없다.
어른들은 말한다. 요즘 아이들이 다 그렇다고. 아이들이 나쁜 행동을 하고 있어도 그냥 두고 지나가라고 혹자는 말하곤 한다. 괜히 그랬다가는 봉변만 당한다고. 참으로 무서운 말이다. 젊은이들의 앞날이 기성세대들의 바른 안내와 교육에 의해서 이루어지지 않고 그들의 앞날이 매체에 의해서 흐르는 물을 따라 간다면 그들의 앞날을 이끌 세대들은 인간이 아닌 기계가 되어야만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