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르는 물처럼 세월이 지나면 멀어지는 게 자연의 섭리다. 그래도 어린 시절의 추억이 담겨있는 옛 것이나 옛 이야기들이 하나, 둘 사라지는 건 못내 아쉽다. 들판 건너편으로 내 고향 작은 소래울의 뒷산이 보인다. 고향 가까이 가면 흙냄새가 다르듯 옛 추억은 누구나 소중하다. 무더위에 힘이 들어도 무심천 제방을 달리며 소소한 옛 이야기들을 끄집어내는 추억여행을 하기로 했다.
하상의 자전거 도로에서 제방으로 올라서면 제법 차량들의 통행이 잦다. 자전거를 타고 청주 시내 방향으로 달리면 제방 옆 청원군 옥산면 가락리에 청주시환경사업소가 있다. 환경사업소에서 청주지역의 생활하수·청주시와 청원군지역에서 수거되는 분뇨를 처리하고 음식물류 폐기물을 자원화 한다. 시설을 한 바퀴 둘러보면 환경보호의 중요성과 이곳에 근무하고 있는 사람들의 고마움을 실감한다.
환경사업소에서 가까운 청주시 흥덕구 신대동 하신대에 충북 최초의 교회가 있다. 신대동은 도보로 한양을 오가던 길목인데다 나루터가 있어 사람들의 왕래가 많았던 곳이다. 동네 주막에서 흰 광목에 십자가와 태극기를 그려 놓고 예배를 본 것이 신대교회의 시작이다.
교회의 좁은 마당에 이춘성 전도부인 공덕비와 오을석 장로 추념비, 교회 입구의 골목에 이 교회가 충북 최초의 교회임을 기념하는 ‘기독교전래기념비’가 서있다.
“올라오셔”
“셨다(쉬었다) 가셔”
교회를 둘러보고 나오는데 마을 안 정자에 계시던 할머니들이 먼저 말을 걸어온다. 길손에게 선뜻 자리를 내주고 시원한 음료수까지 따라주는 게 시골, 어쩌면 내 고향의 인심이다.
"까치내 물이 세꼉알(거울) 같았어"
"고기 노는 게 다보였을 때가 시방(지금)보다 좋았어"
할머니들의 모습이 돌아가신 어머니 같아 많은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잠깐 집에 다녀온다던 할머니가 강서2동에서 발행한 '옛 사진 모음집'을 들고 오셨다. 사진 촬영과 글 쓰는 게 취미인 내가 할머니들을 우연찮게 만난 것도 인연이다.
"아저씨, 이것도 인연여 뭐여"
"이렇게 찍은 사진을 누구에게 보여주지를 않아 봤는데 한 번도..."
"참 나 원..."
할머니가 책 속에 있는 '약혼식 사진(1950년대 말)'의 주인공이셨다. 19살에 25살짜리 멋쟁이 신랑을 만났던 할머니에게도 무심한 세월은 비껴가지 않았다. 그래도 정철원(82), 박연자(80) 할머니의 곱게 늙으시는 모습이 보기에 좋았다. 구수한 충청도 사투리가 듣고 싶어 빠른 시일 내에 음료수 사들고 찾아뵙기로 했다.
제방 아래로 하신대와 상신대가 이웃하고 있다. 큰 느티나무가 제방에서 그늘을 만드는 마을이 상신대다. 느티나무에서 국궁장이 가깝고 둔치에서 패러글라이딩을 즐기는 사람들도 보인다. 오른쪽 들판은 감자와 파를 수확하는 농부들의 손길이 바쁘다.
하천을 정비하기 전에는 지금 사람들이 여가를 즐기고 있는 둔치가 농민들이 식물을 재배하는 경작지였다. 시내와 가까운 근교농업지대이고 모래가 많은 사질토라 수박, 참외, 오이, 땅콩을 많이 심었다. 먹을 게 부족했던 시절 이곳까지 서리하러 왔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1983년 청주시로 편입되었지만 늘 옛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까치내 건너편으로 아파트가 들어찬 오창읍, 들판 건너편으로 해발 232m의 부모산과 55층 높이의 지웰시티가 한눈에 들어온다.
