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는 영혼의 여행

2012.04.23 09:32:00

글을 제법 오래 쓰고 있다. 정확히 문단에 발을 디딘 것으로만 따져도 18년째다. 고등학교 때 문학 공부에 빠져 들기 시작해서 원고지 메우는 작업까지 따지면 근 30년이 넘는다. 발표도 제법 많이 하고 있다. 글을 쓰는 것이 좋아 형식에 구애받지 않고 여기저기에 내놓고 있다.

글을 쓰는 일은 누가 시켜서 하는 일이 아니다. 오직 내가 좋아서 하는 짓이다. 혹자는 에너지를 쏟는 것에 비해 돈이 안 되는 사실을 알고는 오히려 측은하게 보기도 한다. 그러나 내가 글을 쓸 때는 적어도 돈과는 멀리 있다. 인생은 아파트 평수나 돈으로 채울 수 없는 부분이 있다. 누구나 마음속에는 갈망이 있다. 그것은 열정이라고 말할 수 있다. 나는 글을 쓰는 열정을 지녔다. 글을 쓰면서 삶의 뜨거움을 만끽한다.

글을 쓰면 삶의 풍요로움에 젖는다. 삶에 성실하게 접근하고, 열심히 사는 길을 찾게 된다. 한번뿐인 인생을 마구 살 수는 없지 않은가. 삶에 충실해야 할 필요가 있다. 글이 이 모든 것을 살피게 한다. 글쓰기는 치열한 사색을 언어로 표현하는 작업이다. 글을 통해서 혼란스러운 내면을 정리한다. 삶의 충동적인 파도를 잠재우고 질서를 구축한다. 글을 통해 세속의 어지러움에서 벗어난다. 삶의 모습을 조절하고 안으로 끌어들인다. 이제 삶은 안정을 찾고, 정화의 순간을 맞이한다. 마침내 영혼의 땅에 머무를 수 있다. 그러고 보면 글쓰기는 영혼을 여행하는 과정이다.

오늘도 달빛 내음이 흠씬 풍기는 시간에 수필을 한 편 쓴다. 봄바람에 대한 느낌, 개화를 기다리는 나무의 모습까지 언어로 차곡차곡 읽어낸다. 비록 정갈한 언어가 아닐지라도 미쳐보지 못했던 세상이 구석구석 보인다. 관념적인 하루도 알뜰하게 다듬어진다. 그리고 무거운 일상이 가벼워지는 느낌도 있다.

글에는 삶의 무늬가 펼쳐진다. 남과 굽었던 관계도 부드러워지고 어느새 삶의 잔무늬로 남는다. 글에는 내 자신의 감정이 정화되고, 정화된 감정은 다시 삶에 활력이 된다. 다른 사람에게 연민의 감정도 갖게 되면 내 삶이 따뜻해진다. 삶의 한계에 눈 뜨고, 삶의 늪과도 같은 혼돈을 정리한다. 글쓰기를 통해 이루는 내적 성숙함은 세상을 사는데 넉넉한 힘이 된다.

삶이란 마음먹은 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힘겹고 때로는 거칠고 황량하다. 매일 부딪히는 일상이라도 빗먹기 시작하면 감당하기 힘들다. 지난겨울에도 혹독한 추위에 떨었다. 그때 무엇이 그리도 추웠을까. 곰곰이 생각해보니, 나를 괴롭힌 것은 아등바등 살아가려는 내 안의 조급증이었다. 욕심 때문에 지쳐 있었다. 다행이 겨울 추위를 견디는 나무의 의연한 모습에 관한 글을 쓰면서 마음의 조급함을 벗어났다.

현직에서 물러나면 간혹 방황의 괴로움을 지고 다니는 사람들이 있다. 갑자기 혼자가 된 낯선 환경 때문이다. 혼자 있으면 외로울 것 같지만, 가끔 혼자 있는 시간이 필요하다. 혼자는 즐거움이 될 수 있다. 혼란스러움도 없고, 나를 돌아보는 시간을 가질 수 있다. 혼자서 자신과 만날 필요가 있다. 나는 글을 쓸 때 혼자라는 의식의 방에 들어간다. 그곳에서 나 자신과 만나고 정체성을 찾는다.

우리는 너무나 대중 속에 휩쓸려 살고 있다. 나도 발견하지 못하고 여기저기 떠밀려 왔다. 혼자서 자신을 돌이켜 볼 필요가 있다. “사색하지 않는 배움은 쓸모가 없다(學而不思卽罔)”라고 공자는 말했다. 혼자 있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고 성찰과 깨달음의 기회로 삼는 자세가 필요하다.

오늘날 사람들은 손 안에 스마트폰으로 급변하는 세상을 만난다. 저마다 최첨단의 교류를 즐기고 있다. 그야말로 전 세계인과 실시간으로 교감하고 있다. 하지만 디지털 세상에서의 만남은 온기가 없다. 인간의 근원적 존재의 모습은 누구나 혼자인 것처럼, 오히려 거대한 세상에서 외로움을 느끼게 한다. 미국의 사회학자 데이비드 리스먼이 말한 ‘군중 속의 고독’은 이를 두고 한 말이 아닐까.

인간을 지탱하는 것은 여럿이 있겠지만, 그 중에 큰 것이 마음이다. 마음이 불안하면 인간은 신체적 삶도 유지할 수 없다. 즉 우리는 감정을 교감하면서 외로움을 달랜다. 정보화 시대로 모든 것이 디지털화 되더라도 아날로그식의 전통적 교류는 반드시 필요하다. 인간관계는 아날로그형의 열정이 감동을 만든다. 수필은 화려하지 않지만 소박한 맛이 있다. 느리고 다소 지루하기도 하지만 사색의 길이 열린다. 디지털 세상일수록 아날로그 감동과 접목하는 디지로그 전략이 필요하다. 나는 글을 통해서 바깥세상을 만난다. 글을 쓰는 일은 디지털 세상을 사는 또 다른 삶의 방식이다.

윤재열 초지고 수석교사,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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