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를 앞서간 실존 인물의 기록 <상록수>
농촌 소설 <상록수>는 충남 당진 필경사에서 태어났다. 독립을 꿈꾸다 해방을 보지 못하고 요절한 심훈(1901~1936)의 마지막 작품이기도 하다. 필경사(筆耕舍)는 '원고지에 농사를 짓는 집'이다. 필경사가 <상록수>의 산실이 된 것은 필연이었던 셈이다.
소설 <상록수> 실제 주인공 '공동경작회'
소설 <상록수>에 등장하는 '농우회' 회원들(16명)의 얼굴이다. 당시 당진 부곡리에서 농촌운동 모임으로 조직된 '공동경작회'를 운영했던 실제 주인공들이다. '상록수' 남주인공(박동혁)의 실존 인물이자 '공동경작회' 회원이었던 심재영의 회고 글을 통해 공동경작회 활동을 자세히 보여주고 있다.
공동경작회는 마을 내 야학 사업을 위한 사업기금을 논농사를 통해 마련하기 위해 결성됐다. 처음엔 12명으로 출발해 20명으로 늘어났다. 매주 한 번씩 모여 국내 정세보고, 작업일정 결정, 농사개량법, 교양강좌 등을 논의했다. 공동 경작한 논도 처음 7마지기에서 23마지기로 늘어났다.
'공동경작회'는 지금의 영농협동조합의 시조라 할만하다. 소설 <상록수>에서도 채영신(실존인물 여대생 최영신)을 통해 당시 협동조합의 천국인 덴마크의 농촌혁신 사례를 모델로 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오미이뉴스 기사 ‘<상록수> 속 공동경작회는 3농혁신의 실 모델’ 인용함.
<소설 <상록수>의 실제 모델 충남 당진 공동경작회 회원들.1937년 6월 촬영-사진 제공 오마이뉴스 심규상 >
<상록수> 줄거리
박동혁과 채영신은 여름방학을 이용해서 농촌계몽운동에 참여했다가 00일보사에서 주최한 보고회 겸 위로회 석상에서 만나 동지가 된다. 동혁은 수원고등농림 학생이고 영신은 여자 신학교 학생이다. 가정형편이 어려운 동혁은 학업을 중도에 포기하고 고향인 한곡리로 내려가서 농촌 계몽운동을 벌인다. 어느 날, 영신을 총애하는 백현경 여사의 토요간담회에 동혁이 초대됨으로써 이루어진다. 이 두 번째 만남을 계기로 영신은 청석골로, 동혁은 한곡리로 내려감으로써 농촌계몽운동의 전기가 되는 셈이다. 영신은 결혼하라는 말에 한곡리로 동혁을 찾아옴으로써 이루어지는데, 이 만남을 계기로 둘은 3년 후의 결혼을 약속하게 되고, 결혼과 농촌운동의 선택에서 갈등을 겪던 주인공들은 이후 보다 본격적인 농촌운동에 몰두하게 된다. 동혁은 갖가지 사업을 벌이고 20평짜리 농우회회관까지 장만한다.
지주의 아들인 강기천은 이를 달갑지 않게 여긴다. 그는 당국에서 농촌진흥회 사업을 권장하자 농우회관을 농촌진흥회 회관으로 돌리기 위해 수작을 벌인다. 동혁은 강기천의 수작을 눈치 채고 그의 요청을 한 마디로 거절한다. 기독교 청년회 농촌사업부의 특파원 자격으로 청석골로 내려간 채영신은 부녀회를 조직하는 한편 어린이를 위한 강습소를 마을 예배당을 빌어 운영한다. 영신이 세운 청석학원의 낙성식에 동혁이 초대됨으로써 이루어진다. 이 만남으로 동혁은 자신의 농촌계몽사업에 대해서 냉철하게 반성하는 기회를 갖게 되며, 보다 실질적인 농촌 사람들의 문제를 해결해 주기도 한다. 영신은 여기저기 부탁을 해서 기부금을 얻어 새 건물을 지을 계획을 세운다. 그러던 어느 날 주재소에 출두한 영신은 강습소로 쓰고 있는 집이 좁고 낡았으니 학생을 80명만 받고 기부금은 누구에게도 강요하지 말라는 주의를 소장으로부터 받는다. 무거운 마음으로 청석골에 돌아온 영신은 학생들을 내쫓는다. 학생들 사이에서 울고불고 난리가 난다. 쫓겨난 아이들은 머리만 내밀고 담에 매달려 있기도 하고 뽕나무에 올라가 있기도 하며 키가 작은 계집애 들은 울고 있다. 그 광경에 감격한 영신은 창문을 활짝 열어젖히고 누구든지 학교로 와서 배우라고 한다.