청주 시내를 흘러온 무심천과 오창 팔결에서 내려오는 미호천이 합수하는 합수머리에서 신대동을 거쳐 미호천으로 흐르는 물길이 까치내다. 합수머리 부분의 주막에 머물던 경상도 청년이 호랑이에게 당할 화를 면하고 과거에 장원급제 할 수 있도록 도움을 준 까치에 관한 전설이 전해온다. 까치내는 전설 속의 흰 까치가 나타난 합수머리로 해석되고, 작천(鵲川)은 까치내를 한자화한 지명이다.
까치내는 어린 시절 물놀이를 했던 추억의 장소다. 예전의 까치내는 백사장이 넓었고 맑은 물이 제법 많이 흘렀다. 그 당시의 청주는 물놀이를 할 곳이 마땅찮았고, 교통이 불편해 멀리 다녀올 수 없는 시절이라 까치내가 최고의 피서지였다.
여름이면 백사장과 제방의 나무 그늘에 피서 나온 사람들이 넘쳐났다. 좋은 자리는 힘깨나 쓰는 사람들의 차지였고 돈 있는 사람들에게는 뱃사공이 뱃놀이도 시켜줬다. 배로 직접 물고기를 잡던 까치내집의 매운탕 맛을 기억하는 사람들을 종종 만난다.
고향의 어른들은 여름철 하루 날을 잡아 까치내로 천렵을 갔다. 먼저 도착한 어른들이 백사장의 좋은 자리에 치알(차일)을 치고 솥을 걸었다. 물이 오염되지 않았을 때라 지금은 섬진강에만 있는 조개(재첩)가 무척 많았다. 남자 어른들이 술잔을 비우며 흥겹게 보낼 때 부녀자와 아이들은 모래 속에 있는 조개를 줍느라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작천보를 건설하며 까치내를 깨끗하게 정비했다. 백사장은 사라졌지만 수량은 예전처럼 많아졌다. 까치내집 대신 금강매운탕집이 반긴다. 청주의 진산 우암산도 가깝게 보인다. 금강의 지천인 무심천과 미호천이 합수머리인 까치내에서 하나가 되듯 내년 7월이면 청주시와 청원군이 통합 청주시로 출범한다.
합수머리에서 가까운 곳에 도시형 야영을 선호하는 사람들에게 최고로 인기 있는 야영지 문암생태공원이 있다. 나무데크, 물놀이시설, 나무그늘, 잔디밭, 놀이시설 등이 잘 갖춰져 있어 주말에는 가족단위 야영객들로 북적인다.
청주시민들의 나들이 장소가 예전에는 쓰레기 매립장이었고, 폐기물 매립장 공원화에 모델이 되었다는 것도 알아야 한다. 날씨가 흐린 날은 악취 때문에 문을 열어놓지 못했던 문암동 주변 강서2동 주민들의 희생이 문암생태공원이 만들어지는데 일등공신이었다. 매립장을 오가는 청소차의 전용도로가 무심천 자전거 도로의 일부 구간에 남아있다.
우암산은 흙으로 이뤄진 육산이라 산세가 부드럽다. 시내로 향하며 계속 우암산을 바라보고 달린다. 위치에 따라 모습을 달리하지만 우암산이 우리 곁에 있다는 것을 새삼 깨닫는다.
흥덕대교와 제1운천교를 지나면 무심천 변의 평지에 용화사가 있다. 고종의 후궁인 순빈 엄씨가 꿈에 나타난 일곱 미륵을 찾아내 1902년 창건한 법주사의 말사다. 1950년 6·25전쟁 때 불에 타 우리가 어린 시절에는 불상만 있었다. 1972년 미륵보전을 중건하고, 1985년 관음전을 세웠으며, 1996년 미륵보전을 용화보전으로 고쳐 오늘에 이른다. 크기가 1.4m에서 5.5m에 이르는 불상 7위가 보물 제985호 ‘청주용화사석불상군’이다.
무심천체육공원과 서문다리를 지나 용암동 방면으로 자전거의 페달을 부지런히 밟는다. 아침에 지나갔던 장소지만 그림자를 길게 드리운 저녁노을이 새로운 풍경을 만든다. 무심천으로 맑은 물이 흐르며 사계절 풍광이 아름다워졌다. 수달이 발견될 만큼 생태계가 잘 보존되어 철새들의 쉼터로도 손색이 없다.
가진 것이라곤 시간밖에 없는 사람처럼 급할 게 없는 하루였다. 두세 시간 거리를 8시간이나 걸려 집에 돌아왔다. 느릿느릿 세상구경 다하고 옛 이야기를 많이 찾아낸 추억 여행이라 보람도 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