멋진 가을단풍, 남산제일봉이 최고다

2013.11.11 12:04:00

가지각색 나무들이 짧은 가을을 아쉬워하며 농촌의 들녘은 물론 도시의 가로수까지 오색물결로 잔치를 열었다. 도심 가까이 내려온 단풍이 사방천지를 화사하게 만들었지만 골이 깊은 계곡이나 높은 산의 단풍이 더 아름답기에 거리 불문하고 단풍으로 유명한 산들은 인산인해다.

지난 10월 28일, 청주토요산악회원들과 합천의 남산제일봉으로 단풍산행을 다녀왔다. 7시에 용암동을 출발해 2차 집결지인 청주의료원으로 가니 청주실내체육관 주변에 관광버스가 가득하고, 고속도로 휴게소의 여자화장실 앞은 이른 아침부터 줄이 길게 이어져있다.

합천하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팔만대장경과 경판전을 보유하고 11월 10일까지 45일간 ‘2013 대장경세계문화축전’을 열고 있는 해인사와 옛날부터 ‘조선팔경’ 또는 ‘12대명산’의 하나로 꼽히며 남쪽 산자락이 해인사를 품고 있는 가야산(높이 1433m)부터 떠올린다.

오늘의 목적지는 해인사의 정남쪽에 위치하고 가야산국립공원에 속한 남산제일봉으로 가야산의 명성에 가려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지만 가을단풍이 무척 아름다운 곳이다. 해인사의 서쪽에 남산(높이 1113m)이 따로 있고 서울의 남산과 경주의 남산 때문에 남산제일봉의 이름이 궁금하다.

남산제일봉은 금강산의 축소판 같은 산세와 날카로운 바위능선의 기암괴석들이 마치 매화꽃이 만개한 것 같다는 매화산(梅花山)의 정상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남산제일봉(높이 1010m)은 남쪽에 있는 산을 뜻하기에 가야산 남쪽에서 으뜸인 봉우리이고, 남산제일봉이 남쪽의 매화산(높이 954m)보다 높아 독립된 산으로 보인다.

남산제일봉을 산행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청량동에서 시작해 청량사를 거쳐 정상을 밟고 해인사버스터미널 방향으로 내려온 후 홍류동계곡의 소리길을 걷는 것으로 마무리한다. 이 코스는 멋진 경치를 바라보며 산행하는 재미가 있지만 초입의 청량동마을부터 청량사를 거쳐 정상에 오르기까지 험한 비탈과 씨름을 해야 하는 고충이 따른다.


가야면소재지의 야천삼거리에서 해인사 방향으로 홍류동 계곡을 끼고 달리다 왼쪽의 매화산로로 접어든다. 근민교를 건너고 오토캠핑장을 지나 방금 지나온 가야면사무소 방향을 바라보며 산길을 달리면 청량동 아래편 길가에 산행지를 알리는 안내판이 있다. 차에서 내려 짐을 챙기고 가벼운 마음으로 산행을 시작한다.

가까운 곳에 주변의 멋진 풍경을 수면에 담은 황산저수지가 있다. 잠깐 등산로를 벗어나 제방에서 저수지를 바라보면 뒤편으로 남산제일봉의 기암괴석이 모습을 드러낸다. 초입부터 청량사까지 1.4㎞ 거리의 오르막 임도가 종아리를 당기며 괴롭히지만 한 발짝, 두 발짝 발걸음을 옮겨 청량사에 도착한다.


입구에서 천불산 청량사(千佛山 淸凉寺)라 써있는 표석이 맞이한다. 표석 앞에서 기암괴석들이 펼쳐진 남산제일봉이 천 가지 모양의 불상 바위가 산을 덮고 있는 모습과 같다하여 불가에서는 천불산이라 부른다는 것도 이해한다.

최치원이 자주 놀러 왔던 청량사는 해인사의 말사로 창건 연대가 명확하지 않고 가람도 크지 않은데 석등(보물 제253호), 석조석가여래좌상(보물 제265호), 석탑(보물 제266호) 등의 문화재가 있다. 하지만 해인사에 들르지 않는 등산객도 똑같이 입장료를 3000원씩이나 받는 것은 종교를 떠나 이해하기 힘들다.


청량사 왼쪽으로 등산로가 이어진다. 지금까지 걸어온 포장길 임도와 달리 이제부터는 통나무 계단의 산길이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몸이 천근만근인데다 이 산길이 급경사 오르막이어서 또 고생을 하지만 그동안의 경험으로 오르고 또 오르면 못 오를리 없다는 것을 안다.