영신은 하루바삐 교실을 만들어서 아이들이 자유롭게 공부할 수 있도록 해야겠다고 결심한다. 그녀는 재력이 있는 한낭청의 집으로 찾아가서 약속한 기부금 50원을 내줄 것을 간청한다. 이 일로 영신은 기부금 강요 혐의로 주재소 신세를 진다. 출소한 영신을 과로로 쓰러진다. 청석골로 달려간 동혁은 맹장염에 걸린 영신을 입원시킨다. 동혁이가 없는 동안 강기천은 한곡리 농우회의 배신자들을 조종해서 농우회의 회장이 된다. 농우회 회관은 강기천의 뜻대로 진흥회의 회관이 된다. 이에 불만을 품은 동혁의 남동생 동화가 회관에 불을 놓으려다 들킨다. 이 일로 동화와 동혁이 함께 구속된다. 영신은 형무로소 동혁을 면회하러 간다. 다시 만난 두 사람은 농촌 운동을 하는 일에 전념하기로 굳게 약속한다. 기독교계의 추천으로 도일해서 공부하고 돌아온 영신은 병이 악화되어 숨지며 그녀를 장사지내고 돌아오는 길에 동혁은 농민을 위해 살 것을 굳게 다짐한다.
심훈의 상록수는 경기도 안산에 있는 최용신의 실화를 바탕으로 꾸며진 이야기
<심훈 기념관 -사진 제공 오마이뉴스 심규상>
최용신은 1909년 대한제국이 주권을 일본제국주의에 완전히 빼앗기기 1년 전 함경도 덕원군 현면 두남리에서 경주 최씨 창희(昌熙)공의 3녀2남 중 차녀로 태어났다. 원산에서 10여리 떨어진 두남리는 일찍부터 기독교가 전래되어 서양문화와 접촉, 개화된 마을이었다. 이러한 환경은 그녀로 하여금 기독교 신앙을 갖게 하였으며, 봉사와 희생정신으로 농촌계몽운동에 뛰어들게 한 계기를 만들어 주었다. 그녀는 원산의 루씨보통학교, 루씨여자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하고 서울의 협성여자신학교(현 감리교신학대학)를 중퇴하기까지 루씨여자고등보통학교의 교목 전희균 목사의 감화와 협성신학교의 황에스더(黃施德)교수의 지도와 영향을 받아 국가와 민족의 살 길은 쪼들고 가난하고 무지한 농촌을 부흥시켜야 한다는 굳은 신념을 갖게 되었다.
천곡에 온지 8개월 만에 강습소 인가를 받아 내고 1년 3개월 만에 강습소를 신축하여 110명의 아동들을 교육시키는 학교로 발전시켰다. 이와 같이 최용신의 천곡에서의 활동은 천곡강습소의 교장 겸 교사로서, 마을 주부들의 주부회 지도자로서, 마을 청년회의 후원자로, 천곡교회의 종으로서 천곡의 온 마을에 그녀의 손길과 마음이 아니 거친 데가 없을 정도로 그녀는 천곡의 산 선지자였다. 1935년 장중첩증(腸重疊症)에 의하여 26세의 짧은 인생으로 최용신이 사망하자 천곡마을 사람들은 그를 사회장으로 1,000여명의 조문객의 애도 속에 강습소가 보이는 곳에 안장하였다. 이러한 사실이 세상에 알려지자 이를 소재로 작가 심훈이 '상록수'라는 농촌소설을 집필하였으니 상록수의 여주인공(채영신)은 최용신을 모델로 한 작품이었다.
