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능 시험을 본 아이들에게

2011.11.13 20:12:00

이제 수능시험이 끝났다. 가장 먼저 축하를 해주고 싶다. 여름에도 엉덩이에 땀띠를 참아가며 공부했던 너의 인내력에 박수를 보낸다. 한편으로는 실력을 충분히 발휘하지 못해 아쉬움이 남는 학생들도 있지만, 일단은 마음을 가라앉히고 생각을 가다듬어 보기 바란다. 결과를 겸허히 받아들이고, 새로운 계획을 세우는 것도 우리의 몫이다.

다만 걱정되는 것이 있다. 시험이 끝났다고 본분을 잃는 것은 잘못이다. 수업이 정상적으로 진행되지 않아 교실이 어수선한 것은 이해하겠다만, 우리가 지켜야 할 것은 지켜야 한다. 우선 지각도 안하던 너희들이 갑자기 등교 시간을 안 지키고 있는데 잘못 된 생각이다. 듣기로는 어른 흉내 내는 아이들이 많다고 한다. 일부는 거리에서 몰려다니며 흡연에 음주까지 한다고 하는데 걱정스럽다.

너희들은 즐거움을 누리고 여유 있는 시간을 보낸다고 한다. 그리고 그 동안 억눌렸던 마음에서 벗어나 자유를 누린다고 한다. 그러나 휴식과 학생 신분을 벗어나는 것은 다르다. 그것은 휴식이 아니고 잘못된 길로 가는 것이다.

너희들은 수능 시험을 끝냈을 뿐이지 아직 학생이다. 학생으로서 책임이 따르고 해서는 안 될 일이 있다. 조금만 있으면 어른이 되는데 굳이 벌써부터 어른 흉내를 낼 필요도 없다.

수능 시험은 대입 시험의 첫 관문일 뿐이다. 아직도 갈 길이 멀다. 마지막 3학년 기말고사가 남아 있고, 대학에 따라서는 논술 시험과 면접시험이 있다. 최후까지 긴장을 늦춰서는 안 된다.

수능 시험이 끝나면서 사물함에 책을 모두 버리고 어찌할 줄 모르는데, 오히려 이 순간을 기회의 발판으로 삼아야 한다. 여유 있을 때 돌보지 못한 나를 챙겨 보는 것은 어떨까. 그동안 공부하느냐 정신없이 달려왔다. 이 기회에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답을 찾는 노력을 해 보아야 한다. 그리고 ‘내 인생의 목표는 무엇인가?’ ‘나는 앞으로 이 사회에서 어떤 역할을 할 것인가?’라는 인간의 본질에 대한 질문을 끊임없이 던져야 한다.

그리고 책을 읽어야 한다. 책은 영원한 나의 스승이다. 책을 통해서 세상을 읽고, 세상으로 통하는 문을 열어야 한다. 지금까지는 학습의 도움을 주기 위해서 책을 읽었지만, 이제는 나의 생존을 위해서 읽는 다는 절박한 심정으로 책을 선택해야 한다. 선생님이 얼마 전 김난도 교수의 ‘아프니까 청춘이다’를 읽었는데, 너희들에게 꼭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어른들이 공부는 끝이 없다고 하는데 맞는 말이다. 대학을 가는 것으로 공부가 끝난 것이 아니라, 이제부터가 시작이다. 이제부터 하는 공부는 선생님이 도와주지도 않는다. 오직 나만이 나를 통제하고 내가 나를 이끌게 된다. 학창 시절에는 그 모든 것을 부모님이, 그리고 선생님이 챙겨주셨지만, 지금부터는 내가 모두 챙겨야 한다. 내가 필요한 것을 찾아 공부하고, 유혹에서도 스스로 벗어나는 힘을 발휘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앞으로의 삶은 내 책임이 더 막중하고, 나를 더 힘들게 할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대학생이 되면 어른이 된 것처럼 행동하는데, 사실 요즘 어른들은 젊은 세대에 대해 걱정을 많이 한다. 몸집은 커다랗지만 막상 말을 해 보면 생각도 표현도 다듬어진 것이 없다. 진정성도 부족하고, 엄숙함도 없다. 끈질긴 면도 없고 인내심도 없다. 공부는 잘해서 소위 일류대학에 가도 오피스텔 하난 계약도 못한다. 그 말은 아직도 한없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시험 결과가 아직 나오지 않았지만, 주변에서 채점을 해보고 미리 실망하는 학생들이 많이 있다. 그러나 그것은 오히려 자신의 인생에 마이너스다. 수능 시험은 대학을 가기 위한 시험이지 인생의 전부를 결정짓는 시험은 아니다. 결과를 반성하는 것은 좋지만 실망은 금물이다.

너무 낙담한 나머지 학창 시절 공부를 한 것까지 후회하는데 그럴 필요가 없다. 뜨거운 여름을 이기고 오랜 기간 준비해온 수능의 경험은 앞으로 더 넓은 세상을 살아가는데 밑거름이 되리라 확신한다. 공부가 안 된다고 고민하면서도 스스로 절제의 밤을 밝히며 책상 앞에 있었던 추억은 앞으로의 삶의 순간에서 만나는 나태와 안일을 이겨내는 방패가 될 것이다. 뿐만 아니라 수능 공부를 위해 외우고 풀던 그 많은 지식은 점수를 떠나 삶을 윤택하게 하는 자양분이 되고, 나아가서는 인생의 해법을 찾는데 도움을 준다.

사실 우리나라 고등학생들은 누구나 수능 시험을 보기 때문에, 이 일을 누구나 쉽게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이 일도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누구나 몇 번은 포기하고 싶었던 기억이 있다. 다시 말해서 수능 시험 준비를 위해 최선을 다한 경험은 앞으로 어떠한 어려운 일도 너끈히 헤쳐 나갈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것을 검증 받은 것이다.

수능 시험이 끝났다고 방황하는 것은 뚜렷한 목표 의식이 없기 때문이다. 새로운 목표를 정하고, 자신의 꿈을 다져야 한다. 그동안 공부하느라고 스스로 절제하던 마음가짐과 인내심을 발휘해 미래의 삶에 도전을 해야 한다.

날씨가 점점 쌀쌀해지고 하늘빛도 더욱 차갑게 느껴진다. 그동안 공부하느냐고 몸이 많이 유약해졌다. 요즘 한가할 때, 산에도 올라보고, 찬 새벽 공기를 마시면서 거리도 뛰어보기 바란다. 거듭 말하지만, 공부가 끝난 것이 아니다. 독서와 함께 자기 자신을 찾는데 힘쓰고, 내면이 더욱 익어가는 인생 설계를 해야 한다. 운동이나 기타 취미 활동을 통해 잘못된 유혹에 발목을 잡히지 말아야 한다. 선생님은 다시 한 번 너희들에게 축복의 박수를 보낸다. 그동안 열심히 공부하고, 따라준 것에 고마움을 느낀다. 그리고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너희들에게 무한한 기대감을 갖는다. 꼭 당당한 삶의 길로 걸어가라.
윤재열 초지고 수석교사,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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