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가가 주판을 퉁겼다(?)

2011.09.08 18:26:00

지난 8월 중순에 소프트웨어 기업 구글이 하드웨어 생산자인 모토로라 모빌리티를 인수했다는 뉴스가 있었다. 이어서 HP가 PC사업을 분사하는 대신, 비즈니스 소프트웨어(SW)에 진력하겠다는 뉴스가 터졌다. 휴대전화 제조 1위 업체인 노키아의 추락은 더 이상 화젯거리도 아니다. 이런 글로벌 기업들의 움직임에 대해 언론은 연일 큰 이슈로 다루며 분석 기사를 내보내고 있다.

○ 구글, 모토로라 모빌리티 인수 … 별명 ‘상어’ 그가 웃은 까닭은 미국 구글이 모토로라 모빌리티(옛 모토로라의 휴대전화 부문)를 125억 달러(약 13조6200억원)에 사들이기로 했다. 월가는 분주하게 주판을 퉁겼다. 진짜 승자를 헤아려보기 위해서였다(중앙일보, 2011년 8월 17일).

이 기사의 내용은 구글의 인수로 기업 사냥꾼 칼 아이컨이 경제적 이익을 쥘 것이라는 전망이다. 그는 국내에선 2006년 KT&G를 공격해 ‘기업 사냥꾼’으로 유명해진 아이컨엔터프라이즈 회장이다. 별명도 무시무시한 ‘상어’다. 그는 모토로라에 거액을 투자했는데, 이번 합병으로 지분 가치가 높아질 것이라는 전망이다. 이에 대해 월가 플레이어들은 대체로 아이컨이 가장 기뻐할 사람이라는 데 동의하고 있다. 실제로 그는 M&A 발표 직후 블룸버그 TV와 인터뷰에서 아주 기쁘다고 말했다고 한다.

그러나 신문 기사에 ‘주판을 퉁겼다’는 잘못된 어법이다. 우선 ‘퉁기다’를 사전에서 찾아보면,

‘퉁기다’
1. 버티어 놓거나 잘 짜인 물건을 틀어지거나 쑥 빠지게 건드리다.
- 지게를 받쳐 놓은 작대기를 퉁기자 지게가 넘어졌다.
2. 다른 사람의 요구나 의견을 거절하다.
- 웬만하면 들어주지, 거 되게 퉁기네.
3. 뼈의 관절을 크게 어긋나게 하다.
- 한 번만 더 대들면 팔꿈치를 퉁겨 버릴 테다.
4. 기타, 하프 따위의 현을 당겼다 놓아 소리가 나게 하다.
- 그는 애인을 위해 기타 줄을 퉁기며 노래를 불렀다.

상황이나 의미만을 가지고 적절한 단어를 찾는 것은 쉽지 않지만, 사전 풀이에서 보듯 ‘주판’은 ‘퉁기다’와 어울리지 않는다. 이는 ‘주판을 튕기다’라고 하는 것이 적절하다.

‘튕기다’
1. 다른 물체에 부딪치거나 힘을 받아서 튀어 나오다.
- 공이 골대를 맞고 튕기고 말았다.
2.
(1) 엄지손가락 끝으로 다른 손가락 끝을 안쪽으로 힘주어 눌렀다가 놓음으로써 다른 손가락이 힘 있게 앞으로 나가게 하다.
- 손가락으로 구슬을 튕기다.
(2) 수판알을 올리거나 내림으로써 수판알을 움직이게 하다.
- 수판알을 튕겨 계산을 한다.



주판은 수판이라고 하는데 예에서 보듯이 ‘튕기다’라는 동사와 쓴다. ‘퉁기다’와 ‘튕기다’는 이는 같은 신문에서 바르게 쓴 경우도 있다.

○ 진정한 사귐은 선의(善意)에서 출발한다. 선(善)은 양(羊)처럼 온순하게 말하는 입(口)이다. 밀고 당기는 거래가 끼어들 틈이 없다. 거래는 거짓의 사귐이다. 악의(惡意)가 깔려 있다. 머릿속에 주판알 튕기면서 적당히 타협한다(중알일보, 2011년 8월30일, ‘논설’ 중에).

‘튕기다’와 ‘퉁기다’를 동시에 쓰는 경우도 있다. ‘기타 줄을 튕기다./가야금 줄을 튕기자 은은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둥둥 딩딩 줄을 튕겨 보면서 산란한 마음을 가라앉혔다.’는 현악기를 다루는 표현이다. 여기서 ‘튕기다’는 ‘퉁기다’라고 대체해도 의미가 훼손되지 않는다.
 
‘여자는 튕기는 게 매력이다.’라는 말처럼 ‘다른 사람의 요구나 의견을 거절하다.’라는 뜻으로 ‘튕기다’를 쓴다. 이는 ‘웬만하면 들어주지, 거 되게 퉁기네.’에서 보듯 같은 의미를 낸다. 여기서도 ‘퉁기다’와 ‘튕기다’는 동의어다.

2011년 9월 7일 다음 포털 머니투데이 뉴스 중 ‘주판알 튀기는 통신3사’ 표제어 도 잘못이다. 본문에서는 ‘통신 3사가 일제히 요금인하 계획을 내놓으면서 연말 경영목표를 맞추기 위한 주판알 튕기기에 바빠졌다.’라고 바르게 했지만, 표제어 ‘튀기다’는 적절하지 않다.

참고로 엄지손가락 끝으로 다른 손가락 끝을 안쪽으로 힘주어 눌렀다가 놓음으로써 다른 손가락이 힘 있게 앞으로 나가게 할 때 ‘튕기다’를 쓰는데, 이 상황과 비슷할 때 ‘튀기다’를 쓰기도 한다.

‘튀기다’
힘을 모았다가 갑자기 탁 놓아 내뻗치거나 튀게 하다.
- 물방울을 튀기다.
- 손가락을 튀기다.

이때 ‘튕기다’와 ‘튀기다’는 미세한 차이가 있다. 손가락을 이용하는 상황은 같지만, ‘튕길’ 때는 구체적 대상의 움직임이 포착된다. 즉 구체적인 목적어 ‘구슬’이 있다. 그러나 손가락만을 지칭할 때는 그냥 ‘손가락을 튀기다.’라고 한다. 이때는 손가락을 튕기다‘라고 하면 적절하지 않다.
윤재열 초지고 수석교사,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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