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미 곰처럼
이어령
어미 곰은
어린 것이 두 살쯤 되면
새끼를 데리고 먼 숲으로 간다고 해요.
눈 여겨보아두었던
산딸기밭
어린 곰은
산딸기에 눈이 팔려서 어미 곰을 잊고
그 틈을 타서 어미 곰은
애지중지 침 발라 키우던 새끼를 버리고
매정스럽게 뒤도 돌아보지 않고
떠나버려요.
발톱이 자라고 이빨이 자라
이제 혼자서 살아갈 힘이 붙으면
혼자 살아가라고
버리고 와요.
새끼 곰을 껴안는 것이 어미 곰 사랑이듯이
새끼 곰 버리는 것도 어미 곰 사랑.
불같은 사랑과
얼음장 같은 사랑.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산딸기밭을 보아두세요.
아이들이 정신을 팔고 있는 동안
몰래 떠나는 헤어지는 연습도 해두세요.
눈물이 나도 뒤돌아보지 않는
그게 언제냐고요.
벌써 시작되었어요.
탯줄을 끊을 때부터
걸음마를 배울 때부터
손을 놓아주었던 그때부터
무릎을 깨뜨려도
잡은 손 놓아주었던 날을 기억하세요.
<시작노트>
이어령 박사는 한국을 대표하는 지성이다. 문학평론가이며 문화비평가이며 학자이며 언론인이다. 소설가이자 수필가이며 희곡작가다. 동화작가이기도 하다. 그의 이름 앞에 시인의 이름은 빠졌었다. 이제 그의 이름 앞에 시인의 이름이 붙게 되었다. 시집을 출간했기 때문이다. 이 시집은 8년 전에 출간되었지만 2016년 세 번 째 개정판이 출간한 이후에 나는 이 시집을 읽었다. 시는 시인만이 쓰는 것이 아니고 시집은 시인만이 출간하는 것은 아니다. 나는 박경리 선생의 시를 무척 좋아한다.
이어령 시집 <어느 무신론자의 기도>엔 70편의 시가 실려 있다. 5장으로 구성 되어 1장은 어머니들에게, 2장은 나에게, 3장은 시인에게, 4장은 한국인에게, 5장은 하나님에게 라는 부제가 붙어 있다. 표제시가 되는 ‘어느 무신론자의 기도‘는 5장 하나님에게’에 실려 있고 지금 우리가 읽은 ‘어미 곰처럼’은 1장 어머니들에게’에 실려 있다. 이미 교육 관련 저서에 발표했던 글인데 교훈성이 강해서 시작품으로 다시 쓴 글들이라는 설명이 붙어 있다. 그러나 시로 다시 썼다는 이 시에도 교훈적인 내용이 짙게 배어 있다. 시에 교훈성에 들어 있는 것은 당연하다. 진선미를 모두 다루는 시에 교훈성이란 필수 요건이기 때문이다.
교훈적이지만 시로 표현되었기 때문에 한층 부드럽고 우회적이다. 곰의 예화를 통해 간접적으로 교훈을 전달하고 있다. 곰은 새끼를 데리고 먼 숲속으로 간다. 그곳엔 어미가 눈여겨두었던 산딸기 밭이 있다. 새끼가 산딸기 밭에 정신이 팔려 있을 때 매정하게 새끼를 버리고 돌아온다고 한다. 그처럼 얼음장 같은 사랑도 사랑이라는 것이다. 곰의 우화를 들려줬지만 그것은 바로 우리가 자녀 교육에 적용해야할 내용인 것이다.
자녀를 많이 낳지 않는 시대에 우리 아이들은 혹시 과잉보호로 나약하게 자라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보게 하는 시다. 곰이 산딸기 밭으로 데리고 가 매정에게 새끼의 곁을 떠나버리듯 인간도 이미 탯줄을 끊을 때부터 걸음마를 배울 때부터 이미 서서히 자녀의 곁을 떠나는 것이고 잡았던 손을 놓아버리는 것이라고 한다. 불같은 사람만이 사랑이 아니라 얼음장 같은 사랑도 사랑이라는 역설 속에 진리가 숨어 있다. 자식은 이 사회 속에서 스스로 생존 능력을 키우지 않으면 안 된다. 부모가 언제까지 보호할 수는 없다. 자식을 강하게 독립적으로 키워야 한다는 교훈이 우리에게 감동을 안겨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