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일 아침. 교무실에 들어서자, 하계 방과 후 수업을 위해 여러 선생님이 출근해 있었다. 특히 고3 교무실은 담임 선생님 전원 일찌감치 학교에 나와 아이들과의 상담에 열(熱)을 올리고 있었다. 워낙 무더운 날씨라 상담 시간을 그나마 시원한 오전으로 계획해 둔 것 같았다.
자리에 앉아 우선 컴퓨터를 켰다. 그리고 이 메일을 확인했다. 사실 방학 전에 고3 학생들과 약속한 것이 있었다. 그건 바로 자소서(자기소개서) 첨삭지도였다. 방학하여 쓴 자소서를 이 메일로 보내면 그것을 첨삭해 달라는 것이었다. 학생들의 청(請)이 조금 부담스러웠지만, 대학입시에서 자소서가 중요한 만큼 거절할 수가 없었다.
이메일(e-mail) 사이트를 열자, 자소서 첨삭지도를 부탁하는 아이들이 보낸 메일 여러 통이 도착해 있었다. 우선 아이들이 첨부 파일로 보낸 자소서를 다운받아 컴퓨터에 저장하였다. 그리고 행여 자소서 파일이 섞일까 학번과 이름을 잘 적어 정리하였다.
정리해 둔 자소서 파일을 열어 읽어보려는 순간, 책상 위에 놓여있던 휴대폰 진동이 울리기 시작했다. 통화 버튼을 누르기 전에 우선 휴대폰 액정 위에 찍힌 발신자 번호를 확인해 보았다. 그런데 저장이 되어 있지 않은 번호라 발신자를 확인할 수 없었다. 스팸 번호라 생각하고 진동이 꺼질 때까지 전화를 받지 않았다.
잠시 뒤, 조금 전 발신자 번호로 또 한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누군가의 장난 전화일 것으로 생각하고 두 번째 전화 또한 무시했다. 그리고 약 십 여분쯤 지났을까? 같은 번호로부터 문자메시지가 들어왔다. 전화를 받지 않자, 이번에는 문자를 보낸 듯했다. 그렇지 않아도 월요일 아침부터 전화로 나를 귀찮게 한 사람이 누구인지 궁금했는데, 라는 생각에 조심스레 문자를 확인해 보았다.
“선생님, 안녕하세요? 전화를 받지 않아 이렇게 문자 남깁니다. 저는 고3 수험생을 둔 학부모입니다. ○○○씨로부터 선생님을 소개받았습니다. 죄송하지만, 제 자식의 자소서를 좀 봐 주실 수 있는지 궁금하여 연락드렸습니다. 답변 부탁드립니다. ○○○엄마,”
전화를 건 사람은 지인으로부터 나를 소개받은 한 학부모였다. 아마 지인은 오랫동안 고3 담임을 역임하고 진학지도에 경험이 많다고 생각하여 나를 그 학부모에게 소개했던 모양이었다. 한편 한 번의 상의도 없이 내 연락처를 가르쳐 준 지인의 행동에 조금 화나기도 했다.
내 답변을 기다리고 있을 학부모에게 예의가 아니다 싶어 정중하게 거절한다는 내용의 답장을 보냈다.
“먼저 어머님의 부탁을 들어주지 못해 죄송합니다. 사실 저희 학교 학생들 자소서 봐주기에도 너무 벅찹니다. 자제분의 학교 선생님에게 첨삭지도를 받아 보시는 것이 어떠신지요? 그리고 인터넷상에서도 자소서와 관련된 사이트가 많으니 참고해 보시길 바랍니다.”
그날 퇴근 전까지 내 문자에 대한 그 학부모의 답장이 없었다. 그래서 내심 학부모가 내 뜻을 잘 이해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퇴근하여 주차한 뒤, 집으로 올라가기 위해 엘리베이터를 기다리고 있을 때였다. 낯선 한 어머니와 학생이 엘리베이터 쪽으로 다가오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아파트 주민일 것으로 생각하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 선생님이시죠?”
“네∼. 누구신지?”
어머니의 질문에 얼떨결에 대답은 했지만, 그 어머니는 예전부터 마치 나를 잘 알고 있는 듯했다. 그리고 함께 온 학생에게 나를 소개했다.
“○○아, 인사드려. ○○고 ○○○선생님이셔.”
짐작하건대, 그 어머니의 자제로 보이는 그 학생은 어머니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내게 정중하게 배꼽 인사를 했다. 그리고 면접을 앞둔 수험생처럼 말끔하게 차려입은 교복에 검은 테의 안경까지 착용하고 있어 딱 보아도 모범생 그 자체였다.
“그런데, 여긴 어쩐 일이신지?”
“……”
내 질문에 어머니는 대답은 하지 않고 옆에 서 있는 아이의 눈치만 계속해서 살폈다. 더 이상의 질문은 그 어머니를 곤혹스럽게 만들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오전에 보낸 문자메시지의 내용을 다시금 말해야겠다는 생각에 일단 그 어머니를 집으로 모시고 갔다.
거실 소파에 앉기도 전에 그 어머니는 예고 없이 불쑥 찾아온 것에 연신 사과를 했다. 그리고 손에 쥔 가방에서 아이의 생활기록부를 꺼내며 말했다.
“선생님, 3학년 1학기까지의 제 아이 생활기록부입니다. 잘 검토해 보시고 조언 좀 부탁드릴게요.”
“무슨 말씀인지 알겠습니다만…”
어머니는 내가 자리에 앉기도 전에 오늘 찾아온 이유를 거리낌 없이 말했다. 조금 도가 지나치다는 생각은 들었지만, 자식을 향한 어머니의 마음이라 생각하며 이해했다. 더군다나 외아들이라 자식에게 거는 기대 또한 남달랐다. 그래서일까? 어머니는 많은 것을 요구했지만, 이 시점에서 내가 할 수 있는 부분까지만 이야기해 주었다.
그리고 부담 없이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조언해 주었다. 그러자 어머니는 찾아오기를 잘했다며 내 두 손을 꼭 잡았다. 그리고 하얀 봉투 하나를 내밀었다.
“어머님, 이 봉투 뭡니까?”
“제 작은 성의입니다. 받아 주세요.”
완강한 거절에도 어머니는 계속해서 봉투를 내 손에 쥐여 주었다. 정중하게 거절할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를 고민하던 중 생각난 것이 최근 이슈가 되고 있는 ‘김영란법’이었다. 아직 시행은 되지 않았지만.
“어머님, 아시죠? 최근 발표 난 김영란법? 준 사람도 받은 사람도 다 걸린 다네요.”
그제야 어머니는 돈 봉투를 다시 가방에 넣으며 멋쩍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런데 헤어질 때의 어머니 표정이 처음보다 많이 편안해 보여 다행이었다.
전국 고3 수험생을 둔 모든 부모님의 마음이 오늘 찾아온 어머니의 마음과 다를 바가 없지 않을까? 싶다. 모름지기 이 불볕더위도 자식을 향한 어머니의 마음만큼은 뜨겁지 않으리라 본다. 무엇보다 지금 이 순간에도 무더위에 아랑곳하지 않고 공부에 매진하고 있는 전국 고3 수험생과 수험생 뒷바라지에 고생이 많은 학부모에게 무언의 박수를 보내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