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단을 떠날 날이 하루하루 가까워지고 있다. 내 처지에 있으면 누구나 아름다운 마무리를 꿈꾸며 새로운 시작에 대한 설렘으로 하루를 보낼 것이다. 교직에 첫발을 딛던 때가 어연 듯 36년인데 지나간 날은 기억 속에 아트막하고 새로운 내일이 설렘으로 다가오는 것이다. 이런 심정은 교직에 첫발을 딛던 때도 그러하였을 것이다.
되돌아보면 어려움도 있었지만 지금 와서는 정말 행복한 사람이구나 생각한다. 왜냐하면 나는 천국에서 살아가기 때문이다. 나는 아이들의 시끄러운 소리를 사랑한다. 그래서 운동장이 활기찬 학교로 만들기 위해 노력해왔다. 이곳에서 체육 교과전담제는 한 번도 빠지지 않았고 학급 대항 스포츠 경기도 매달 이루어졌다. 플롯, 바이올린, 오케스트라, 합창, 기타, 발레 등 예술적 심성이 풍부한 아이로 기르기 위해 노력해왔다.
그래서 그런지 아침에 학교로 오면 아이들의 재잘거림이 나를 기쁘게 한다. 시청각실에서 울려 퍼지는 맑고 고운 합창소리, 운동장에서 떠드는 소리, 그리고 교실에서 퍼지는 아이들의 웃음, 교장실 앞에서 뛰노는 소리, 이것이 천국의 음악이 아니고 무엇일까? 그러므로 나는 천국에서 지내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그것도 천국의 대장으로 말이다.
얼마 전 나는 아이들의 밝고 해맑은 얼굴을 보기위해 운동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무심코 눈에 들어온 장면은 운동장 구석 등나무 그늘숲에서 천국 시민인 별님반 꼬맹이들이 모여 있었다. 별님반은 다섯 살배기 유치원생이다.
‘선생님은 어디 있지? 꼬맹이들끼리 뭐하지?’
나는 발걸음을 옮겼다. 아이들은 여전히 모여서 뭔가를 지켜보며 재잘거리고 있었다.
‘뭐지?’
가까이 가니 꼬맹이들이 반갑게 맞이한다.
“원장선생님, 안녕하세요.”
“그래. 뭐하니?”
“보세요.”
한 아이가 나를 잡아끈다. 아이들을 몰두하게 만든 것은 벌레 한 마리였다. 풀숲 벌레가 기어 나와 아이들의 시선을 사로잡고 있는 것이다.
“원장선생님, 저 벌레 이름 뭐예요?”
“글쎄, 잘 모르겠는데.”
“원장님도 몰라요?”
“미안해, 재미있니?”
“얘”
“신기해요.”
내가 떠날 때까지 아이들은 벌레만 쳐다보고 웃고 떠들었다.
나는 생각 보았다. 어른들이 벌레를 보면 뭐할까?
‘농약을 쳐야겠어.’
아니면 무관심하게 지나가거나 벌레를 잡아 죽일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학교 기사들에게 죽이라고 할 것이고.
아이들은 호기심으로 가득 하다. 벌레 한 마리, 나뭇가지 부러진 것 하나까지 호기심과 꿈으로 가득하다. 나뭇가지 부러진 것으로 해리포터의 마법의 빗자루로 변신할 수 있다. 부러진 빗자루로 세상을 여행할 수 있다. 그런데 어른들의 마음 주머니에는 무엇이 들어있을까?
욕심과 이기심, 질투, 시기심이 아닐까? 그리고 그것으로 ‘아니다.’, ‘맞다.’를 선택할 것이다. 호기심을 잃어버리고 살아가는 어른들이 마음 주머니, 그 때문에 얼굴에 주름이 늘고 머리카락이 하얗게 변하는 것은 아닐는지.
이와는 달리 아이들의 마음주머니에는 호기심과 꿈으로 가득하다.
“저게 뭐지?”
“언제 초등학교에 들어갈 수 있어요?”
“언제 중학생이 되지?”
“언제 아빠처럼 크지?”
그러나 어른들은 이렇게 말한다.
“내가 벌써 오십이 되었나? 세월 참 빠르긴 하구먼.”
“나이 들어 마누라한데 잘 보여야 돼. 아니면 이삿집 개 보다 못하대.”
호기심을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 꿈 꿀 줄도 모른다. 사랑할 줄도 모른다. 단지 승진, 돈, 자식 걱정, 건강 이런 것 밖에 없다. 늙지 않으려면 아이들처럼 꿈꾸는 어른이 되자.
전국 노래자랑, 송해 씨를 봐라. 90살이라고 믿을 수 있는가? 송해 씨의 건강비결은 꿈꾸는 삶이다. 그것도 어른의 꿈이 아니라 아이들의 꿈이다. 그래서 아이들과 젊은이들에게 교감하고 있는 것이다. 꿈꾸는 생활은 건강한 삶, 행복한 삶을 만들어준다.
워즈워드는 아이는 어른의 아버지라고 했다. 호기심과 꿈을 잃어버린 어른은 아이들을 통해 호기심을 배워라. 하모니카나 색소폰 하나쯤 연주하고, 댄스파티에 나가 맘에 드는 파트너를 선택해 멋지게 춤추고, 설레는 맘을 담아 누군가에게 편지를 써라. 꿈을 꿔라.
나의 천국, 그곳에는 꿈꾸는 아이들이 있었다. 그리고 나는 꿈꾸는 아이들에게 나의 꿈을 배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