흔히들 그 고생해가며 ‘산에 왜 오르느냐?’고 말한다. 또한 많은 사람들이 ‘산이 거기 있으니까’라고 답한다. 사실 에베레스트 3차 원정을 앞둔 영국의 유명 산악인 멜로리가 ‘왜 에베레스트에 올라가길 원하는가’를 묻는 청중의 물음에 시큰둥하게 대답한 것이 ‘Because it is there(산이 거기 있으니까)’였다.

그렇다면 나는 왜 산에 오르는가? 물론 누구에게나 힘든 고생을 참고 이겨내며 그동안의 생활을 뒤돌아보는 과정이 중요하다. 하지만 나는 무엇보다도 그곳에 새로운 것이 있을 거라는 호기심 때문에 여행을 떠나고 산에 오른다.


오르막이 끝난 첫 번째 쉼터 전망대에 오르면 왜 산에 오르는지를 저절로 깨닫는다. 한눈에 들어오는 중앙의 가야산줄기와 양쪽편의 기암괴석, 해인사와 홍류동 계곡이 오색단풍으로 새로운 세상을 만들었다. 산에 오르며 고생한 피로를 한 번에 사라지게 하는 이 멋진 풍경을 어디서 볼 것인가. 산 전체에 불이 난 듯 남산제일봉의 붉은 단풍이 절정이다.






가을산은 아름다운 단풍과 기암괴석이 어우러져야 멋진데 남산제일봉이 바로 그런 산이다. 가위바위보바위, 촛대바위 등 뾰족한 바위들이 능선을 따라가며 불꽃같이 이어지고 때로는 하늘에 솟아있는 것처럼 높고 큰 바위가 길을 막아서기도 한다. 다소 험해 보이지만 지정된 등산로와 계단을 이용하면 누구나 여유를 누리며 안전하게 정상에 오를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전망대에서 남산제일봉의 정상에 이르는 구간은 등산로의 대부분이 암반으로 되어있고 경사가 심한 철재 계단 계단을 오르느라 체력소모가 많다. 하지만 신선들의 놀이터인양 날카로운 바위능선과 오색단풍이 조화를 이루는 모습이 산행하는 내내 눈에서 떠나지 않고, 뒤돌아서 막 지나온 풍경을 내려다보거나 기암괴석이 삐죽삐죽 솟아 있는 정상 부근의 풍경을 바라보기에 바빠 산행이 힘든 줄 모른다.


드디어 7개의 암봉이 차례로 늘어서있는 남산제일봉 정상이다. 좋은 날씨와 멋진 단풍에 아내와 함께 정상에 오른 기쁨까지 더해지니 세상만사가 다 행복하다. 정상표석을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남기고 바닥 뚫려 있는 구멍을 구경한다.

남산제일봉은 화기의 봉으로 알려져 있다. 해인사 창건 후 7번이나 발생했던 화재가 남산제일봉의 다섯 방향에 물의 기운을 지니고 있는 소금단지를 묻으면서 사라졌다고 한다. 남산제일봉의 화기를 다스리고 해인사의 화재를 막기 위해 해마다 단옷날 해인사 스님들이 이곳 정상에 소금단지를 묻는다.


철제 계단을 따라 뒷편으로 내려가면 가까운 곳에서 정상을 한 번 더 바라볼 수 있다. 꼭대기 부분의 뒷모습을 훤히 드러낸 남산제일봉이 울퉁불퉁 근육질 몸매를 자랑하며 눈앞에 펼쳐진다. 하산하며 북쪽에서 바라본 뒷부분의 단풍과 암릉도 아름답다. 불현듯 뒷모습까지 아름다우면 더 인정받는 인생사가 생각났다.


정상에서 북쪽 홍류동계곡의 해인사관광호텔까지는 3.1㎞ 거리다. 평탄한 산길이 이어지는 계곡을 왜 돼지골이라 부르는지 모르겠다. 단풍나무들이 예쁘게 치장하고 슬며시 모습을 드러내는 이 산길을...

인생사는 참 얄궂어 이렇게 잘 정비 되어 있는 산길을 자주 걸어야겠다는 다짐이 바로 깨진다. 해인사버스터미널 앞 홍류동계곡이 ‘2013 대장경세계문화축전’에 참여한 관광객들로 넘쳐나는 것을 보며 일찌감치 소리길 산책을 포기한다. 해가 일찍 넘어가는 산골짜기까지 전국의 교통편이 참 좋아졌다. 사람들로 붐비는 축제장을 벗어나자 일행들을 태운 관광버스가 청주까지 일사천리로 달린다.
변종만 상당초등학교 퇴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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