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과 함께 오른 유달산의 일등봉

2013.06.05 19:13:00

지난달 17일부터 이틀간 청주의 ‘사람과 산’ 회원들과 목포와 제주를 여객선으로 오가는 산행을 다녀왔다. 이번 산행은 취업 공부로 몸과 마음이 지친 둘째에게 휴식을 주고자 여행이었다. 또한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유달산의 일등봉과 한라산의 백록담에서 부자간에 자유를 만끽하는데 의미를 뒀다.

출발 시간인 5시가 지나자 88명을 태운 관광버스 두 대가 목포로 향한다. 차창 밖으로 파란 하늘에 흰 구름이 보여 여행 떠나는 사람들을 설레게 한다. 이른 시간에 떠나는 여행은 급하게 서둘러야 해 사연도 많다. 늦게 일어나 목포에서 합류하는 회원도 있다.


7시경 호남고속도로를 달리던 관광버스가 백양사휴게소에 도착했다. 화장실에 다녀오다 우연히 바라본 하늘에 평행선이 그려져 있다. 삶이 뭐 별건가. 때로는 여행길에 만난 멋진 풍경이 삶의 활력소가 된다.


무안광주고속도로와 서해안고속도로를 부지런히 달리더니 푸른 바다가 보인다. 오른편 바닷가로 압해대교, 목포대교, 목포해양대를 지나쳐 8시 40분경 목포연안여객선터미널 앞에 도착했다. 여객선터미널 주변은 뜨내기손님이 들르는 곳이라 음식 맛이 비슷하다. 아침을 먹은 후 터미널 안팎과 우리가 제주도에서 타고 올 로얄스타호가 출항하는 모습을 구경했다.

내륙의 큰 산줄기가 바닷가에 이르러 기암괴석으로 솟아오른 유달산. 이곳에 오르지 않았으면 목포에 다녀왔다고 말하지 말라 했다. 유달산(높이 228m)은 목포의 뒷산으로 야트막하지만 목포시내와 다도해를 한눈에 굽어볼 수 있는 명산이다. 이순신 장군이 전술에 이용했다는 노적봉, 영혼이 심판 받는다는 일등바위(율동바위), 심판 받은 영혼이 이동한다는 이등바위(이동바위) 등 갖가지 기암괴석과 병풍처럼 솟아오른 기암절벽이 이어져 '영달산' 혹은 ‘호남의 개골’이라고도 한다.


9시 30분부터 유달산 산행을 시작했다. 노적봉은 유달산 초입에 있는 해발 60m의 큰 바위덩어리다. 임진왜란 때 이순신 장군이 군량미를 쌓아놓은 것처럼 노적봉을 이엉으로 덮어 멀리서 바라본 왜적들이 저렇게 군량이 많으니 군사 또한 많을 것이라며 도망치게 했다.

노적봉 옆에 밀레니엄 새천년을 앞두고 제작한 ‘새천년시민의종’과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정규 기상관측을 시작한 옛 목포기상대 터를 기리는 ‘근대기상 100주년 기념’ 표석이 있다. 종각 처마에 김대중 전 대통령의 친필 현판이 걸려있다.


유달산은 오르지 않고도 왜 목포를 대표하는지 알 수 있는 산이다. 노적봉에서 앞을 바라보면 멋진 분재와 수석이 가득한 산이 정원처럼 펼쳐진다. 수목과 암석이 어우러진 풍경이 한 폭의 그림을 펼쳐놓은 것처럼 아름답다.

유달산과 유달산정기 표석을 구경하며 계단을 오르면 초입부터 멋있는 복바위(쥐바위,탕건바위)가 맞이한다. 두 번째 계단을 오르면 이순신장군동상이 서있고, 충성을 그리워하는 모충(慕忠) 표석을 지나 대학루로 가면 오포대가 있다.

원래 시민종각 위치에 있었던 오포는 1909년 1월부터 목포 시민들에게 정오를 알리기 위해 화약만 넣어 사용했는데 전쟁도구를 생활도구로 이용했다는 것이 특이하다.


남녀노소 누구나 산책하듯 가볍게 다녀올 수 있는 유달산에 대학루, 달성각, 유선각, 관운각, 소요정 정자가 있다. 이곳 정자에 앉아 아래를 내려다보면 유달산의 진면목이 느껴진다. 가깝게 또는 멀리 바라보이는 바다와 도시의 풍경이 일품이다. 한 남자를 사모했던 세자매가 사랑을 이루지 못한 채 학이 되어 하늘로 날아간 자리에 생겼다는 삼학도가 가깝게 보인다.

목포의 눈물, 목포는 항구다, 목포의 추억... 목포가 제목에 등장하는 노래들이 국민가요로 사랑받은 이유가 있다. 목포는 인근의 여러 섬을 비롯해 제주와 일본을 연결하는 호남의 대표적인 항구도시이다. 나라 잃은 설움과 가난으로 고생하던 시절 목포는 애환의 중심지였다. 유달산 중턱에서 이난영이 노래한 목포의 눈물 노래비를 만난다. 노래비에 앉아 흘러나오는 노랫가락을 음미해본다.

