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 읽는 시간> 북한 어머니의 자식사랑

2016.08.29 09:12:00

아이를 키우며


렴형미


처녀시절 나 홀로 공상에 잠길 때며는
무지개 웃는 저 하늘가에서
날개 돋쳐 훨훨 나에게 날아오던 아이
그 애는 얼마나 곱고 튼튼한 사내였겠습니까

그러나 정작 나에게 생긴 아이는
눈이 크고 가냘픈 총각 애
총 센 머리칼 탓인 듯 머리는 무거워 보여도
물푸레아지 인 양 매출한 두 다리는
어방없이 날쌘 장난꾸러기입니다.

유치원에서 돌아오기 바쁘게
고삐 없는 새끼염소마냥
산으로 강으로 내닫는 그 애를 두고
시어머니도 남편도 나를 탓 합니다
다른 집 애들처럼 붙들어놓고
무슨 재간이든 배워줘야 하지 않는가고

그런 때면 나는 그저 못 들은 척
까맣게 탄 그 애 몸에 비누거품 일구어댑니다
뭐랍니까 그 애 하는 대로 내버려두는데
정다운 이 땅에 축구공마냥 그 애 맘껏 딩구는데

눈 올 때면 눈사람도 되어 보고
비 올 때면 꽃잎마냥 비도 흠뻑 맞거라
고추잠자리 메뚜기도 따라 잡고
따끔따끔 쏠쐐기에 질려도 보려무나

푸르른 이 땅 아름다운 모든 것을
백지같이 깨끗한 네 마음속에
또렷이 소중히 새겨 넣어라
이 엄마 너의 심장은 낳아 주었지만
그 속에서 한생 뜨거이 뛰어야 할 피는
다름 아닌 너 자신이 만들어야 한단다

네가 바라보는 하늘
네가 마음껏 딩구는 땅이
네가 한생토록 안고 살 사랑이기에
아들아, 엄마는 그 어떤 재간보다도
사랑하는 법부터 너에게 배워주련다
그런 심장이 가진 재능은
지구 우에 조국을 들어올리기에......


<감상>


여러 해 전 한국문화예술위원 회가 운영하는 사이버문학광장인 '문장'에서 문학집배원 안도현 시인이 메일로 보내 왔던 시를 하나 소개하겠습니다. 그런데 시인의 이름이 낯설뿐 아니라 성씨도 '염'이 아니라 '렴'이었던 것입니다. '염'씨도 본관에 따라 문화'류'씨처럼 '렴'으로도 쓰나보다 하면서 시를 읽는데 정서는 우리와 거의 같은데 생소한 말이 자꾸 눈에 띄던 것이었습니다. 시를 다 읽고 난 후 생소한 시인이 참 맛깔스럽게 시를 쓰는구나 하고 생각하며 안도현 시인의 해설을 읽었습니다. 나는 적잖이 충격을 받았습니다. 렴형미 시인은 남한의 시인이 아니라 북한의 시인이었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아이를 키우며 느끼는 어머니의 심정이 이렇게 남북이 똑같을 수가 있습니까? 다만 렴시인은 시를 쓰는 어머니로 탁월한 예지로 아들의 장래를 내다보고 있다는 것이 여느 어머니들과 다를 뿐인 것입니다. 남북의 수많은 엄마들을 대신하여 진정한 자녀교육이 어떠해야 하는지 교육이 나아가야할 진정한 방향이 무엇인지를 명쾌하게 밝혀 노래하고 있지 않습니까? 어쩌면 사상과 이념과는 별개로 인류 보편적 가치를 조용조용 읊조리고 있는 것입니다. 북에도 저렇게 노래하는 젊은 시인이 있다는데 새삼 희망이 솟아나는 것 같습니다. 북쪽의 어머니도 남쪽의 어머니와 마찬가지로 자식의 장래를 위해 희생과 헌신을 다하고 있다는 것이 또 하나의 민족의 동질성인 것 같아 마음 한 편이 따뜻해지기도 하는 것입니다.

몇 가지 북쪽 말을 알아보겠습니다.

물푸레아지-물푸레 나뭇가지
매출한-흠이나 거침새 없이 곧고 밋밋한
어방없이 -어림없이
쏠쐐기-송충이
한생- 일생, 평생

*렴형미: 북녘 땅에서 여섯 살배기 아이를 키우고 있는 어머니인 렴형미 시인은 함경북도 청진에서 태어나 80년대 말부터 시를 발표해 왔다. 렴 시인이 1999년 '전국군중문학현상모집'에 내놓은 시초(詩抄) '시련과 녀인'은 1등에 당선 되었다. 북의 고난의 행군 시기, 어렵고 고달픈 나날 속에서 버거운 삶을 살아나가는 여성들의 목소리를 담고 있는 당선작 '시련과 녀인'을 발표한 뒤, 줄곧 여성들의 다양한 삶과 운명을 노래한 작품들을 선보이면서 북한 문단에서 꽤 주목을 받고 있는 젊은 시인으로 알려져 있다. (안도현 시인 해설에서)
최일화 시인/2011.8 인천남동고 정년퇴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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