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교과·진학 지도의 三重苦

2006.12.01 09:00:00

이명훈 | 서울 성동공업고 교사

실업계 고등학교(이하 실업계고)는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경제 발전을 위한 산업 인력 양성에 크게 이바지해 왔다. 그러나 최근에는 핵가족화와 소득 증대로 인한 고등교육 욕구 증대, 실업계고 입학자원수의 감소, 직업세계의 변화 등으로 인하여 실업계고가 학생과 산업체로부터 외면당하는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러한 어려움을 해소하기 위하여 지금까지 실업계고 육성을 위한 다양한 정책들이 나왔다. 또한 실업계고 교사들도 이를 극복하기 위해 수요자 중심으로의 교육과정 개편과 이에 따른 교사의 주전공 변경, 수업 내실화와 신기술 습득을 위한 자기 연찬 등의 노력을 아끼지 않고 있다. 그러나 워낙 상황이 어렵다 보니 학교 안팎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일선 학교 현장에서 실업계고 교사의 어려움은 해소되지 못하고 있다.

중도 탈락률 인문계고의 4배
실업 교육을 담당하는 교사의 어려움으로는 첫째, 과거에 비해 기초학력과 학습능력이 낮고, 성취동기 및 학업에 대한 열의가 부족한 학생들에게 교과지도를 하는 것이다. 둘째, 옳고 그름에 대한 판단력이 부족하고, 당장의 편안함만을 추구하려는 학생들에게 바르게 생각하고 행동하도록 생활지도를 하는 것이다. 셋째, 직장으로의 취업지도뿐 아니라 상급학교로의 진학지도도 겸하는 진로지도를 하는 것이다.

넷째, 실습실 관리, 실습 기자재 관리와 같은 실업계고만의 행정업무가 많다는 것이다. 다섯째, 담당 교과목 수가 많으며, 산업의 급격한 변화를 따라가기 위해 자기 계발을 꾸준히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가운데 실업계고 교사에게 가장 어려운 것은 역시 교과지도와 생활지도일 것이다. 따라서 이 글에서는 실업계고 교사의 교과지도와 생활지도에 관한 현실적인 어려움과 이를 극복하는데 도움이 될 수 있는 약간의 노하우를 제시하고자 한다.

실업계고의 교육목표는 학생으로 하여금 민주 시민으로서의 자질을 기르고, 실업에 대한 기초 지식을 바탕으로 기능을 연마하게 하여, 산업에서 필요한 기능인을 양성하는 것이다. 그러나 현재 산업에서 필요한 기능인을 실업계고에서 제대로 양성하고 있다고 말하기는 쉽지 않다. 물론 실업계고 중에도 큰 문제없이 교육목표를 실현하고 있는 곳도 없지 않다.

그러나 오늘날의 실업계고 교실에서는 일부 학생들이 학습하려는 의욕을 잃고 장난을 치거나 엎드려 자는 일이 예사로이 벌어지고 있다. 심지어 잦은 무단 지각, 결석 등으로 인해 수업에 제대로 참석하지 않는 학생들도 있다. 중도탈락비율(2006년 교육부 자료)이 인문계 고등학교(0.7%)에 비해 실업계 고등학교(2.9%)가 4배 이상 높은 것을 봐도 실업계고의 현실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생활지도, 이론과 현실의 차이
실업계고라고 하여 단지 취업하는데 필요한 지식과 기술만을 가르치는 곳은 아니다. 이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학생들로 하여금 올바른 가치관을 정립하고, 삶에 대한 뜻을 세우고 세상을 보람 있게 살 수 있다는 자신감과 다른 사람과 어울려 함께 생활할 수 있는 자세를 갖도록 하는 것이다.

교사를 주인공으로 한 영화 중에는 문제가 많은 학교에 의욕이 넘치는 교사가 새로 나타나서 열정과 사랑으로 지도하여, 우여곡절 끝에 학생들을 바른길로 인도한다는 식의 영화들이 많은데, 현실은 대부분 그렇지 못하다. 많은 초임교사가 교육에 대한 열정과 학생들에 대한 사랑을 품고 교직생활을 시작하지만, 많은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회의와 상처를 받기 쉽다. 교권이 바닥에 떨어진 상황에서 정이나 열정만으로 지도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실업계고 학생 지도 어려움을 극복하는데 도움이 될 몇 가지 노하우를 소개한다.

