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을수을 넘어 간다' - 술과 역사 그리고 문학

2012.10.15 09:05:00


'수을수을 넘어 간다' 약주 한 잔 드시러 오시지요. 초대장을 받았다. 충북의 전통술 이야기와 체험. 지역의 전통주를 알리고 술 빚기 체험과 시음을 통해 전통문화의 중요성을 알리는 자리였다. 몇 년 동안 충북의 전통술을 취재해 책으로 발간하고, 이번 행사를 직접 준비한 중부매일 김정미 기자가 흥겨운 술판으로 마실 오라는 메시지도 보내왔다.

김 기자의 심성을 알고 있기에 시작부터 마무리까지 행사가 빈틈없이 진행될 것이라는 걸 미뤄 짐작했다. 여성소리그룹 미음과 판소리꾼 조동연의 축하공연, 무형문화재 보은 송로주 기능보유자 임경순씨의 시연, 무형문화재가 된 충북의 전통술 이야기 전시, 전통술 시음 및 품평회, 영상으로 만나는 술도가 사람들, 술에 대한 기억이나 술과 관련된 이야기 녹음, 진천 덕산양조장과 함께 술 빚기 체험 등 행사도 다양하다.

하나같이 입맛 당기는 소재들인데 출타할 일이 생겨 첫째, 둘째 날은 시간이 나지 않는다. 마지막 날(10월 7일)에서야 '술과 역사 그리고 문학'에 관한 이야기마당이 펼쳐지는 충북학생교육문화원으로 향했다.


행사장 앞 입간판에서 '술'의 옛말인 '수을'이 이야기마당을 ‘수을수을’ 넘겨줄 것 같은 예감이 든다. 마당이 펼쳐질 영화음악감상실의 의자 깊숙이 엉덩이를 들이밀고 행사가 시작될 때를 기다렸다.


이야기마당의 1부는 소설가 홍구범에 관해 권희돈 전 청주대학교 교수가 '홍구범의 삶과 문학'을 발표하고, 김영도 청주대학교 박사가 '홍구범은 누구인가-단편소설 「귀거래」속의 양조장을 중심으로'를 이야기했다.

2부는 독립운동가 범재 김규흥에 관해 이안재 옥천신문 대표가 '중국 신해혁명 한국인 최초 참가자 김규흥'을 발표하고, 정태희 춘추민속관 관장이 '충북 옥천의 문향헌과 약술'을 이야기했다.

내용을 간단히 종합해보면 홍구범은 1923년 충북 충주시 신니면 원평리에서 태어나 1947년 단편소설 ‘봄이 오면’으로 등단하고, 현실과 삶의 모순을 사실적이고 풍자적인 접근법으로 파헤쳤으며, 당대 최고의 평론가 조연현과 소설가이자 시인이었던 김동리에게 작품성을 인정받았고, 짧은 작품 활동기간 여러 장르의 작품을 발표하였으나 1950년 8월 중순경 인민군 보안서원에게 납치된 후 행적을 알 수 없다.

김규흥은 1872년 옥천군 옥천읍 문정리의 문양헌(현 춘추민속관 자리 안채)에서 태어나 1906년경 옥천 죽향초등학교를 세워 근대식 교육을 도입하고, 중국뿐 아니라 아시아의 다른 나라들에서도 정치적으로 중요한 사건이었던 신해혁명에 참가한 최초의 한국인으로 1936년 65세에 중국 천진에서 눈을 감기까지 독립운동사 연구물에 김규흥·김복(김규흥의 다른 이름)·범재란 이름이 자주 등장할 만큼 초기 독립운동사에 중요한 역할을 하였으나 자료와 연구가 부족하다.

홍구범과 김규흥이라는 인간은 분명 시대를 앞서간 선각자였다. 하지만 작품이나 인간됨, 나라를 위한 공적이 세상에 제대로 알려지지 않아 대접받지 못하고 있다.

두 집안은 지금까지 술과 연관되어 있다. 짧은 기간이나마 주덕양조장을 직접 운영했던 홍구범이 경험적 사실을 바탕으로 한 소설 '귀거래‘를 발표했고, 수필 ’작가일기‘의 주인공인 장남 홍수영이 현재 충주의 신니양조장을 운영하고 있다. 신니양조장과 주덕양조장이 사촌지간, 주덕양조장과 진천의 덕산양조장이 사돈지간이라는 것도 재미있는 사실이다.

김규흥이 나고 자란 문양헌과 괴정헌을 합한 춘추민속관에서 문향헌 약술을 빚고 있는 정태희 관장에 의하면 흥성대원군이 문향헌을 자주 방문했다는 기록이 있다. 또한 대원군을 맞이할 때 옥천지방의 곡식으로 만든 약술로 대접했을 것이고 그것이 청풍김씨 집안의 가양주다. 정 관장이 전국의 양조장을 찾아다니며 어린 시절 맛 본 술을 재현해 문향헌 약술을 만들어냈다.

한편 1760년 문향 김치신이 건립한 문향헌이 흥선대원군의 경복궁 복원 자금마련과 이곳에서 태어난 범재 김규흥이 해외에서 독립운동에 투신하고 오랜 세월 감옥에 투옥되며 가세가 기울어져 소유와 관리권한이 남의 손으로 넘어갔고, 걸출한 독립운동가가 태어난 고택이 지금 처마 밑 곳곳이 떨어져나가고 비가 새는 등 보수가 절실하지만 5천만 원도 되지 않는 예산을 의회 심의과정에서 삭감하는 현실에 울분을 토하는 정 관장의 얘기도 귀담아 들어야겠다.

이날 발제자나 토론자들이 힘주어 말했듯 홍구범과 김규흥에 관한 조사와 연구는 이제 시작에 불과하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그들이 이뤄낸 예술성이나 업적은 있는 그대로 찾아내야 한다. 그들을 지나간 역사 속에서 재조명하는 일은 현대를 살고 있는 우리들의 몫이다. 그러려면 더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져야한다.


예쁜 초대장부터 충북 전통술 이야기가 담긴 포켓용 책자, 소설가 홍구범과 독립운동가 범재 김규흥에 관한 자료집, '수을수을 넘어 간다'가 새겨진 술컵, 홍구범이 지은 '창고 근처 사람들'까지 정성이 가득 담긴 선물도 받았다.


푸른 하늘, 흰 구름, 비상을 꿈꾸는 독수리 조형물... 이야기마당이 펼쳐진 충북학생교육문화원의 가을 풍경이 멋지다.

인생살이 뭐 별건가. 행복은 스스로 만들어야 맛있다. 이렇게 좋은 가을날, 좋은 사람들과 마음 편히 내려놓고 ‘수을’ 한 잔 하는 자리 만들어야겠다.
변종만 상당초등학교 퇴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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