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21일, 직지산악회원들이 서산의 팔봉산으로 산행을 다녀왔다. 강원도 홍천을 비롯해 전국에 팔봉산이 여럿 있다. 서산문화관광 자연의 향기에 의하면 높이 362m의 팔봉산(八峰山)은 서산시 팔봉면에 위치하고 하늘과 바다 사이에 놓인 여덟 봉우리가 장관을 이루어 서산9경 중 제4경으로 꼽힌다. 또한 8개 봉우리 모두가 기암괴석이고 가장 높은 제3봉은 삼면이 석벽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정상에서 가로림만 일대가 한눈에 펼쳐져 장관을 이룬다.
전날 중학교 동기들의 송년모임이 길게 이어져 늦잠을 잤다. 이른 아침부터 부산스럽게 짐을 꾸린 후 시내버스로 약속장소인 청주종합운동장으로 갔다. 세 번째 참석하는 산행이라 반갑게 인사를 나눌 만큼 낯익은 얼굴들이 있다.
겨울산행은 낮은 기온과 미끄러운 길 때문에 위험요소가 많다. 7시 관광버스가 출발하자 코지 회장님이 산행시간에 구애받지 않는 안전산행을 당부한다. 당진영덕고속도로 공주휴게소에 들르며 서해안을 향해 달려온 관광버스가 9시 35분경 양길리의 팔봉산주차장에 도착했다.
산행준비를 하고 9시 45분부터 등산을 시작했다. 초입의 등산안내소를 지나면 표석과 장승을 만나는데 표석에 붉게 물든 단풍 가득한 산에 모든 이가 즐거워하고 팔봉산의 구름을 보니 세상의 근심걱정이 사라진다는 ‘紅葉滿山之萬人樂(홍엽만산지만인락) 八峰山雲之世苦無(팔봉산운지세고무)’가 써있다. 팔봉산은 넓은 산길에서 소나무들이 줄지어 맞이하고 오르막도 비교적 가파르지 않아 산행하기에 좋다. 나뭇가지 사이로 제1봉을 바라보며 돌길을 오르면 제1봉과 제2봉의 갈림길이 나타난다.
갈림길에서 왼쪽으로 보이는 바위를 바라보고 오르면 멋진 모습의 제1봉(높이 210m)이 위용을 자랑한다. 제1봉은 팔봉산 전체에서 가장 잘생긴 봉우리라 꼭 들려야한다. 앙증맞은 표석을 배경으로 추억남기기를 하는 사람들이 줄지어 서있다. 표석 옆 바위틈을 간신히 빠져나가 뒤편으로 가면 새로운 풍경이 기다린다.
제1봉에서 맞은편의 제2봉과 제3봉을 바라보고 다시 갈림길로 내려와 오른쪽의 제2봉으로 가다보면 뒤편으로 제1봉과 가로림만이 가깝게 보인다. 감투를 닮은 생김새 때문에 감투봉, 노적봉으로 불리는 제1봉은 소원을 빌면 부귀영화를 얻는다는 전설이 전해지는데 멀리서 보면 뿌리부터 정상까지 거대한 바위가 탑을 쌓듯 하늘로 치솟은 모양이 웅장하다. 가로림만은 남쪽으로는 태안읍, 서쪽으로는 원북면·이원면, 동쪽으로는 서산시 팔봉면·지곡면·대산면으로 둘러싸여 있다. 바로 이곳이 2007년 태안 앞바다 기름유출 사고 때 온 국민이 안타까워했던 최대 피해지역이다.
팔봉산의 능선은 대체적으로 밋밋하지만 제1봉, 제2봉, 제3봉은 바위봉우리라 가파르고 험한 산길을 올라야 한다. 조망이 좋은 제2봉(높이 270m) 주변에 우럭바위, 거북바위, 코끼리바위 등 모습이 제법 그럴듯한 바위들이 많다. 어떤 것이든 관심만큼만 보인다. 같은 것이라도 보는 각도에 따라 모습도 다르다. 산행안내가 부족해 앞사람 뒤꽁무니만 따라가면 멋진 봉우리도 그냥 지나치기 쉽다.
