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4일, 직지산악회원들이 강릉의 괘봉산으로 새해 첫 산행을 다녀왔다. 안인진과 정동진 사이에 위치한 강릉의 괘방산(높이 339m)은 진주시와 함안군에 걸쳐있는 경남의 괘방산(높이 450m)에 비해 낮은 산이지만 산행 내내 동해가 바라보이고 해돋이 명소 정동진이 가까이에 있어 찾는 이들이 많다.
알람소리에 맞춰 일어나니 새벽기도 가기 전에 따뜻한 국 끓여놓고 도시락 싸놨으니 잘 다녀오라는 아내의 메모지가 눈에 띈다. 대충 아침을 먹고 어둠속에 집을 나서 한산한 거리를 신나게 달린다. 청주종합운동장 앞에 도착해 반가운 사람들과 새해 복 많이 받으라는 덕담을 나눈다.
7시 관광버스가 출발하자 코지 회장님이 ‘내 복까지 회원들에게 나눠주겠다’는 새해 인사를 한다. 마이크 잡고 사람들 앞에 처음 선다는 솜사탕 운영총무님의 맛깔스런 사회와 마이크 울렁증이 있다는 동행 산대장님의 순박한 산행안내가 회원들을 웃긴다. 영동고속도로 여주휴게소와 평창휴게소에 들르며 동해안을 향해 달려온 관광버스가 10시 30분경 이번 산행의 들머리인 안인진에 도착했다.
겨울철 시베리아에서 불어온 찬바람 때문에 서해안지역이나 영서지방에 눈이 많이 내리지만 영동지방은 태백산맥에 가로막혀 눈이 적게 내린다는 것을 증명하듯 평창주변을 지날 때는 온통 눈 세상이었는데 이곳에서는 눈 구경을 할 수가 없다.
두산백과에 의하면 괘방산(掛膀山)은 옛날 과거에 급제한 사람의 이름을 두루마기에다 쓴 방을 이 산의 어딘가에 붙여 고을 사람들에게 알렸던 데서 이름이 유래했다.
괘방산 산행은 안인해변, 해변의 기찻길, 강릉통일공원, 강릉임해자연휴양림, 등명해변, 등명낙가사, 하슬라아트월드, 정동진역, 정동진해변, 모래시계공원, 조각공원, 썬크루즈리조트 등 주변에 볼거리가 많아 좋다. 안인해변의 풍경과 정동진에서 달려오는 기차를 구경하고 좌우에 솔향강릉과 안보체험등산로가 써있는 나무계단을 오르며 정동진까지 9㎞ 거리의 산행을 시작한다.
날씨는 봄날처럼 따뜻한데 바닷바람은 제법 차다. 초입의 계단 끝에서 만나는 쉼터를 지난 후 산길에서 뒤돌아보면 안인해변 옆 봉화산(높이 60m)과 안인역은 물론 강릉항까지 가깝게 보이고 서쪽으로는 선자령 방향의 산줄기가 한눈에 들어온다.
같은 길이 안보등산로, 강릉 바우길, 해파랑길과 겹쳐 산행을 하다보면 여러 가지 이정표를 만나는데 산위에서 바다를 보며 걷는 산길이 이어져 ‘산우에바닷길’ 이정표가 더 친근하게 느껴진다. 강릉의 브랜드가 ‘솔향’이다. 괘방산은 크고 작은 소나무들이 숲을 이루고 있어 산행 내내 솔향과 같이한다.
활공장전망대는 바닷가 방향의 조망이 좋다. 이곳에서 한눈에 들어오는 안인해변, 강릉통일공원과 강릉임해자연휴양림, 괘방산 정상 주변의 풍경이 멋지다. 발아래로 멋진 풍경을 펼쳐놓고 먹는 점심이 꿀맛이다. 식사가 끝난 후 직지산악회가 남다른 것을 알게 하는 신입회원 환영 퍼포먼스와 카페관리를 맡고 있는 캔디님의 장기자랑이 이어졌다.
무심코 바라본 풍경이나 사람 때문에 행복할 때가 많다. 자신의 참모습은 어떤 것으로도 감추거나 꾸밀 수 없다. 그래서 진정한 자신의 모습은 뒷모습에 있다고 한다. 산행지에서 늘 휴지 줍기를 실천하고 있는 테네로 고문님과 시새움 상임고문님의 뒷모습이 오늘따라 더 아름답다. 산에까지 올라와 쓰레기 버리고 가는 비양심이 하루빨리 사라져 우리의 국민성이 다른 나라 사람들에게 대접받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했다.
