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인성교육

2013.12.13 14:20:00

나도향의 ‘벙어리 삼룡이’를 읽으면 한편으로 가슴이 답답하고 한편으로 후련하다. 삼룡이는 말 못하는 장애우인데다 하인(머슴)이다. 거기에다 얼굴도 흉측하다. 키도 작고 얼굴도 얽었다. 이러니 부자의 딸, 배운 자의 딸, 어떤 이성하고는 가까이 할 수 없는, 할 꿈도 꾸지 못하는 이다.

그런데도 삼룡이의 성품은 빛났다. 진실하다. 충성스럽다. 부지런하다. 세차다. 슬기롭다. 조심성 있다. 실수가 없다. 이 정도가 되면 세계 선도적 인재가 될 인품으로는 하나도 빠지지 않는다. 이런 성품, 인품, 사람됨은 꼭 배워야 하지 않을까 싶다. 인사도 잘 했을 것이고 주인의 말이라면 무엇이든지 다 들었을 것이며 주인의 아들이 동네 아이들로부터 피해를 입으면 보호해주는 역할도 톡톡히 해냈다.

창의적 인성교육에 있어서 진실, 정직, 근면, 건강, 지혜, 세밀함, 예의, 순종, 보호자 역할 등은 꼭 다루어져야 할 덕목이고 이런 면에서 부족한 점이 있으면 채워나가는 훈련이 필요한 것이다. 삼룡이 같은 인품을 갖추면 성숙된 인품이라 할 수 있겠다.

또 주인인 오생원의 성품도 아름다웠다. 오생원은 큰 과목밭을 갖고 그 중 여유 있는 생활을 하였다. 부지런했다. 일찍 일어났다. 규칙적이었다. 잘못하는 것은 지적을 꼭 했다. 건강하였다. 동네 사람들은 양반이라고 불렀다. 인심도 좋았다. 나눔, 배려가 있었다. 섣달이면 북어쾌, 김톳을 동네 사람을 나눠 주고 농사 때는 쓰는 연장도 넉넉히 장만해 동네 사람들이 쓰게 했다. 동네에서 가장 인심 후하고 존경받았다. 오생원과 같은 사람이 되도록 인성교육을 시키면 될 것 같다. 삼룡이와 오생원은 인성교육의 모델이었다.

그런데 오생원에게도 아쉬운 면이 하나 있었다. 자녀교육을 잘못시켰다. 철도 없고 버릇도 없어 동네 사람들이 ‘후레자식! 아비 속상하게 할 자식!’ 하면서 욕설을 할 정도였다. 인성교육은 가정에서부터 출발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오생원의 아들과 같은 이가 되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다. 가정에서 인성교육을 잘못시켜 놓으면 아내에게도 잔소리를 들어야 한다. 인성교육은 어머니도 시켜야 하지만 아버지도 책임지고 시켜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부모의 가슴에 못을 박는다. 하인인 삼룡이에게 폭행을 한다. 잠자는 삼룡에게 입에 똥을 먹인다. 인간이 아니다. 요즘 말하면 가해자다. 생활지도를 별도로 받아야 할 대상이다.

아버지가 여기에 관심을 가졌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한 것이 이렇게 만들어 놓았다. 결혼을 하고서는 아내까지 폭행을 하고 아내가 삼룡이에게 선을 베푸는 일을 보고 더 심하게 때린다.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도 못 막을 지경에 이르렀다. 인성교육이 참 중요하다.

새서방이 새색시를 때릴 때마다 삼룡이는 의분의 마음이 뻗쳐 흐르고 정의감이 들기 시작하고 분노를 억제하지 못하는 단계까지 이르렀다. 나중에는 뵙고 심은 심정이었고 생명 같은 희열이 넘쳤다. 이때부터 일이 손에 잡히지 않고, 밥맛도 없고 잠도 오지 않고 새색시에 방안에도 들어가고 싶은 마음까지 생겼다.

새색시가 병에 걸려 약을 사 가지고 가는 것을 보고 궁금해서 방 안에 들어가게 되었는데 난리가 났다. 새서방도 알게 되었다. 피를 토할 정도로 맞았다. 죽도록 맞았다. 결국 삼룡이는 주인댁에서 쫓겨나게 되었다. 말을 못하니 변명도 못한다. 너무 답답하다. 말 못하는 삼룡이도 답답하고 글을 읽는 나도 답답하다. 평생 주인에게 충성을 했는데 돌아오는 것은 쫓겨남뿐이니 너무 비통했다.

그날 밤에 원인 모를 화재가 오생원집에서 났다. 삼룡이는 새서방이 밉기만 했지만 그래도 주인의 아들이라 먼저 구해내고 새색시까지 구해내고 자신도 죽었다. 하지만 평화롭고 행복스러운 웃음이 그의 입 가장자리에 엷게 나타났다. 정말 추한 죽음이 아니고 아름다운 죽음이었다. 평생 이루지 못한 꿈을 이루면서 죽었다. 이미 죽은 색시를 자기 가슴에 안았을 때 그는 이제 처음으로 살아난 듯했다. 그는 자기가 여태까지 맛보지 못한 즐거운 쾌감을 자기의 가슴에 느끼는 것을 알았다.

영원히 이루지 못할 사랑을 죽음과 동시에 이뤘다. 순수한 사랑, 때가 묻지 않은 사랑, 헌신적인 사랑을 엿볼 수 있다. 머리 화상 입고 왼팔이 부러지고 그래도 색시를 구하고자 하는 마음은 밤하늘의 달과 같이 아름답고 별과 같이 깨끗했다. 화염 속으로 색시를 구해내기 위해 뛰어 들어가고 건넌방, 안방, 부엌으로, 광으로 건넌방으로 들어가는 삼룡이의 헌신적인 모습은 눈에 부실 정도로 빛난다.
문곤섭 전 울산외국어고등학교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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