제2봉에서 정자로 가는 길목에 인위적으로 강아지 얼굴을 그려놓은 바위가 있다. 정자에서 간식을 먹으며 힘센 용사의 어깨를 닮아 용맹과 건강을 상징하는 어깨봉(제3봉)을 올려다본다. 몇 사람씩 오고가고를 반복해야하는 통천문을 지루하게 통과하여 지금은 폐쇄된 용굴을 구경한 후 아슬아슬한 철계단을 올라 정상으로 향한다. 철계단에서 방금 지나온 정자, 제2봉, 제1봉, 팔봉산주차장, 물이 빠진 가로림만, 태안화력발전소의 굴뚝, 대산일반산업단지가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제3봉(361.5m)은 팔봉산의 주봉이자 정상으로 삼면이 석벽으로 이루어져 경관이 아름답다. 정상에 오르면 조망이 탁 트여 이곳에서 바라보는 바다 풍경이 멋지다. 바위에 올라 2주 전 지금이 제일 중요하다는 것을 알려주고 하늘나라로 떠난 친구를 생각했다. 팔봉산의 주봉은 바닷가에서는 높은 봉우리다. 산행하는 동안 바위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제3봉의 모습이 여러 곳에서 바라보인다.
제3봉 뒤편 계단으로 하산하면 주변에 멋진 소나무들이 많다. 양지바른 곳에 자리를 잡고 점심을 먹었다. 이때만 해도 봄날처럼 날씨가 좋았다. 내 것 네 것 가리지 않는 산에서 여럿이 나눠먹어도 될 만큼의 소주에 따끈한 컵라면 국물까지 있으니 더 바랄게 없다.
점심 먹는 사이에 바람이 차가워지고 하늘도 흐려졌다. 제4봉(높이 330m)까지는 생김새나 조망이 좋다. 너무나 평범해 표석을 발견하지 못하면 그냥 지나치기 쉬운 제5봉(높이 290m)을 막 지나는데 전화가 왔다. 행복이 뭐 별건가. 부모 결혼기념일에 맛있는 것 사먹으라며 돈 입금시키고 축하전화를 하는 아들 내외가 있어 더 행복했다. 아장아장 걷는 게 귀여운 손녀 정하와 산에서 영상통화를 한 게 무엇보다도 즐거웠다.
팔봉산 여덟 개 봉우리의 모습이 모두 멋진 것은 아니다. 제6봉(높이 300m)은 야트막한 언덕의 바위봉우리인데 뒤편으로 팔봉산 정상인 제3봉과 제4봉 주변이 가깝게 보인다. 제7봉(높이 295m)을 지나 마지막 봉우리인 제8봉(높이 319m)으로 가면 국토지리정보원의 삼각점이 있다.
제8봉에서 대웅전이 가정집을 닮은 서태사로 내려선 후 지그재그 굽잇길을 1.5㎞ 걸어 1시 45분경 어송주차장에 도착했다. 눈발이 굵어지는 2시 50분경 삽교천에 도착해 국화님, 캔디님, 종걸 후배, 뚜레쥬르님 등 좋은 사람들과 싱싱한 석굴을 안주로 소주를 마시며 정을 나눴다. 매번 산행 때마다 쓰레기를 줍는 테네로, 시새움 고문님에게 산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고향 후배도 만나는 유익한 시간이었다.
관광버스가 청주로 향하던 3시 55분경에는 눈이 펑펑 쏟아져 고속도로에서도 차들이 거북이걸음을 한다. 그나마 남자들은 갓길에 길게 줄서 생리현상을 해결할 수 있었다. 요리조리 빠르고 안전한 길을 달려온 관광버스가 경부고속도로 천안휴게소를 거쳐 7시 30분경 최종목적지인 청주종합운동장에 도착하며 산행을 마무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