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업이 없이 빌빌거리며 노는 사내를 낮잡아 이를 때 ‘놈팡이’라고 한다. 현재는 잘 쓰지 않지만 오랜 전에는 많이 쓰던 말이다. 지금도 나이 지긋한 사람들은 간혹 일을 하지 않고 빈둥거리며 놀던 과거를 회상하곤 할 때 이 단어를 쓴다.
그런데 이를 ‘놈팡이’라고 제대로 표현하는 사람은 하나도 없다. 모두 ‘놈팽이’라고 한다. ‘놈팡이’가 맞는 말이라고 일러주면 언제 바뀌었냐고 되묻는다.
‘놈팡이’
1. ‘사내’를 낮잡아 이르는 말.
- 어디 놈팡이가 없기로 저런 녀석을 애인이라고 사귀니?
- 사나이 쳐 놓고 늙으나 젊으나 논개한테는 침을 질질 흘리지 않는 놈팡이가 없거든(박종화, ‘임진왜란’).
2. 직업이 없이 빌빌거리며 노는 사내를 낮잡아 이르는 말.
- 아무 능력도 없는 놈팡이 신세
- 그는 하는 일 없이 놈팡이처럼 빈둥거리며 돌아다녔다.
3. 여자의 상대가 되는 사내를 낮잡아 이르는 말.
- 저놈은 그녀의 옛날 놈팡이다.
- 어떤 놈팡이와 살림을 차렸어?
‘놈팡이’를 ‘놈팽이’로 잘못 쓰는 이유는 ‘ㅣ’모음 역행동화 때문이다. ‘ㅣ’모음 역행동화란 뒤의 ‘ㅣ’모음 혹은 ‘ㅣ’모음을 갖고 있는 이중모음(야, 여, 요, 유)의 영향을 받아 앞의 ‘아, 어, 오, 우’가 각각 ‘애, 에, 외, 위’로 바뀌는 현상을 말한다. ‘아비’를 ‘애비’로, ‘잡히다’를 ‘잽히다’로 발음하는 것이 이런 경우다. 하지만 현대국어에서는 ‘ㅣ’모음 역행동화가 일어난 단어를 방언으로 보고 표준어로 인정하지 않는다. ‘ㅣ’모음 역행동화는 전국적으로 일반화되어 있는 현상이지만 주의하면 피할 수 있는 발음이다. 이런 이유로 동화형을 표준어로 삼지 않았다. 게다가 이 동화 현상은 너무나 광범위하여 그것을 다 표준어로 인정하면 큰 혼란을 야기할 우려가 있다.
이 단어는 이효석의 ‘메밀꽃 필 무렵’에서도 볼 수 있다.
‘날 기다린 것은 아니었으나, 그렇다고 달리 기다리는 놈팡이가 있는 것두 아니었네. 처녀는 울고 있단 말이야. 짐작은 대고 있었으나 성 서방네는 한창 어려워서 들고 날 판이 때였지.’
이 장면은 허 생원이 20여년 전 성서방네 처녀와의 인연을 회고하는 것이다. 허 생원이 그때의 이야기기를 조 선달에게 하면서 ‘성 서방네 처녀’가 특별히 상대하는 남자가 없었다는 뜻으로 ‘놈팡이’라고 표현한 것이다.
최근에는 직업이 없다는 의미로 ‘백수’라는 단어를 많이 쓴다. 하지만 ‘놈팡이’와 ‘백수’는 정서적 의미 차이가 있다. ‘백수’는 경제의 어려움으로 인해 취업을 못하고 있는 정서가 담겨 있고, ‘놈팡이’는 의도적으로 일을 하지 않는 게으름의 의미가 담겨 있다.
참고로 ‘백수’는 ‘백수건달’의 준말이다.
‘백수건달(白手乾達)’
돈 한 푼 없이 빈둥거리며 놀고먹는 건달.
- 그 사람은 부모에게서 받은 유산을 도박으로 다 날리고 하루아침에 백수건달이 되었다.
- 그는 대학을 졸업한 지 오 년이 지나도록 백수건달로 지내고 있다.
- 단골손님 중에 전과자가 하나 있었다. 그는 일정한 직업도 없는 백수건달이었다(황석영, ‘어둠의 자식들’).
‘백수건달’은 ‘백수’라고 줄여 쓰기도 하지만, ‘건달’로 쓰기도 한다. 이와 조금 다른 의미지만 ‘백두(白頭)’라는 단어도 있다. 이는 ‘탕건(宕巾)을 쓰지 못하였다는 뜻으로, 지체는 높으나 벼슬하지 못한 사람을 비유적으로 이르던 말’(그분은 그냥 백두고, 그 할아버님이 참판을 지냈소.-송기숙, ‘녹두 장군’. 아버지 되는 분은 정이란 이로 벼슬에 뜻을 두지 않고, 한평생을 백두로 보낸 이다.-박종화, ‘임진왜란)이다.
이 이야기를 꺼낸 것은 얼마 전 술좌석에서의 일이 발단이 되었다. 그때 직장 동료의 표현에 대해 ‘놈팽이’는 ‘놈팡이’가 표준어라고 정정해 주었다. 그랬더니 자기 고향에서는 ‘놈팽이’라고 한다고 우겼다. 심지어 주변 사람들에게 ‘놈팽이’가 더 정감이 간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급기야 ‘자장면’보다는 ‘짜장면’이 진짜처럼 느껴지듯 ‘놈팡이’보다 ‘놈팽이’가 진짜 같다는 괴변을 늘어놓았다. 이 친구처럼 구어적 상황이 익숙하다고 해도 표준어와 맞춤법에 아무 잣대나 들이대는 경우가 있는데 제발 삼가길 바란다. 틀린 것은 틀렸다고 인정하는 태도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