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브 잡스, 우리 시대 희망의 아이콘

2011.04.19 11:32:00

명진출판에서 이 시대 청소년들의 새로운 멘토와 리더상을 만들어가는 롤모델 시리즈를 펴내 인기를 얻었다. 이 시리즈는 세계 유명인의 삶의 모습을 통해 청소년이 어떻게 꿈을 설계해가야 하는지를 제시해 주는 기획물이다. ‘미래의 아이콘을 꿈꾸는 세계 청소년들의 롤모델 스티브 잡스 이야기’도 그 중 하나다.

스티브잡스는 큰 기업의 CEO라고만 단정 짓기 어려운 인물이다. 스티브는 청소년, 회사원, 그리고 기업인, 정치인 심지어 지역을 뛰어넘어 전 세게 사람들에게 새로운 문화를 여는 선각자라고 할 수 있다. 그가 있기 때문에 우리는 오늘도 옛것과 다른 세계로 달려가고 있다. 큰 충격도 없이 새로운 문화에 적응해가는 놀라운 생존 방식을 터득해 가고 있다.

책을 펼치면 스티브 잡스의 드라마 같은 삶을 만난다. 스티브 잡스는 태어나자마자 친부모를 떠나 캘리포니아 주 산타 클라라에 사는 폴/클라라 잡스 부부에게 입양되었다. 잡스를 입양한 부부는 그에게 스티븐 폴 잡스라 이름을 지어주었다. 잡스는 초등학교 시절도 순탄치 못했다.

스티브의 말썽꾸러기 성향과 고집은 학교생활에서도 그대로 드러났다. 품행은 불량했고 선생님들에게 자주 대드는가 하면, 교실에서 폭발물을 터뜨리고 뱀을 풀어놓는 행동도 서슴지 않았다.

이런 스티브에게 선생님들은 모두 고개를 휘둘렀다. 하지만 스티브에게 공부하는 재미도 가르쳐준 선생님이 있었다. 4학년 때 담임인 이모진 테디 힐 선생님이다. 그는 스티브 안에 웅크리고 있던 배움에 대한 열정을 이끌어냈다.
스티브는 중학생이 되자 다시 방황하기 시작했다. 친구들과의 사이도 안 좋았고, 학교생활에도 만족감을 느낄 수 없었다. 전학을 했지만 적응을 하지 못한 것은 마찬가지였다.

다행히 스티브가 전학을 간 곳은 실리콘밸리의 젊은 엔지니어들이 모여 사는 거리였다. 여기서 컴퓨터를 처음 보았다.

그가 젊은 나이에 회사를 차려 실리콘밸리의 상징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이처럼 컴퓨터 산업 초창기부터 그 동네에 살았던 과거의 경력이 가장 크게 작용했을 것이다. 그것은 스티브의 인생에서 가장 큰 행운이라고 할 수 있다.

스티브는 이사 간 곳에서 전자공학도 워즈를 만난다. 워즈는 컴퓨터에 대한 천재적인 기술이 있었고 스티브는 그 기술이 세상에 어떻게 미칠지에 관심이 많았다. 드디어 스티브 잡스는 1976년 스티브 워즈니악과 동업으로 애플 컴퓨터를 설립했다. 그리고 최초의 개인용 컴퓨터 애플1을 공개했다. 판매에도 성공했다. 1984년에는 IBM에 대항하여 최초의 그래픽 사용자 인터페이스를 탑재한 애플 리사를 내놓았다.



그러나 승승장구하던 사업이 석양으로 기울었다. 가격이 너무 비싸서 실패하였다. 또 매킨토시 프로젝트는 경쟁사에 비해 가격이 비싸기도 했다. 1985년 9월 스티브잡스는 자신이 세운 회사에 공식 사직서를 제출했다.

애플을 떠났지만 그는 꿈을 포기하지 않았다. 그는 애플을 떠난 뒤 넥스트라는 작은 왕국을 건설했다. 컴퓨터 그래픽 회사를 인수하였다. 컴퓨터를 넘어 컴퓨터 그래픽에 눈을 뜬 것이다. 잡스는 회사 이름을 픽사라 붙였고, 큰돈을 투자하였다. 스티브는 ‘틴 토이’로 컴퓨터 애니메이션 분야에 새로운 문을 열었다. 이어 픽사는 최초의 장편 3D 애니메이션 ‘토이 스토리’로 큰 성공을 거두었다. 넥스트는 할리우드 최고의 애니메이션 회사가 되었다. 그 후 넥스트는 애플에 인수되었으며 자연스럽게 그는 애플로 돌아왔다.