“자신감과 비전 을 주자”
중학교에서 적성보다는 학업에 대한 열의나 성적에 비중을 두고 진학지도를 하고 있어, 뚜렷한 목표 없이 실업계고에 입학하는 학생들에게는 무엇보다 비전을 제시해 줄 필요가 있다. 성공한 졸업생들의 사례나 신문 기사 등을 제시하면서, 학생들에게 비록 지금은 보잘 것 없을지라도, 이것이 끝이 아니며 10년 후, 20년 후에는 최고가 될 수 있다는 희망을 갖게 할 필요가 있다.

또한 교사 자신도 학업에 관심이 없어 떠들거나 엎드려 자는 학생들을 매일 같이 대하게 된다면 자괴감에 빠지기 쉽다. 하고자 하는 의욕이 있는 100명의 학생을 지도하는 것보다 의욕이 없는 10명의 학생을 지도하기가 훨씬 어렵고 힘들다. 그러다 보니 극히 일부의 교사 중에는 “역시 이 녀석들은 안 돼”라는 고정관념을 가지고 학생들을 대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교사의 인식이 학생들의 잠재의식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교육이란 젊은이로 하여금 그의 가능성을 깨닫게 하는 것이라는 에리히 프롬의 말처럼 실업계고 학생들의 내재되어 있는 가능성을 교사부터 믿고, 그 가능성을 비전으로 제시해줄 필요가 있다. 긍정적으로 보자면, 못하고 부족한 학생들은 그만큼 더 잘할 수 있는 가능성이 많다는 것이다.

긍정적 사고의 힘, 칭찬
일부 실업계고 학생들은 초등학교 시절부터 공부를 못한다는 이유로, 생활태도가 바르지 못하다는 이유로 자주 부모나 교사들로부터 야단을 맞아 왔으며, 한 사람의 당당한 인격체로서 대접받지 못하고 자랐기 때문에 패배주의와 부정적 자아에 사로잡히기 쉽다. 그런데 이와 같은 상황이 상급학교에 입학했다고 하루아침에 개선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실업계고에서도 여전히 지적을 받기 쉽다.

그러나 오히려 이런 학생들일수록 지적보다는 격려를 해줄 필요가 있다. 물론 잘못한 일까지도 무조건 격려를 해주라는 것은 아니다. 어느 교육학자의 말처럼 자라나는 청소년들에게는 비타민보다도 칭찬이 더 필요하다. 특히 기초학력이 낮고, 학습능력이 부족하고, 학습에 대한 열의가 낮은 학생들에게 칭찬은 강한 자신감과 학습의욕을 불러올 수 있다.

학생에게 맞는 학습내용과 교육방법 찾기
학생들의 기초학력이 부족하고, 학습의욕이 낮다 보니 간혹 선생님들 중에는 아무리 설명해도 수업내용을 알아듣는 학생이 극소수라고 한탄하는 분도 계시다. 그러나 어찌 보면 이것은 자신의 수업에 문제가 있으며, 제대로 가르치지 못한다는 것을 스스로 인정하는 것이 될 수도 있다. 이러한 시행착오를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첫째, 학습내용을 적절하게 선정할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서는 단지 교과서 내용에만 의존할 것이 아니라 산업사회에서 요구하는 기능이 무엇인지를 우선 파악하고, 이에 맞게 교과내용을 재구성해야 한다.

하루가 다르게 기술이 변화하고 있는 산업현장에서 졸업생들이 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어떠한 능력을 갖추어야 하는지를 파악할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서는 직무분석을 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겠으나 업무가 많은 실업계고 교사가 직무분석을 하기에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그러나 적은 노력, 예를 들어 현장실습을 의뢰해 오는 업체들의 인사담당자들과의 전화통화만으로도 어느 정도 산업현장에서 요구하는 능력이 어떤 것들이며, 그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를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둘째, 학습내용의 수준을 학습자에게 맞출 필요가 있다. 실업계고의 경우 학교에 따라 학습자 수준이 다양하며, 심지어는 같은 학교라 할지라도 입학년도에 따라 학습자 수준에 차이가 있을 수 있다. 따라서 수업을 받을 학생들의 수준을 사전에 확인하고, 그 수준에 맞게 지도할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서는 학년 초에 쪽지 시험 등을 통한 진단 평가를 해볼 필요가 있다.

셋째, 학생들의 학습동기를 유발할 수 있는 적절한 교육방법을 활용할 필요가 있다. 학습의욕이 낮고, 취업보다는 진학에 치중하고 있는 현실(실업계고 졸업생 중 취업자보다 진학자가 더 많음, 2006년 교육인적자원부 자료)에서 학생들에게 기능에 대한 흥미나 학습동기를 유발하기란 쉽지 않다.

