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에 오고나서 변화가 일어났다. 퇴직 후 넉달을 산에 가지 않았는데 산에 가는 작은 기적이 일어난 것이다. 그것도 한번도 아닌 3일 연속이니 말이다. 집에서 산입구까지 5분밖에 걸리지 않는데도 산을 찾지 않았으니 참 아쉽다.
산이 이렇게 좋다니! 나이가 들수록 산이 좋음을 느끼다니! 늦게나마 고마움을 알게 된다.
산은 나의 스승이요 나의 어머니와 같다. 산의 입구에 들어가니 포근함을 느낄 수 있었다.
길에서 걸어갈 때는 바람이 매우 차가웠는데 산에 올라가니 너무 따뜻했다. 포근한 가슴을 지닌 산이 고마웠다. 산은 따뜻한 것을 가르쳐주었다. 냉정한 선생님보다 따뜻한 선생님을 학생들은 그리워하고 있다. 내가 차가운 선생님이면 산에게서 배워야 하겠다.
산에 가니 새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길에는 시끄러운 차소리만 들을 수밖에 없는데 산에 가니 아름다운 새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얼마나 고마운가? 새들의 안식처가 되어주는 산이 너무 좋다. 학교에 가면 새와 같은 아름다운 소리가 많이 들리면 참 좋을 것 같다. 싸움소리 대신 웃음소리가 나면 학교는 지상천국이 될 것이다.
산에 올라가니 산을 찾는 사람이 많았다.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두루 찾았다. 매일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찾는 집은 없을 것이다. 산과 같은 사람이 되면 얼마나 좋을까? 산에는 건강한 자도 찾지만 병든 자도 찾는다. 병원에는 환자만 찾지만 산에는 건강한 이도 찾는다. 모두에게 유익을 줄 수 있는 선생님이 되려면 산을 자주 찾으면 될 것 같다. 산은 건강한 이에게는 건강을 지켜주고 병든 이에게는 건강을 회복시켜 주었다.
산을 찾는 이들은 심성도 고와진다. 거리에서 학생들은 어른을 봐도 인사하지 않는다. 하지만 산을 찾는 학생들은 낯선 어른에게 인사할 줄 안다. 두 번이나 낯선 학생들이 인사를 하였다. 인성교육은 산에서 시키면 될 것 같았다.
산은 조화를 가르쳐주었다. 큰나무, 작은 나무, 갈대, 각종 잡초들이 한데 어우러져 있으니 보기가 더 좋았다. 떨어져 있는 낙엽마저 겨울 정취를 더 느낄 수 있었다. 학교에서 공부하는 학생들은 다양하다. 이런 다양한 학생들이 있기에 더욱 아름답게 느껴지는 것이다.
산은 사랑을 가르쳐 주었다. 나무를 사랑하고 잡초를 사랑하고 생물을 사랑하였다. 모두를 사랑하였다. 식물을 사랑하고 바람을 사랑하고 하늘을 사랑하였다. 좋은 사람도 사랑하고 나무를 자르는 사람도 사랑하고 불을 지르는 사람도 사랑하였다. 아무도 배척하지 않았다. 말도 하지 않았다. 사랑을 산에서 배워야겠다.
산은 인내를 가르쳐 주었다. 오르다가 힘이 들 때 인내하라고 말한다. 한겨울의 칼바람도 참아내는 내가 아닌가? 그것 못 참아? 하고 속삭인다. 온갖 더러운 말을 하고 지나가는 사람들 보고도 말 한마디 하지 않고 참는 나를 보라고 속삭인다. 그러면 다시 용기를 내고 참으면서 올라간다.
산은 겸손을 가르친다. 끝없이 올라가면 다시 내려온다. 정상이 좋다고, 전망이 좋다고 내려오지 않고 오래 있으면 위험하다. 올라가는 것 좋아하지 말고 내려가는 것 좋아하면 편안하다. 부담없이 내려온다.
산은 준비를 가르친다. 산에 올라갈 때 물을 준비하지 않았다. 갈증이 나서 혼났다. 집에 와서 마시는 물은 금장옥액이었다. 갈증날 때 마시면 물은 더 금과 같은 맛이고 옥과 같은 맛이 아니었을까?
산은 기다림을 가르친다. 내일을 기다리게 한다. 이끌리게 한다. 학생들이 선생님을 기다리고 있으면 얼마나 행복할까? 선생님 때문에 내일을 기다린다면 얼마나 기뻐겠는가? 산은 나의, 우리의 스승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