그와 동시에 아이팟을 내놓았다. 아이팟 하나만 있으면 누구나 1000개의 노래를 담아가지고 다니면서 어디서든 음악을 들을 수 있었다. 이 기기는 2007년 초까지 전 세계에서 8000만 개가 넘게 팔렸다. 최근에는 아이폰도 선보였다. 아이폰도 나오자마자 세계인을 감동시켰다.

잡스는 자신이 창업했던 회사에서 쫓겨나고, 10년 만에 다시 화려하게 복귀했지만 병 앞에는 무릎을 꿇었다. 췌장암이었다. 간 이식 수술도 받고, 호르몬 치료도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2011년 1월에는 스티브 잡스의 건강이 다시 악화되어 병가를 냈다. 이에 따라 애플의 주가도 요동을 치고, 잡스의 삶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소문도 떠돌았다.

이런 와중에 2011년 3월, 아이패드2를 발표하기 위해서 스티브 잡스가 모습을 나타냈다. 잡스는 걱정과 달리 건강한 모습을 보여 경영에 문제가 없음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얼굴이 많이 상했고, 몸도 유난히 말라 보였다. 아이패드가 가벼워지고 더 빠르게 작동되는 발전을 했지만, 그는 여전히 삶의 끝자락에 있는 것처럼 보였다.

1980년대에 스티브 잡스는 일을 빨리 하는 사람이 제일이라고 생각하는 스피드에 목숨 거는 젊은이였다. 하지만 2000년대에 그는 세상을 컨트롤할 수 있는 대단한 영향력을 지닌 ‘아이콘’과 같은 존재가 되었다. 그것은 시대의 흐름을 앞서보고 사람들의 움직이는 마음을 제대로 간파하는 능력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는 출생부터 순탄하지 않았지만, 천재적인 재능을 바탕으로 성장을 거듭했다. 기발한 상상력과 창의성을 바탕으로 애플이라는 기업을 키웠다. 자기가 세운 회사에서 해고당하고 한층 발전된 회사를 통해서 처음 기업으로 복귀하는 놀라움을 보여주었다. 그는 수많은 역경과 좌절을 이겨내고 오늘의 자리에 있다. 이와 같은 업적과 영향력 때문에 그를 추종하는 사람들이 전 세계에서 나오고 있다.

만약 제가 애플에서 해고당하지 않았다면 이 모든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겁니다. 몸에 좋은 약은 입에 쓰다고 하지요. 아마 제가 약이 필요했던 시기였나 봅니다. 때로 인생이 당신을 벽돌로 내리치는 것 같은 시기가 있습니다. 그래도 여러분의 신념을 잃지 마세요. 제가 포기하지 않고 계속 나아갈 수 있었던 유일한 힘은 제가 하는 일을 사랑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사랑하는 일은 스스로 찾아야 합니다. 사랑 앞에 진실하듯 일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글은 2005년 6월 12일 ‘인생의 세 가지 전환점’이라는 스탠퍼드 대학 졸업식 연설문의 일부다. 큰 자리에서 이런 이야기를 한 것을 보아 잡스의 파란만장한 삶에서 빼놓을 수 없었던 것이었나 보다.

세상 사람이 그를 주목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사람들은 그가 만든 컴퓨터나 거대 회사의 CEO라는 점이 아니다. 그의 삶이 우리를 감동시키고 있다. 최근 스티브가 병마를 이기고 다시 아이폰을 내놓으면서 뉴스의 중심에 있다. 이를 두고 언론은 그의 탁월한 기술력과 뛰어난 감각 등이 세계인을 사로잡고 있다고 평하고 있다. 하지만 정작 그를 추종하는 사람들은 병중에도 끝까지 삶을 포기하지 않는 그의 정신에 갈증을 풀고 있다.
윤재열 초지고 수석교사,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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