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얼마나 오래 살 수 있을까? 역사상 가장 장수를 누린 사람은 122살까지 살다가 1997년에 세상을 떠난 프랑스의 잔느 칼멩 할머니이다. 이 할머니는 자신의 유일한 손자보다도 무려 34년이나 오래 살았고, 100살에 자전거를 타기도 했다.
인간의 최대 수명은 늘어날 것인가
노화학자들 가운데는 인간의 한계 수명이 더 이상 늘기 어렵다는 비관론자와 훨씬 더 늘어날 수 있다는 낙관론자 두 부류가 있다. 얼마 전에는 두 진영을 대표하는 미국의 노화학자들이 인간의 최대 수명을 놓고 내기를 걸었다. 아이다호 대학의 동물학자인 스티븐 오스태드 교수는 2150년이 되면 150살까지 사는 사람이 나올 것이라는 데 돈을 걸었다. 그는 그때가 되면 약이나 유전자 치료로 노화의 주범인 유해 산소에 의한 세포의 손상을 막을 수 있게 돼 150살까지 사는 사람이 나온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시카고 대학의 전염병학자인 제이 올쉔스키 교수는 그때가 되도 130살 이상 사는 사람은 없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는 인공 장기가 나와 망가진 기관을 교체해도 다른 곳이 노화되거나 부작용이 생겨 130살까지 살기가 어렵다고 주장한다. 인간의 최대 수명을 획기적으로 늘리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두 과학자가 판돈으로 신탁회사에 맡긴 돈은 150달러이지만 150년 뒤 내기에서 이긴 사람은 5억 달러 다시 말해 6000억 원의 돈을 받게 된다. 누가 이길까? 필자는 유전자 치료나 약으로 사람의 수명을 획기적으로 늘릴 수 있다는 주장에는 상당한 허구가 있다고 본다. 실제로 대부분 포유류의 수명은 신체가 성장하는 성장기의 5∼6배이다. 이런 점을 감안해 본다면 인간의 수명은 대체로 120세 정도로 한계가 그어져 있다는 것이 정설이다.
평균 수명의 증가 속도 계속 둔화돼
중요한 사실은 근대화와 의학 발전으로 인간의 평균 수명은 획기적으로 늘어났지만 최대 수명은 거의 늘어나지 않았다는 점이다. 고대 로마 시대의 인간의 평균 수명은 22세에 불과했다. 1900년경 미국인의 평균 수명은 47세 정도였다. 오늘날 미국인의 평균 수명은 80세에 육박한다. 요즘에도 80세가 되기 전에 절반이 사망하고 100살이 되기 전에 99%가 사망하고 115살까지 사는 사람은 거의 없다. 한국인의 평균 수명도 70여 년 전에 비해 무려 41년이나 늘어났다. 일제 시대 당시 경성대 의학부 예방의학교실 미즈시마 하루오 교수는 조선총독부의 인구 및 사망 신고 자료를 분석해 한국 최초의 주민 생명표를 만들었다.
이 생명표에 따르면 1926∼1930년의 한국인의 평균 수명은 남자 32.4세, 여자 35.1세(평균 33.8세)였다. 1999년의 한국인의 평균 수명은 남자 71.1세, 여자 79.2세(평균 75.2세)이다. 이는 1999년에 태어난 한국인이 기대할 수 있는 수명이 75.6세라는 뜻이다. 70여 년 만에 한국인의 수명이 41년 늘어난 셈이다. 하지만 최근 들어 평균 수명의 증가 속도는 크게 둔화됐다. 평균 수명이 이렇게 늘어난 것은 영양 상태가 개선되고 상수도와 주거 환경의 개선으로 전염병이 줄어든 것이 근본 이유다. 특히 유아 사망률이 낮아진 것이 빼놓을 수 없는 요인이다. 1925∼1930년 사이의 유아 사망률은 출생한 유아 1000명당 남아 252명, 여아 230명이나 됐다. 네 명 중 한 명꼴로 태어나다가 사망한 것이다.
