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점수 '지능(IQ; Intelligence Quotient)'에 대해
얼마 전 IQ라는 말을 자주 썼다. IQ란 시험지로 사람의 능력을 평가해 나타난 값이다. 사람은 IQ라는 점수로 우열을 가렸다. IQ가 만들어졌던 당시 미국에 사는 밀입국자들에게 ‘지능검사’를 실시해보았다. 결과는 4/5가 정신박약자로 판명이 났다고 한다. 미국 생활에 적응하지 못하고 언어능력도 부족했기 때문이었다.
미국 정부는 IQ점수를 믿고 정신박약자로 판명난 밀입국자를 추방했다. 검사를 주도한 심리학자 ‘고더드’는 정신연령이 8-12세 사이에 머무른 모든 정신박약자를 사회에서 분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능검사가 보편화하면서 스탠포드 대학교 ‘루이스 터먼’ 교수는 사회적으로 성공하려면 IQ 115-120 이상이 되고, IQ 75 이하인 사람은 운전할 때 안전성이 의심된다고 했다. 그리고 정신박약자로 분리된 사람들을 범죄자, 알코올 중독자로 낙인찍어 격리수용을 하고 심지어 불임 수술까지 시켰다고 한다. 모든 범죄자가 정신박약자는 아니지만 정신박약아는 적어도 잠재적 범죄자라는 것이다.
IQ 점수를 신봉하여 사회적으로 적응하지 못하는 사람까지 낙인을 찍어 추방과 격리 수용, 심지어 불임 수술까지 시켰으니 얼마나 무서운 도구인가? 지능검사는 ‘비네 테스트’라고도 한다. 1905년 프랑스의 ‘알프레드 비네’가 만들었기 때문이다. 당시 지능검사를 만든 이유는 특수 교육이 필요한 학생들을 선발하는 방법을 개발하라는 교육부장관의 부탁 때문이다.
비네는 검사지를 만들면서 아이들의 미래에 어떤 영향을 끼칠까 걱정했다. 그래서 ‘우리의 연구는 아이들의 과거나 미래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 점수가 낮은 아이들이 선천적으로 무능한 것으로 여겨서는 안 된다.’라고 했다. 하지만 지능검사지가 본래의 목적과 다르게 활용된 것이다.
새로운 인간의 점수, 다중지능(MI; Multiple Intelligence)
비네에 의해 만든 IQ를 신봉하여 사람의 등급을 매긴지 70여년이 지나면서 IQ에 대해 의문을 품기 시작했다. IQ와 성취의 상관관계를 조사해 보았더니 IQ가 높은 사람이 실제로 사회적 성공을 거두는 경우는 많지 않았고(20%). IQ가 높으면 공부 잘한다고 하는 학습 능력의 관계도 높지 않았다(40% 정도). 따라서 사람의 능력을 제대로 조사할 수 있는 새로운 도구가 필요해졌다. 이것이 다중지능(MI)이다.
다중지능은 미국의 하버드대학교 하워드 가드너가 만들었다. 당시 가드너는 25년간 ‘하버드 프로젝트 제로’라는 연구를 맡은 팀장이었다. ‘제로(zero)가 붙은 이유는 지금까지 지능에 대해 연구한 것은 잘못된 것이고 인간은 아무것도 모른다는 것(zero)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가드너에 의해 연구한 검사지는 다양한 지적 능력을 의미 있게 설명할 수 있었다.
그러면 가드너가 제창한 ‘다중지능’의 내용은 무엇일까? 그것은 언어지능, 신체운동지능, 공간지능, 자기성찰지능, 음악지능, 인간친화지능, 자연지능, 논리수학지능의 8개로 나타낸다. 예를 들어 지능검사(IQ)에 의하면 ‘사람의 지능은 천재, 일반인, 저능아가 있다.’라는 말이 다중지능(MI)에서는 ‘모든 사람은 각기 다른 8가지 지능을 갖고 태어낸다. 다만 개인에 따라 강점지능의 차이가 나기 때문에 누구는 과학자로, 음악가. 스포츠맨으로 살아갈 뿐이다.’ 라고 할 수 있다.