올해 읽은 책 중에서 가장 몰입도가 떨어지는 책 <상록수>
이 책을 받아들었을 때 농촌계몽소설이고 줄거리를 알고 있는 책이라서 쉽게 읽을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그러나 읽는 내내 몇 번이나 잠이 들었고 책장을 덮었다. 가장 중요한 문제는 책장마다 등장하는 토속어 사투리였다. 한글 소설이 분명한데도 마치 외국어를 읽는 것처럼 독해가 되지 않아서 힘들었다. 많은 사람, 특히 청소년이 많이 읽을 수 있게 하려면 시대에 맞는 언어로 개작해야 함을 절실히 느낀 책이다. 아무리 좋은 책도 번역이 되지 못하는 이 나라의 문학의 현실이 노벨문학상에 먼 이유를 짐작했다. 감정과 정서적 몰입에 방해가 되어 글의 흐름을 끊어놓은 이 책의 집필진에게 화가 났다. 나만의 경험이었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의 주인공들이 실제 인물과 사건에서 비롯되었다는 사실에 고무되어 끝까지 읽을 수 있었다. 박동혁과 채영신은 지금 이 나라에서 가장 필요한 구국의 인물로 보였기 때문이다. 개인의 행복과 안락을 위해 몸부림치며 사는 대다수의 사람이 넘쳐나는 대한민국의 모습, 사랑보다 투자와 거래 대상으로 전락한 결혼 모습, 성폭력과 성추행으로 얼룩진 문란한 성윤리에 몸서리치는 뉴스들이 넘치는 현실이 아닌가? 주인공들은 오직 농촌계몽운동을 지상명령으로 받아들이며 자신들의 행복마저 유보한 채 생을 마감하고 만다.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지고지순한 모습으로 지켜주는 순애보는 마치 황순원의 <소나기>와 알퐁스 도데의<별>을 보는 것 같았다. 내가 작가라면 두 사람을 결혼부터 시켜서 농촌계몽운동을 하게 했을 것 같다. 서로 이상과 꿈이 같고 대화가 통하는 상대이니 시너지 효과가 나서 보다 더 훌륭하게 진전되지 않았을까? 그러니 일제 강점기라는 시대적 배경을 깔아야 했으니 어쩔 수 없으리라.
부끄럽게 하는 책 <상록수>
채영신의 모습은 선생으로 사는 나를 부끄럽게 하는 캐릭터다. 나에게도 가르치는 아이들을 그처럼 걱정하고 몰입했던 때가 있었다. 눈물 흘리며 걱정하며 제자의 인생에 끼어들던 때가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매너리즘에 빠져서 죄만 짓지 않는 수준으로 교단에 서 있는 것만 같아서 나를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다. 지금 이 나라에는 학업중단 학생이 수만 명이고 학교를 나와도 일자리가 없는 청년 또한 엄청나다. 좁은 문을 향해 한 줄로 서서 커트라인에 걸리지 않으려고 서로 물어뜯으며 폭탄돌리기에 매몰되어 아수라장이 된 현실을 부정할 수조차 없다.
이러한 현실을 적나라하게 고발한 조정래 작가의 소설<풀꽃도 꽃이다>는 결코 픽션이 아닌 논픽션이다. 대한민국 교육현장의 아픈 단면을 그대로 보여주기 때문이다. <상록수>와 같이 읽어야 할 필독서다. 우리는 지금 독립국가가 분명하다. 입에 풀칠을 하지 못할 만큼 가난한 사람들이 있는 나라도 아니고, 돈이 없어서 의무교육을 받지 못하는 사람도 없는 나라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라를 잃고 가난하고 비참했던 시절보다 더 패배의식과 냉소주의에 빠져있다.
이러한 상황을 빠져 나올 대안은 바로 <상록수>의 주인공들이 보여주었다. 바로 계몽정신이다. 좌절과 자기비하에서 벗어나게 하는 ‘교육’에 답이 있다. 현재와 같은 경쟁 일변도의 문화, 갑질 문화, 양극화를 해소할 수 있게 하는 교육의 담론이 절실하다. 그것은 단편적인 입시정책이나 보육대책, 일자리 정책으로 해결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근본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는 뜻이다. 이미 묵정밭이 되어 더 이상 거름기가 남아 있지 않은 정책을 과감히 뒤엎고 사회 전반적으로 새로운 시스템을 구축하는 혁신적인 패러다임의 전환만이 살 길이다.
이 책은 바로 그런 교육적 상상력을 자극한다. 모든 학생을 편견 없이 소중히 하는 일, 인간적으로 대우해 주는 일, 뒤처진 학생을 배려하고 이끌어주는 교육정책으로 가난해도 희망을 품고 힘들어도 바라볼 꿈을 향해 나아갈 수 있는 길을 보여주는 선생님과 정치지도자가 절실함을 죽어가는 채영신을 대신하여 박동혁은 외치고 있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