생활습관, 환경이 노화의 속도 결정
노화를 극복하려면 노화의 원인을 먼저 알아야 한다. 하지만 노화는 한마디로 정의하기가 어렵고 그 이론 또한 무수히 많다. 대표적인 이론으로 텔로미어 이론, 유해 산소 이론, 내분비계의 노화 등을 꼽을 수 있다. '텔로미어'는 인간의 세포 염색체 끝에 있으면서 염색체를 보호하는 단백질로 세포가 분열할 때마다 짧아진다. 마치 카세트 테이프가 돌다가 언젠가 멈추는 것처럼 세포가 분열하면서 텔로미어가 조금씩 짧아져 결국 세포분열이 중단돼 죽는다는 것이 텔로미어 이론이다. 실제로 사람의 세포를 떼어내 시험관에서 배양하면 40∼60회 정도 분열을 하고 더 이상 분열을 하지 않는다. 세포는 계속해서 죽는 반면 더 이상 세포가 생기지 않으니 사람이 수명이 다하면 죽는 것은 당연하다.
두 번째는 유해 산소 이론이다. 우리는 몸의 기능을 유지하기 위해 산소를 들이마셔 필수적인 에너지를 만든다. 이 산화 과정의 부산물로 생성되는 것이 유해 산소다. 인간은 누구나 유해 산소로 인한 손상을 피할 수 없다. 말하자면 숨 쉬는 데 유해 산소라는 비용을 지불하는 셈이다. 유해 산소는 산소보다도 훨씬 반응성이 강하다. 이 때문에 우리 몸의 중요한 세포막이나 염색체, 단백질 등이 변형되고 결국은 손상돼 작동하지 않게 된다. 유해 산소에 의한 손상은 암, 심근경색, 뇌졸중, 동맥경화, 치매, 백내장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질병의 원인이다. 특히 스트레스를 심하게 받으면 유해 산소가 많이 생긴다. 또 과격한 운동을 할 때, 담배를 피울 때, 과식이나 영양 결핍 때에도 유해 산소가 많이 나온다.
세 번째는 내분비계의 노화다. 여성은 나이가 들면 난소의 기능이 떨어져서 폐경이 오고 남성도 남성 호르몬이 조금씩 감소하면서 갱년기가 찾아온다. 성 호르몬의 감소는 조물주의 입장에서 본다면 '이제 생식 기능을 완수했으니 죽어도 좋다'는 뜻이나 마찬가지다. 성 호르몬이나 성장 호르몬의 감소는 젊은 시절 활발했던 인체의 대사 활동을 둔화시킴으로써 결국 노화를 촉진하게 된다. 예를 들어 성장 호르몬의 결핍은 노인에게 뇌경색의 위험을 2배 정도 증가시킨다.
탄생부터 대략 30세가 될 때까지 인간의 생물학적 발전은 대체로 시간 순서로 정확히 프로그램 되어 있다. 여기에는 개인적인 차가 별로 없다. 하지만 노화 과정은 유전적으로 고정된 것이 아니다. 따라서 사람마다 노화의 차이가 크다. 때문에 생활 습관이나 환경이 노화의 속도를 좌우한다. 중요한 것은 생명의 길이 연장이 아니라 건강하고 활동적으로 노년을 보낼 수 있도록 잘 늙어야 하는 것이다. 그러려면 좋은 생활 습관을 가지고 스트레스를 피해 편안한 마음을 갖고 흡연과 과음을 멀리하면서 규칙적인 운동을 해야 한다. 그래야 노인이 되어서도 청년처럼 살 수 있다.
지금까지 많은 과학자들이 인간의 노화를 연구했지만 노화를 근본적으로 억제할 수 있는 어떤 실마리도 아직은 찾아내지 못했다. 한국의 65세 이상 노인 인구는 2000년 현재 전체 인구의 6.8%이지만 2020년에는 12.5%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정년 퇴직 뒤 20년 동안 새로운 인생이 시작되는 것이다. 노령화 사회는 사회 문제이기도 하지만 결국 노인이 될 세대들이 실제로 겪어야 할 개인의 문제이기도 하다. 젊었을 때 건강을 돌보는 것이 노인이 되어 얼마나 행복하고 질 높은 삶을 누릴 수 있을지를 결정한다. 꾸준한 운동과 좋은 생활 습관은 미래에 대한 투자인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