천자총통이 있는 광장에서 발포를 체험할 수 있는 기회도 주어진다. 발포가 눈 깜짝할 사이에 이뤄져 포연만 카메라에 담았다.


투구와 코뿔소를 닮은 투구바위를 지나면 일제 때 목포 개항 35주년을 기념하여 만든 유선각이 있다. 정자에서 목포 시내가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유달산은 거대한 수석전시장이다. 큰 고래가 입을 벌리고 있는 고래바위, 아래쪽에서 보면 서양식 종 모양인 종바위, 애기를 업은 큰 엄씨가 작은 엄씨에게 등을 돌리고 있는 애기바위(두 엄씨바위), 손가락을 걸고 약속하는 손가락바위를 차례로 만난다. 관운각을 지나면 앞 끝이 살짝 위로 올라간 나막신바위와 사각기둥 모양의 입석이 길게 뻗은 입석바위가 기다린다.


마당바위에 올라서면 바로 앞에서 일등봉이 위용을 자랑하고 다도해의 경관이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목포 시내와 다도해, 일등바위와 목포대교, 크고 작은 선박들이 시원스레 물살을 가르는 모습이 한 폭의 동양화다. 이렇게 멋진 곳에 1920년경 일본 불교를 전파하고자 홍법대사 상과 부동명왕 상을 조각해 눈엣가시다.

일등봉(일등바위)은 유달산에서 제일 높은 봉우리로 사람이 죽어서 영혼의 심판을 받는다하여 율동(律動)바위로도 불린다. 해발 228m를 알리는 유달산 정상 표석을 배경으로 추억도 남긴다.


이등바위 방향으로 내려서면 거북이를 닮은 흔들바위를 만난다. 큼지막한 바위에 올라서면 사람의 무게 때문에 바위가 균형을 잃을까 조바심이 난다. 아래로 지나가는 사람들을 보고 포효하는 얼굴바위에서 바다 방향을 바라보면 고하도와 용머리, 목포대교 뒤편의 달리도․장좌도․외달도가 가깝게 보인다.

주변에 멋진 바위들이 많다. 이곳에 올라 소요정과 여러 개의 바위가 무리를 이룬 이등바위(이동바위)를 바라보며 휴식한다. 전설에 의하면 일등바위에서 심판 받은 영혼이 이등바위에서 대기하다 삼학도의 3마리 학이나 고하도 용머리의 용에 실려 극락세계로 떠나거나 거북섬(龜島)의 거북이 등에 실려 용궁으로 떠났다.


점심을 먹은 후 유달산과 목포해양대학교, 목포대교, 고하도와 허사도를 지나 해남의 우수영임시여객선터미널로 갔다. 터미널에서 가까운 법정스님의 생가를 찾아갔다. 강강술래길의 시골집이 평생 '무소유'의 삶을 실천한 스님을 닮았다.

오후 2시 40분이 되자 3월 29일 첫 출항한 로얄스타호가 제주도로 향한다. 내해는 펄이 많아 바닷물이 흙탕물처럼 탁하다. 갑판에 올라 하의도, 조도, 관매도 등 크고 작은 섬들이 나타났다 사라지는 모습을 구경했다. 섬의 모습이 다르듯 사람들이 감판 위에서 여행을 즐기는 방법도 제각각이다. 왕년에 전선을 호령했던 참전노인들은 조용히 소주잔을 비우는데 오랜만에 구속에서 해방된 아줌마들은 왁자지껄 맥주잔을 돌리며 자유를 만끽한다.

제주도 부근의 해상 기상 악화로 배가 많이 흔들린다. 배 멀미로 고생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도착시간이 늦어진다. 조급해 한다고 해결될 일도 아니다. 여유를 누리며 시구를 떠올렸다.

<내해는/ 바다 속 뻘 뒤집어/ 흙탕물 만들고// 외해는/ 사람들 속 뒤집어/ 갈지자 걷게 한다>


6시경 제주도가 보인다. 항구에 도착하고도 땅에 발을 내딛는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 연동의 숙소에 짐을 푼 후 저녁을 먹고 밖으로 나오니 어둡다. 택시 요금 5천원 거리의 용두암으로 갔다. 아들과 산책을 하며 용두암 주변의 야경을 즐기는데 밤늦게까지 중국인 관광객들을 만난다.

용두암에서 가까운 선상횟집(064-742-5206, 011-9660-5206)에서 갈치 회를 먹었다. 주인의 인상이 선해 보여 들어갔더니 은빛갈치를 맛나게 하는 소스, 문어숙회 등 깔끔한 곁두리 음식, 진경국 사장님과 아드님의 친절한 서비스, 외부 손님에게 실내의 화장실을 선뜻 내주는 인간미 등 시간이 지날수록 이영돈의 먹거리 파일에 나오는 착한 가게를 닮았다. 문어숙회를 리필 받으며 아들과 오랫동안 얘기를 나누다 숙소로 갔다.
변종만 상당초등학교 퇴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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