괘방산은 비교적 높은 편도 아니고 그렇게 험하지도 않지만 능선을 따라 여러 번 고개를 오르락내리락 한다. 돌무더기를 지난 후 정상과 높이가 비슷한 삼우봉에서 뒤편을 바라보면 점심을 먹은 활공장전망대와 바닷가 풍경이 가깝게 보인다. 괘방산 정상은 송신탑 등 군사시설물 때문에 접근하지 못하고 정상 표지석도 없다. 정상을 지나면서 정동진해변과 썬크루즈리조트, 예술가들이 너른 언덕에 아름답게 꾸민 정원 하슬라아트월드가 나뭇가지 사이로 보인다. ‘하슬라’는 강릉의 옛 지명이다.
당집은 슬레이트 지붕에 커다란 자물쇠로 잠겨 있어 창고나 간이화장실로 착각하게 하는데 서낭당처럼 신을 모시는 곳이다. 당집 사거리부터 정동진까지 3.9km는 조망이 없고 볼거리도 부족해 다소 지루하다. 터벅터벅 183고지를 넘어서면 썬크루즈리조트가 눈앞에 펼쳐진다. 산 아래로 내려서면 ‘해돋이 명소 정동진 1리’ 표석이 길가에서 반긴다.
여행이 좋아 휴일이면 무작정 집을 떠나던 시절이 있었다. 그 당시 여행길에 몇 번 들렀던 정동진은 사람 만나기도 어려운 아주 작은 포구였다. 기찻길 건널목의 차단기도 보행자가 들어 올리고 건널 만큼 시간이 정지된 곳이었는데 드라마 모래시계가 방영된 후 관광객이 인산인해를 이루며 지금의 모습이 되었다. 이곳을 찾을 때 가끔은 한가하고 여유롭던 정동진의 옛 모습을 그리워한다.
정동진이라는 지명은 경복궁의 광화문에서 정동쪽에 위치한다 하여 붙여졌는데 실제 위도상으로는 서울의 도봉산 정동쪽에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정동진역은 석탄 수송이 주 업무였던 시골의 조그마한 역에서 해돋이 열차가 운행되는 관광지로 탈바꿈하였고, 전국에서 바다가 가장 가까운 역으로 철길과 해변이 정동진역 표석, 멋진 조형물, 모래시계나무, 정동진 시비(詩碑)와 조화롭게 어우러져 아름다운 풍광을 자랑하는 천혜의 명승지가 되었다. 옛 역사 옆 신축건물에서 입장권(500원)을 구입한 후 정동진역을 둘러보며 추억남기기를 했다.
정동진 해변은 새해 첫날뿐만 아니라 평소에도 늘 해돋이를 보려는 관광객들로 북적대는 일출 명소다. 바닷가를 걸어 모래시계공원으로 가다보니 해변의 모래가 많이 깎여 나갔다. 정동진 소망의 종과 해시계 조형물을 지나면 새천년을 맞이하며 새로운 희망과 발전을 기원하기 위해 설치한 대형 모래시계를 만난다. 정동진 시간박물관을 카메라에 담고 모래시계공원 다리를 건너 3시 30분경 주차장에 도착했다.
3시 50분 정동진을 출발한 관광버스가 4시 30분경 주문진항에 도착해 직지산악회의 단골집인 영광횟집(033-661-4951)으로 갔다. 바로 앞 항구의 풍경을 구경하고 오니 방에는 빈자리가 없다. 테이블 옆으로 사람들이 오가 어수선하고 자리가 불편했지만 좋은 사람들과 함께하니 즐겁다.
직지산악회에는 남다른 사람들이 많다. 각연님은 산행 때마다 며칠 비박을 떠나는 산악인처럼 큰 배낭을 무겁게 메고 다녀 의아했는데 횟집의 술자리에서 수수께끼를 풀었다. 그 배낭 속에 응급상황에 즉각 사용할 수 있는 구조물품들이 가득 들어있단다. 사용하지 않는 게 제일 좋은 일이지만 혹 1년에 한 번을 사용하더라도 응급상황에 놓였을 때 꼭 필요한 물품이라 힘이 들어도 큰 배낭을 계속 메고 다닐 거란다.
6시 15분 주문진항을 출발한 관광버스가 영동고속도로 평창휴게소와 평택제천고속도로 금왕휴게소에 들른다. 청주가 가까워지자 운영총무님은 우리는 모두 행복한 사람들이라는 멘트로, 회장님은 일일이 함께 해서 고맙다는 악수로 인사를 한다. 지체와 서행한 시간이 길지만 한천수 기사님이 지름길로 달려온 덕분에 9시 50분경 청주종합운동장 앞에 도착했다. 출입문 밖에 대기하고 있는 운영진과 수고했다는 인사를 나누는 것으로 산행을 마무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