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죄 짓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 찾으라고 하면 하나도 없을 겁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죄를 짓지 않고 살 수는 없습니다. 이렇게 사람은 죄에서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인륜과 도리에서 벗어나서 죄를 짓고 사는 사람을 짐승이라 부릅니다.
“짐승보다 못한 놈이야.”
“짐승 같은 짓이야.”
“천벌을 받을 거야.”
이런 말을 자주 씁니다. 확실히 사람과 짐승을 구분하는 잣대는 ‘옳고 그름’에 대한 잣대가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정의라고 합니다.
우리는 세상을 살면서 하루에도 수천 번 선택을 하면서 삽니다. 정의란 가치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옳고 그름에 대한 바람직한 선택과 행동에 있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선택에 있어서 부단히 갈등을 가집니다. 그러면서도 선택받지 못한 가치를 무시하면서 당연하다고 믿습니다. 그래야 마음이 편하게 되니까요. 즉 옳고 그름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하지 않는 겁니다.
이렇게 하면서 지내는 것은 개인의 가치관 때문입니다. 그러나 가치판단의 기준이 잘 된 사람은 사회적 행동에 문제가 덜하지만 가치판단을 잘못 길러놓은 사람은 문제가 많아집니다.
도둑에게는 잘 훔치는 일이 정의이고 북한에서는 핵무기 개발이 정의입니다. 기독교인들은 불상을 우상라고 하지만, 불교도들은 예수상, 마리아상, 혹은 십자가를 우상이라고 하지 않습니다. 기독교인들이 불상을 우상으로 받아들이는 생각은 정의에 어긋날까요?
기독교인들에게는 ‘나 이외에 다른 신을 믿지 말라’는 가르침이 있기 때문입니다. 기독교인들은 이것을 신념으로서 받아들인 것입니다. 반대로 불교인들은 우상으로 섬기지 말라는 것을 신념으로서 받아들이는 정도가 기독교인들보다 덜하기 때문입니다.
여성의 일자리 문제도 그렇습니다. 이슬람국가의 일부다처주의자들에게 물어보세요. 같은 대답이 나올까요? 저축보다 소비가 미덕이다. 나눠는 기쁨, 기다리는 기쁨 로또 등으로 가르치는 경제정책이 국민에게 행복을 가져왔는가? 수많은 신용불량자에게 묻는다면 다른 답이 있을 것입니다.
이렇게 정의는 종교, 문화, 집단의 가치, 도덕, 법률 등에 부단한 영향을 받습니다. 특히 이익집단과 자연집단이 만들어준 가치의 영향력은 무시할 수 없습니다.
그러면 정의를 실천하는데 중요한 가치는 무엇인가? 그것은 개인의 가치관입니다. 개인의 가치관은 집단의 결정이나 남의 소리에 영향을 받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소리에 영향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즉 양심과 이성의 소리를 말하는 것입니다. 양심과 이성이 주인이 되어야 올바른 정의가 될 수 있습니다.
집단, 문화, 종교 등이 개인의 가치관을 넘어설 수 없습니다. 그러면 올바른 정의가 이루어질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정의란 늘 갈등의 상황에 놓이게 마련입니다.
하버드 대학 마이클 센텔 교수님도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책에서도 ‘정의란 무엇이다 구체적으로 찍어서 대답할 수 없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정의가 바탕이 되어야 합니다. 사회적인 지도자가 되려면 정의로움을 실천해야 합니다.
그러자면 바람직한 가치관을 갖는 일이 중요합니다. 가치관은 양심의 소리이자 신념입니다. 또한 용기가 필요합니다. 잘못된 집단의 결정을 무조건 따르지 않는 것, 힘센 아이나 공부 잘하는 아이가 하는 말이니까 들어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실천하는 것이 용기입니다.
진정으로 행복해지는 것, 가치 있는 삶을 사는 데에는 정의가 있습니다. 오늘의 교육은 가치관을 기르는 것이 무엇보다 필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