사람은 각기 지능 구조를 갖고 태어난다. 그리고 각각의 영역은 독립적이지만 함께 작용한다. 따라서 누구나 교육을 통해 자신이 가진 8가지 지능의 영역을 일정수준 계발할 수 있다는 것이다.
현대 사회의 필요한 인간의 점수, 정서지능(EQ; Emotional Intelligence Quotient)
명문대학 수재라고 채용해서 회사를 운영해보니 어느 날 회사 기밀을 통째로 빼내 다른 곳에 팔아넘겼다. 사내 갈등만 일으키는 직원, 주식과 노름으로 탕진해서 노숙자가 되는 사람, 시험을 못 봐 옥상으로 올라가는 학생, 사업에 실패하여 한강 다리 위로 올라가는 사람, 늘어나는 이혼, 늘어나는 학교 폭력, 행복한 삶의 자화상인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품성교육을 시켜야 한다. 이것이 정서지능이다. 정서지능(EQ)는 IQ와 대조되는 개념으로 1995년 뉴욕타임즈 기자 다니엘 콜먼이 ‘Emotional Intelligence’라는 책을 출간하면서 세상에 알려졌다.
정서지능이 높은 사람은 남의 처지에서 생각하며 가치 있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 실천할 줄 안다. 정서지능이 높으면 창의력도 높아진다. 하고자 하는 일을 끈기 있게 몰입할 줄도 안다. 그래서 공부도 잘 할 수 있는 것이다. ‘마세멜로 이야기’에 만족 유예를 하는 어린아이가 커서 사회적으로 높은 성공을 이루었다고 하는 것은 어려움을 극복하고 이겨내는 정서지능과 관련된 말이다.
그러면 무엇으로 정서지능을 높일 수 있을까? 그것은 바람직한 관계 형성이다. 관계형성의 시작은 의사소통에서 비롯된다. 그런데 한 자녀 가정에다 맞벌이, 부모 역할은 학원 보내는 일, 뭐든지 학교가 해주길 바란다. 한마디로 교육의 주체가 되지 않는다. 정부도 선거 포퓰리즘으로 교육보다 복지와 보육에만 힘을 기울인다. 그래도 학교는 아이들의 정서지능을 높일 수 있다. 우뇌교육이 그것이다.
인간의 뇌는 좌뇌와 우뇌로 구분하며 뇌량으로 연결된다. 좌뇌는 분석적 사고를 하는 언어수리영역을 지배하여 주지 교과 점수 올리기에 적합하며, 우뇌는 직관적‧종합적 사고를 하는 운동감각, 공간감각, 음악 등의 지능을 관장하여 예술, 체육 활동에 적합하다. 그런데 우뇌의 또 다른 기능이 있다. 그것은 창의성과 정서지능이다. 한마디로 창의성과 정서지능을 높이려면 우뇌를 활성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학교는 예술, 체육활동을 강화해야 한다. 감성이 통하는 교육을 해야 한다. 이것이 우뇌교육이다.
따지고 보면 예전에도 우뇌교육을 했다. 어른의 훈계가 그렇고 어머니의 도시락이 그랬다. 넓은 들과 산이 아이들을 뛰어놀게 했다. 그러나 요즘은 어머니와 대화가 없고 놀이터와 운동장에서 아이들 소리가 사라진지 오래다. 점수가 모든 것을 말해주는 시대는 지났다. 점수는 사람의 모든 영역을 나타낼 수 없을뿐더러 공부를 못해도 자신의 강점이 무엇인지 발견하고 노력하면 크게 성공할 수 있다. 그러므로 점수 낮은 아이가 불행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재능과 관련 없이 살아가는 것이 더 불행한 것이다. 그런데 점수만 높으면 모든 것이 용서된다고 자녀를 학원으로 내몰고 있지 않은가? 행복한 삶, 학교 폭력 없애는 일은 정서지능을 높이는 우뇌교육에서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