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능 '세계지리 8번 문항 오류' 논란과 소송을 보면서

2013.12.02 12:56:00

2014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을 치른 수험생들이 세계지리 문항에 문제가 있다며 집단 소송을 내 사회문제가 되고 있다. 언론보도에 따르면 수험생 38명은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이하 평가원)이 세계지리 8번 문항의 정답을 2번으로 결정, 이에 근거해 수능 등급을 결정한 것을 취소해달라는 소송을 서울행정법원에 낸 것으로 나타났다.

문제가 된 세계지리 8번 문항은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과 유럽연합(EU)에 대한 옳은 설명을 고르는 문제다. 평가원은 'EU가 NAFTA보다 총생산액의 규모가 크다'는 보기 ㉢이 맞는 설명이라고 보고 문제를 냈다.

수험생들의 주장을 살펴본다. "세계지리 8번 문항의 지문은 객관적으로 틀린 지문으로 평균 수준의 수험생이 답을 고를 수 없게 만들었다. 이 문제는 '정답 없음' 처리가 돼야 한다"이다. 수험생들은 "총생산액은 매년 변화하는 통계수치인데 해당 문제에서는 어느 시점으로 비교할지 기준시점을 제시하지 않아 문제 자체에 오류가 있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문제에 제시된 그림 표시처럼 기준 시점을 2012년으로 본다면 당시 EU의 실제 총생산액은 17조730억1천100만 달러이고 NAFTA는 18조6천220억9천200만달러다. 보기 ㉢이 포함된 2번은 정답이 될 수 없다"고 설명했다.


평가원은 "세계지리 교과서와 EBS 교재에 EU가 NAFTA보다 총생산액 규모가 크다는 일반적 내용이 있고 2007∼2011년 통계도 마찬가지"라는 의견을 굽히지 않는다. 이의를 제기하는 수험생들의 의견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리하여 2번을 정답으로 성적을 발표해 수능 성적표를 나누어 주었다. 그리하여 수험생들은 반발하여 집단 소송에까지 이른 것이다.

누구의 주장이 맞는가? 추후 나오는 법원의 판결로 넘어갔다. 법원이 평가원의 손을 들어준다면 모르겠으나 수험생의 편을 들어준다면 커다란 혼란이 올 것 같다. 후폭풍이 사회혼란으로 이어질 수 있다. 국민들의 국가에 대한 믿음에 큰 구멍이 뚫리는 것이다.

평가원의 입장은 충분히 이해가 간다. 수험생의 주장을 받아들였을 경우, 수능 신뢰 붕괴, 국가 공신력의 문제, 또 다른 피해를 보는 학생에 대한 움직임 등 여러 가지를 감안했을 것이다. 평가원의 움직임을 보면서 ‘잘못을 인정’하기가 참으로 어렵구나를 느끼게 된다.

교육계에서 30년 이상 몸담고 있는 필자의 입장은 이렇다. 평가원의 주장이 너무나 옹색하다는 것. 이의를 제기하는 수험생을 논리적 근거를 대어 설득해야 하는데 그게 부족하다. 상대방이 받아들일 수 있도록 출제의 타당성을 제시해야 하는데 그게 아니다.

학교에서는 교과서를 가르치는 것이 아니다. 평가원이 거론한 EBS 교재는 더욱 설득력이 없다. EBS 교재가 출제의 근거가 될 수 없다. 초․중등교육법에 의하면 “학교에서는 교육과정을 운영하여야 한다”로 명시되어 있다. 학교는 교육과정을 가르치는 것이지 교과서를 가르치는 것이 아니다. 교과서는 교육과정을 가르치는 하나의 교재에 불과한 것이다. 교과서에 나타난 내용이 절대진리는 아니다.

학교에서 교사들은 국가 수준의 교육과정을 학교 교육과정으로 재구성하여 가르친다. 재구성 과정에서 시사적인 내용이 들어갈 수 있고 최근의 통계자료가 들어갈 수 있다. 또 그렇게 가르치는 교사가 유능한 교사다. 학생들도 최신 자료를 공부하면서 교과서 내용을 비판적으로 수용하는 것이 올바른 학문의 자세다.

그렇다면 교과서에 제시된 몇 년 전 통계만 알고 있는 학생과 최근의 통계를 알고 있는 사람 중 누가 앞서가고 있을까? 누가 더 넓고 깊게 공부하고 있을까? 불문가지다. 평가원에서는 출제와 검토과정에서 이러한 오류 문항을 철저히 가려냈어야 했다. 시비가 나올 문항은 보완하거나 배제했어야 옳다. 그 검증과정을 소홀히 한 것이다.

학교의 정기고사에서도 출제오류로 인하여 학생과 학부모의 이의제기와 항의를 받는 경우가 있다. 이럴 경우, 출제 오류를 인정하고 대응하면 사후처리가 순탄하다. 그렇지 않고 억지를 부리는 경우, 학생들에게는 학교불신, 교육불신, 기성세대 불신은 물론 국가불신에까지 이어진다. 국가가 교육적으로 풀어야 할 것을 법원 판단으로까지 가는 것이 안타까워 하는 말이다.
이영관 교육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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