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인 한 분이 구두를 잃어버렸답니다

2016.06.27 14:14:00

우리의 불신사회 단면을 보다

구두를 분실했다. 아니다. 정확히 말하면 도난당했다고 하는 것이 맞을 것이다. 분실은 본인에게도 잘못이지만 도난은 본인의 의지와는 상관없다. 이게 어찌된 일일까? 매우 하찮은 일 같지만 우리 사회의 안 좋은 단면을 보는 것 같아서 나 역시 좋지 않은 마음이다. 이런 일이 또 있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얼마 전, 교직에서 정년 퇴임한 지인은 장례식장을 찾은 일이 있었다. 수원에서 가까운 00시에 위치한 곳이었는데 조문을 다 마치고 나오니 구두가 사라진 것이다. 마침 그 날 신고 간 구두는 구입한지 얼마 되지 않은 새 구두라고 한다. 구두를 신고 귀가해야 하는데 구두가 없다. 이 때의 황당한 심정은 어떠했을까?

누가 내 구두를 신고 갔을까? 이것을 다른 방문객의 실수로 해석할 수도 있다. 장례식장에서 술 한 잔하고 정신 없어서 자기 구두인 줄 모르고 실수로 남의 구두를 신고 간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아니다 싶다. 장례식장에서 거나하게 술 먹을 분위기도 아니고 술 한 잔에 자기 구두를 모른다는 것은 말도 아니 된다. 자기 신발은 촉감으로도 확실히 알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번 경우는 의도적인 도둑질이다. 왜? 구두를 바꾸어 신고 갔다면 구두 하나가 남아야 한다. 그러나 그 장소에선 남는 구두가 없었다. 그러니 이것을 선의로 해석할 수 없는 이유다. 새 구두에 욕심이 나서 슬쩍 한 것이다. 양심을 버린 행위다. 구두를 잃어버린 그 분은 그 곳 실내화를 신고 귀가했다고 전해 준다.

장례식장에서 구두를 잃어버린 일, 그냥 ‘그 날 재수에 옴 붙었다’고 치부해야 하나? 이건 아니다. 우리 사회의 슬픈 단면을 보는 것 같아 안타깝기 그지 없다. 이런 일이 발생해서는 안 된다. 우리 사회는 믿고 사는 사회가 되어야 하는데 구두를 잠시 벗어 놓을 수 없는 사회가 된 것이다. 그렇다면 장례식장에 갈 때는 분실에 대비하여 헌 구두를 신어야 한단 말인가?

그 사건 이후 지인은 어떤 조치를 취했을까? 잃어버린 새 구두는 다시 찾을 수 없다. 본인이 주의를 하고 조심하는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 대신 상대방이 가져갈 수 없도록 교육적 조치를 취했다. 바로 신발 바닥에 본인의 이름과 연락처를 적어 붙여 놓았다. 혹시 실수로 가져가더라도 신발 주인에게 연락을 달라는 것이다. 아마도 이름이 적힌 신발은 차마 가져갈 수 없을 것이다.

신발을 분실한 사례는 음식점에서도 종종 있다. 이것은 신발을 벗고 들어가는 음식점에서 일어나는데 기껏 음식을 먹고 나서 나가려 하는데 신어야할 신발이 없는 것이다. 그리하여 음식점 주인과 옥신각신 한다. 손님은 신발값을 변상하라 하고 음식점 주인은 책임이 없다 한다. 손님과 음식점 주인 중 과연 누구 책임일까?

이런 다툼이 많으니 주인은 주인 나름대로 자구책을 강구한다. “신발 분실 시 책임지지 않습니다”라는 경고 문구를 붙여 놓는다. 어느 음식점은 신발장에 잠금장치를 해 놓는다. 신발장에 신발을 정리하는 직원을 배치한 곳도 있다. 어느 곳은 비닐봉투 하나씩 주어 손님이 자기 신발을 보관하게 하는데 위생 상 좋지 않다.

나는 음식점에서 신발 분실의 책임을 손님에게 돌리는 저 문구를 보면 음식점에 대한 믿음이 가지 않는다. 법에서 정해진 자기의 책임을 손님에게 미루는 것이다. 관련법규에는 "식당 등의 공중접객업소는 고객으로 부터 임치 받은 물건에 대해 지진 등의 불가항력에 의한 사유가 아닌 이상 그 멸실, 혹은 훼손에 관한 책임을 진다"고 명시되어 있다. 단, 소비자는 잃어버린 신발 가격의 증빙이 있어야 한다.

그러면서 나는 음식점에서의 엉뚱하고 발칙한 상상을 해 본다. 우리 주위에 이런 음식점이 나타나기를 기대하는 것이다. 음식점 주인을 믿고 찾아온 손님에게 책임을 다하는 주인의 모습을 보고 싶은 것이다. “우리 음식점은 신발 분실 시 책임집니다” 이것을 역이용하는 나쁜 손님도 있겠지만 과연 이런 문구를 볼 수 있을까? 이번 사건에서 신뢰와 책임지는 사회를 간절히 바라는 것이다.
이영관 교육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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