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13번 고추나무야, 잘 자라라!

2015.05.31 00:32:00

나는 도시농부다. 이렇게 이야기를 하면 아마도 도시에 살면서 가까운 곳에 텃밭을 일군다고 생각할 것이다. 또 도시농부 몇 년차라고 하면 농사 노하우도 많이 갖고 있으리라고 믿는다. 그러나 실상은 이렇다. 도시농부이긴 하되 아파트 베란다에서 화분에 농작물을 조금 가꾸는 정도다.

얼마 전 도시농부에게 갈등이 있었다. 아내가 이런 말도 하였다. “저 진딧물 많이 끼는 고추나무 밖에다 옮겨 심는 것은 어때요?” 헉, 사실 옮겨 심을 곳이 없다. 아파트라서 개인이 아파트 내에서 농작물을 가꾸면 안 된다. 아내가 이렇게 말한 데는 이유가 있다. 아침마다 고추나무에 낀 진딧물 잡는 것이 귀찮았기 때문이다.

지난 4월 25일. 토마토 모종 4개 4천원, 보통 고추모종 12개 2천4백원, 아삭이고추 모종 2개 1천4백원 등 총 7천8백원을 투자하였다. 농작물을 가꾸려면 농작물에 대한 애정과 부지런함이 필요하다. 자칫 게을렀다간 금방 시들고 만다. 화분에 심었기 때문에 더욱 세심한 관리가 필요하다.




지금 우리 아파트 베란다. 이 농작물 덕분에 연초록에서 녹색으로 푸르름이 우거졌다. 창문을 열어놓아 식물이 직사광선을 받게 하였다. 그 대신 날파리가 날아든다. 새소리는 직접 들을 수 있다. 그러나 베란다 출입구는 닫아 놓아 경계가 된다. 대부분의 아파트가 베란다를 내다보면 시멘트 덩어리인 앞동이 보이지만 우리집은 식물인 녹색이 보인다. 시각적으로도 편안하다.

작년엔 보이지 않던 진딧물이 웬 말인가? 개미와 공생을 하는 진딧물이라 개미를 없애고 몇 번 잡아주면 해결되리라 믿었다. 그런데 그게 아니다. 매일 진딧물이 끼고 매일 잡아 주어야 한다. 해결방법은 간단하다. 농약을 사다 뿌리면 된다. 그러나 친환경 재배에서는 안 된다.

선배들이 들려 준 이야기가 떠올라 머리를 써 본다. 담배꽁초를 주우러 밖으로 나갔다. 댑뱃재를 모아 그 잿물로 진딧물을 방제하려는 것. 버스 정류장에 나가니 도로에 담배꽁초가 눈에 띈다. 한 20여개를 주었다. 살기가 어려워서인지 담배를 필터 있는 곳까지 피운 것이 많다. 그러나 그게 대수가 아니다.




잿물을 만들었다. 그림붓으로 고추나무에 붙어 있는 진딧물을 발라주었다. 진딧물이 엄청 달라붙었다. 아마도 수 백개가 될 것이다. 소름이 끼친다. 그러나 작업을 멈출 수 없다. 아내가 옆에서 지켜본다. 이런 작업에는 인내가 필요하다. 진딧물을 잿물로 발라 죽이려는 것이다. 이 방법 효과가 있을까?

몇 시간 후 아내가 목욕탕에서 부른다. 화분을 가져와 샤워를 시키자는 것이다. 12번, 13번 화분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비로 아삭이 고추다. 일명 오이고추라는 것이다. 보통 고추보다 가격도 비쌌다. 보통고추 모종은 2백원인데 이 고추모종는 7백원이다. 무려 3배나 비싼 것이다. 그런데 병충해에는 약하다. 진딧물이 이 고추모종만 집중공격을 하는 것이다.

오늘도 기상과 동시에 진딧물을 잡았다. 내가 수 십개 잡고 아내가 십여 개 잡았다. 진딧물은 새로 나오는 고추 여린 순이나 흰꽃에 달라붙어 진을 빨아들인다. 크기가 작아 자세히 보아야 보인다. 손으로 눌러 압사 시키는데 이게 관심과 애정 없이는 안 된다. 벼농사를 짓는 농부가 벼의 숨소리를 들어야 한다는 말이 이해가 간다.

도시농부, 힘들어도 포기할 수는 없다. 청아한 흰색꽃이 피고 그 꽃을 뚫고 나와 고추열매를 맺는 것이 신비의 세계다. 노랗게 핀 방울 토마토꽃은 어떤가? 바람에 꽃가루받이가 되고 며칠 지나면 연두색의 열매가 맺는다. 아직 열매 시식은 못하였지만 식물을 가꾸면서 인성을 가다듬는다. 이게 도시농부의 소득이다. 농작물을 가꾸면서 인생을 배우고 있는 것이다. 12, 13번 고추나무야! 부디 잘 자라거라.
이영관 교육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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