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악의 분별교육

2013.12.11 15:52:00

아침 6시다. 기숙사 커텐을 열면 암흑천지다. 학생들은 기말준비를 위해 여념이 없다. 아침식사를 할 때도 대부분의 학생들이 공부를 하면서 식사를 한다. 그만큼 귀중한 시간이다. 날씨가 싸늘해지면 날이 밝아질 때까지 기숙사에 머물면서 책과 친하게 지낸다.

일본의 소설가인 아쿠타가와 류노스케의 ‘랴쇼몽’의 소설을 읽었다. 이 작자는 35세의 젊은 나이로 수면제를 먹고 자살하기까지 불과 10년 남짓한 짧은 기간이었으나, 이 짧은 기간 동안에 150편의 소설을 썼다. 그 정도로 뛰어난 작가다. 이 소설은 이 작가의 사실상의 출세작이고 대표작이다.

주인공은 어느 한 ‘하인’이다. 이 ‘하인’은 불경기로 인해 4,5일 전에 주인으로부터 해고당했다. 이제 먹고 살 길이 없다. 고민을 하고 있다. 굶어 죽을 것이냐, 도둑질을 할 것이냐의 선택의 기로에서 갈등을 하고 있다. 사는 길은 도둑질을 하는 것밖에 없다고 생각하지만 도둑질을 하려는 용기가 나지 않는다.

그런데 랴쇼몽(羅生門)에서 한 노파가 여자의 송장에서 머리카락을 뽑고 있는 것을 발견한다. 그 노파에게 왜 송장의 머리카락을 뽑는지 물었다. 그 여자는 머리카락을 뽑아서 타래를 만들어 먹고 살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그 노파는 하인에게 말했다. 송장의 머리카락을 뽑는 것은 나쁜 일이다. 하지만 여기 사자(송장)들은 모두 그만한 일을 당해도 되는 인간들이다. 뱀을 토막을 내서 말린 것을 마른 생선이라고 속여 디테하키- 긴 칼을 차고 동궁을 시위하는 무인들-의 진으로 팔았다. 노파는 이 여자가 한 일이 나쁜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였다. 그 짓을 하지 않으면 굶어 죽는 판이니까.

이 말을 들은 하인은 용기가 생겼다. 무슨 용기일까? 처음에는 굶어 죽지 않기 위해 도둑을 하는 것에 대한 죄의식 때문에 용기를 갖지 못했다가 그 노파의 말에 굶어 죽지 않기 위해 하는 도둑은 죄가 아니구나, 악이 아니구나 하는 생각으로 바뀌어 도둑질 하려는 용기다.

젊은 나이에 수면죄를 먹고 자살을 했다는 것은 정신적인 안정이 되어 있지 않았음을 이 소설을 통해서도 알 수 있다. 먹고 살기 위해서는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아도 된다는 의식이 이 소설에 깔려 있다. 정말 아쉽다. 먹고 살 수 있는 방법이 없다면 살 길을 선한 방법으로 찾으려고 했어야 하는데 분명 도둑이 죄고 악인 줄 알면서 먹고 사는 것을 빌미로 도둑을 합리화하는 것이 문제였다. 새로운 살 길을 모색하는 소설이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아무리 살기가 어렵고 죽음에 직면에 있다 해도 죄의 길, 악의 길이 바른 길인 양 암시하고 가르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학생들이 선과 악, 의와 죄의 분별력을 가질 수 있도록 가르치는 것이 필요하다. 선악의 분별교육은 참 중요하다. 후세들이 사는 세상이 밝은 세상이 되기 위해서는 끊임없는 선악의 분별교육, 선의 실천교육이 필요하다. 아무리 길이 없다고 해도 반드시 길은 있다. 이 길이 바로 희망이다.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이라도 한 사람이 가고 많은 사람이 가면 그게 바로 길이 된다. 그 길은 바른 길이어야 하고, 옳은 길이어야 한다.

학생들에게 선과 악을 분별할 수 있는 힘을 길러주어야 하겠고, 악을 행하기보다 선을 행하는 마음을 갖도록 해야 하겠다. 나의 처한 환경이 어렵고 힘들더라도 그 어려운 환경을 극복하는 힘을 키워야 하고 그 길을 가려고 하는 의지와 용기를 갖게 해야 할 것이다. 무슨 일이든 죄나 악을 합리화해서는 안 된다.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으면서 사는 길을 택하는 이기적인 사고도 버리도록 가르쳐야 할 것 같다.

중국의 소설가인 루쉰의 ‘고향’을 읽어보면 「희망이란 땅 위의 길과 같아서 기실은 땅 위에는 본래 길이 없으면서도 걸어가는 사람이 많아지면 곧 길이 된다」라고 하면서 끝을 맺는다. 괴롭고 힘들고 마비되어 버린 생활을 떠나서 응당 새로운 생활을 하게 하도록 학생들에게 바른 길을 제시하고 그 길을 갈 수 있도록 힘과 용기를 심어주어야 희망이 있다.
문곤섭 전 울산외국어고등학교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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