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 동성 부모 위해 ‘엄마’, ‘아빠’ 금지

2006.10.01 09:00:00

신아연 | 호주 칼럼니스트


‘우리 가족은 엄마 둘, 그리고 나와 동생 이렇게 네 명입니다.’ ‘우리 집에는 엄마는 없지만 아빠는 두 명입니다.’ 호주의 초등학교와 유치원에서 가르치고 있는 교재나 동화책 가운데는 이처럼 알쏭달쏭한 표현이나 문구가 이따금 등장한다. 이른바 ‘동성애 부모’를 가진 아동들의 가족상황을 묘사하고 있는 것이다. ‘부모’란 말 그대로 ‘어머니’와 ‘아버지’ 양친을 일컫지만 호주에서는 반드시 그런 개념만도 아니다. 즉, 부모란 양성을 가진 두 사람일 수도 있고, 어머니 두 분을 나타내거나 혹 아버지 두 분을 뜻하는 단어도 될 수 있다. 동성애 부부 사이에서 양육되는 자녀의 처지에서는 부모의 정의가 일반 가정의 자녀와는 분명히 구분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호주의 가족법은 동성애자들의 혼인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따라서 동성애자들의 자녀 양육권 또한 법적으로 어떠한 보호도 받을 수 없다. 현실이 이러함에도 동성애 커플은 점차 늘어나고 있으며 둘 만의 관계에 만족하는 단계를 넘어 자녀를 갖기 원하는 경우도 급격히 확산되고 있는 추세이다. 어쩌면 동성애 커플일수록 입양, 혹은 정자 기증이나 대리임신 등을 통해 둘 사이에 자녀를 둔 단란한 가정을 꾸리고 싶은 욕망이 이성애자들보다 더욱 강할지도 모른다.

지난해 호주 서부의 한 여성 동성애 커플은 약 3년간 3만 호주 달러 (한화 약 2400만 원)라는 거금을 들여 지난한 노력 끝에 정자를 기증받아 인공수정에 성공했다. 이 커플은 보통의 이성애 부부나 사실혼 관계, 심지어 미혼모조차 적용되는 의료 보조 혜택을 전혀 받지 못한 채 재정적으로 큰 곤란을 겪었음에도 자신들의 아이를 가질 수 있게 된 것에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이 같은 사회 분위기로 미루어 볼 때 머지않은 미래에 호주 사회는 동성애자들의 가족 관계를 수용하고 가족 구성원의 다양성을 인정하는 현상이 보편적으로 자리 잡을 것이라는 예단도 나오고 있다. 차제에 동성 부모와 그 가족들을 싸안기 위한 교육 차원의 움직임도 이를 뒷받침하는 하나의 현상으로 인식되고 있는 것이다.

호주 빅토리아 주의 수십 개에 달하는 초등학교에서는 동성 부모 가정을 배려한다는 취지 하에 학생들에게 ‘엄마, 아빠’란 말 대신 ‘돌봐주시는 분들(parent)’ 이나 ‘보호자 (carer)’라는 단어를 사용할 것을 가르치고 있다.
그런가 하면 사회적 소수나 상대적 약자 그룹에 대한 편견을 없애고 포용과 관용을 실천한다는 명분으로 동성애 관련 명사들을 모은 포스터도 제작됐다. 또 여성이나 남성을 상징적으로 부각시키는 장난감을 갖고 노는 것도 되도록이면 배제할 것을 아동들에게 권장하고 있다.

사회적 소수 인정하도록 아동기부터 교육

이 같은 내용을 골자로 하여 초등학교 저학년 교사들이 어린 학생들을 가르칠 때 동성애 부모에 대한 차별의식을 없애는 것에 초점을 둔 일련의 교육방침이 일선교사들에게 전달됐다.
이 가운데는 동성 부모를 둔 어린이들의 현실을 묘사한 가상 시나리오를 실연케 하고, 그랬을 경우 발생할 주위 사람들의 차별에 대해서 학생들 간에 토론을 하는 프로그램도 있다. 초등학교뿐 아니라 동성애 가정을 모델로 한 그림책을 학습 교재로 사용하는 유치원도 등장했다.

물론 이 같은 가이드라인은 교육부의 공식 승인에 의해 정식으로 교과과정에 뿌리내린 것은 아니다. 어디까지나 학교 재량에 따라 채택 여부가 결정될 뿐이지만 사회적 소수인 동성애자들을 다수에 속하는 사람들이 받아들이고 인정하도록 아동기부터 교육을 한다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실상 호주는 ‘동성애자들의 천국’이라 불릴 정도로 이들에 대한 사회적 편견이나 비난이 그다지 심하지 않은 나라에 속한다. 더군다나 최근 들어 유치원생과 초등학교 저학년생들을 대상으로 동성애 가정 또한 이성애의 그것과 다름없이 존중받아야 한다는 것을 일찌감치 주입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들의 권익이 보다 가시적인 형태로 열매를 맺을 것이라는 평가도 있다.

호주는 지난 1993년부터 동성애자들에 관한 관용이 사회적으로 큰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동성애는 비정상적 성적 기호나 이른바 변태가 아닌 유전자적 특성에 기인한다는 인식이 자리 잡기 시작한 것이다. 이후 동성애자들에 대해서는 색안경을 끼고 보는 시선이 많이 거두어진 후 이제는 ‘동성혼’을 인정하고 자녀양육을 허용하는 법적 기반을 마련하는 차원으로 한 걸음을 더 내딛고 있는 상황이다.

양성 학부모 “게이 교사 용납 못해”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성애자들이 맞닥뜨려야 하는 현실의 벽은 그리 만만치 않다. 동성애 부모들과 그 가정의 자녀를 이해하고 배려하려는 교육 분위기와는 모순되게도 얼마 전, 일선 교육 현장에서 학생들에게 성교육을 하던 동성애 교사에 대한 해고조치가 내려진 일이 있었다.

초등학교 5, 6학년생들을 대상으로 성에 관한 교육을 하던 이 교사는 학생들에게 자신이 동성애자란 사실을 밝혔다는 이유로 한창 예민한 나이의 학생들에게 성 윤리에 관한 그릇된 정보와 의식을 주입했다며 학교 측으로부터 교직을 박탈당한 것. 동성애자들의 권익보호와 기회균등을 지속적으로 주장해 온 인권단체들은 동성애자라는 이유로 교사직을 그만두게 한 것은 명백한 인권 탄압이라며 강력히 맞섰지만 자녀에게 유해한 교육환경을 제공할 수 없다는 ‘양성 학부모’들의 반발을 꺾을 수는 없었다.

학부모들은 어린이들에게 동성 부모와 그들 가정의 존재를 인식시키기 위한 학교교육과정 변화에 절대 동의할 수 없으며, 더군다나 자신이 동성애자임을 학생들에게 그대로 드러낸 교사를 교단에 계속 세월 둘 수는 없다며 강한 분노를 드러내고 있다. ‘교실에서 이런 것까지 가르치길 기대하며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지는 않았다’며 거세게 항의하고 있는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호주에서는 아이를 키우는 부모들끼리 모이면 뼈 있는 우스갯소리로 ‘자식이 이성 친구를 사귀는 것만으로도 안심이 된다. 나중에 커서 이성 신부감이나 신랑감만 데려오면 무조건 고맙겠다’라는 말을 할 정도로 동성애자들의 증가에 대해 곱지 않은 시선을 보이고 있다. 사정이 이러하기 때문에 학교 교과과정에까지 이 같은 분위기를 옹호하고 부추기는 수업내용을 끼워 넣는 것에 자식 가진 사람들이 격한 항의를 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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