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 아침에 맑은 새소리를 들을 수 있고 닭소리를 들을 수 있는 곳에 살고 있다는 것은 보통 복이 아니다. 이런 곳에 산다는 자체는 행복이고 기쁨이다.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신선한 바람은 한층 정신을 맑게 하니 더욱 좋다. 새소리는 맑고 청아하다. 부드럽고 아름답다. 그칠 줄 모르는 새소리에 귀를 기울이면서 언제나 좋은 소리를 내는 선생님이 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맑고 고운 소리를 내는 선생님이 좋은 선생님이 아닌가 하는 생각에 젖는다.
맑고 고운 소리는 어떤 소리인가? 나를 괴롭히고 힘들게 하는 학생에게도 화를 내지 않고 쌍소리를 하지 않고 부드럽게 다가가는 목소리가 맑고 고운 소리가 아닌가 싶다. 이런 선생님을 만나면 학생은 감동을 받는다. 언제나 나쁜 짓하고 못된 짓을 반복하면서 반성이 없다가 어느 날 아침에 변화를 일으키는 학생도 있다.
매일 오락실 가고 지각하고 집에서 잠을 자지 않고 찜질방에 가서 자기도 하고 담배 피우고...그야말로 학생으로서 해서는 안 될 일만 골라하는 학생을 보면 화가 나지 않는 선생님은 정상이 아니다. 그래도 참으면서 부드러운 목소리로 다가가면 그 학생은 변화되고 새로운 생활을 시작할 것이다.
새는 참 부지런하다. 일찍 일어난다. 게으르고 늦잠 자는 자들을 깨운다. 부지런한 선생님은 좋은 선생님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하게 된다. 부지런하고 규칙적인 생활을 하는 것 중의 하나가 닭이다. 닭은 새벽만 되면 일어나서 날이 밝아옴을 알린다. 정말 대단하다. 하루이틀이 아니다. 매일 그렇게 한다. 성실한 것도 배우고, 규칙적인 것도 배우고 책임감도 배워야 하지 않을까 싶다. 성실한 선생님, 규칙적인 선생님, 책임을 다하는 선생님은 좋은 선생님이다.
어떤 선생님이 좋은 선생님일까? 학생들의 방향을 잘 제시하는 선생님일 것이다. 이른 아침에 이런 글을 읽었다. “약속 시간에 늦었고, 인정하고 싶지는 않았지만 길을 잃은 상태였다. 그러나 내가 기대하는 이정표는 나타나지 않았다. 그러나 계속 가면 내가 가고 싶은 곳으로 가게 될 것이라 확신하면서 속력을 냈다. 결국 아내의 설득과 끈덕진 요구에 못 이겨 방향을 돌렸다...”
방향을 잘 제시하지 않으면 가는 것만큼 헛수고(徒勞)다. 시간 낭비고 에너지 소비다. 바른 방향을 향해 되돌아와야 한다. 아무리 속도를 내도 방향이 아니면 소용이 없다. 목적지에 도달할 수가 없다. 학생들이 가야 할 길을 안내하는 선생님은 좋은 선생님이다. 학생들이 가지 말아야 할 길을 가면 막는 선생님이 좋은 선생님이다. 가든지 말든지 관심을 가지지 않으면 안 된다. 윗글에 나오는 아내와 같은 선생님이 좋은 선생님이다. 방향이 아닌데 그냥 가만 있으면 안 된다. 아내처럼 설득과 끈질긴 요구가 필요하다. 이런 선생님이 좋은 선생님이다.
학생들이 있어야 할 곳과 있지 말아야 할 곳을 분별하도록 이끄는 선생님은 좋은 선생님일 것이다. 학생들이 죄짓는 곳에는 있으면 안 된다. 학생들이 가지 말라고 하는 곳에는 가면 안 된다. 학생들이 가야 할 곳이 참 많다. 이곳만 가도 시간이 모자란다. 학교에 가야 하고, 도서관에 가야 한다. 운동장에 가야 하고, 산에도 가야 한다. 청소년문화센터에도 가야 하고 음악회관에도 가야 한다. 찾아서 가야 할 곳이 너무나 많다. 그런데 가지 말아야 할 곳만 찾아서 가는 학생이 있다. 이런 학생들을 잘 지도하는 선생님은 분명 좋은 선생님이다.
선생님은 학생들이 이 길, 저 길의 갈림길에서 어느 길을 선택할까 고민하고 있을 때 이정표가 되어주는 선생님은 좋은 선생님이다. 바른 길로 가도록 이끌어주는 선생님이 되어야 할 것 같다. 외길에 서있는 이정표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외길에 있는 이정표는 쓸쓸하다. 아무 필요 없다. 갈림길에 서있는 이정표는 많은 도움이 된다. 갈림길에 서 있는 선생님이 되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