최근에는 교육정보화가 이루어지면서 실업계고에서도 ICT를 활용한 수업방법이 강조되고 있다. 실제로 2005년에 이루어진 제5회 전국 실업계 고등학교 교수학습 방법 우수 사례에 적용된 교수·학습방법의 유형을 살펴보면 60% 이상이 수업에 ICT를 활용하였다. 그러나 ICT를 활용한 수업을 준비하기 위해서는 기존의 수업방식에 비해 3~4배의 시간이 더 걸린다. 그런데 평균 3~4과목 이상의 교과목을 담당하고 있는 실업계 교사에게 ICT 수업자료를 준비하기란 쉽지 않다. 물론 웹상의 자료를 활용할 수도 있으나 적절한 ICT 수업자료를 찾기란 ICT 수업자료를 직접 만드는 만큼이나 어렵다.

또한 ICT를 활용한 수업이라고 하여 반드시 학습동기를 유발할 수 있는 것도 아니며, 학생의 문제해결능력이나 주도적 학습능력을 신장시킬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이에 비해 간단하게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은 교과내용과 관련이 있는 졸업생을 수업시간에 초청하여 이야기를 듣는 것이다. 사회인이 된 졸업생으로부터 현장에서 근무하다 보니 지금 배우고 있는 지식과 기능이 유용하게 쓰일 수 있다든지, 대학에서 이 부분을 배우고 있는데 고등학교 때 경험이 크게 도움이 된다 등 10~20분정도만 시간을 마련해도 학생들에게 실질적인 동기유발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대부분의 졸업생은 학창시절에 좀 더 열심히 생활하지 못한 것에 대하여 후회를 하며, 다시 다닐 수만 있다면 뭐든지 열심히 하겠다는 아쉬움이 있는데, 선배들의 이러한 이야기들은 학생들의 학업뿐 아니라 생활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을 것이다.

상호 교류를 통한 신뢰 쌓기
가정에서의 예절교육은 예전 같지 않으며, 매스컴을 통해 접하게 되는 사회 질서의 붕괴, 자신의 잘못을 인식하지 못하는 불완전한 학생들의 가치관 등으로 인하여 실업계고 현장에서는 교사에게 무례하게 대하는 소위 ‘버릇없는 학생’을 가끔 접하게 되는 경우도 있다. 그러다 보니 아예 처음부터 학생들과의 교류를 기피하는 경우가 생기기도 있다. 그러나 올바른 생활지도를 위해서는 학생과의 교류를 통하여 신뢰를 쌓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 학생들은 교사가 자신의 가능성을 믿고, 자신의 발전을 바라고 있다는 것을 느낄 때 교사의 지도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학생들과 신뢰를 쌓는 가장 좋은 방법 중의 하나는 학생들과 각종대회를 함께 하는 것이다. 특히, 담임교사의 경우 학급 학생들이 가능한 많이 참여할 수 있는 ‘담임배 OO대회’를 정기적으로 개최하여 학생들과 정을 나누다 보면 기대 이상의 효과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OO대회는 축구, 농구, 탁구와 같은 운동경기가 될 수도 있으며, 오목, 장기, 알까기와 같은 놀이가 될 수도 있다.

담임교사는 사전에 많은 학생이 참여하도록 분위기를 이끌고, 우승자에게 줄 약간의 상품(약간의 과자나 라면 식권 등)을 준비하고, 담임교사는 물론, 학급에 들어오시는 교과 담당 선생님도 함께 참여하도록 한다면 사제 간의 신뢰는 더욱 돈독해질 수 있을 것이다. 또한 만화 그리기를 좋아하는 학생들에게 대진표를 그릴 기회를 주고, 그것을 학급에 게시하면 그 자체가 좋은 환경미화가 될 것이다. 이러한 작은 이벤트는 학생들과의 신뢰를 쌓는데 도움이 될 뿐 아니라, 학생들에게 자신감과 평생 기억에 남을 학창시절의 추억을 만들어 줄 수도 있다.

학부모와의 교류
생활지도를 위해서는 학생들과의 신뢰뿐 아니라 학부모와의 교류도 중요한데, 생활지도는 가정에서도 함께 이루어져야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학부모들에게 학생에 대한 무관심이 모든 문제의 근원임을 인식시키고 학생들의 학교생활에 대한 정보를 자주 전해줄 필요가 있다. 이때 전화나 면담보다는 간략한 문자 메시지를 이용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 될 수 있다. 핸드폰을 이용하여 일일이 문자를 전송하는 것은 번거로울 수 있으나 인터넷을 이용하여 문자를 전송한다면 수월하게 할 수 있을 것이다. 불가피하게 학생에게 체벌을 가하게 되는 경우에도 사전에 학부모와의 교류가 충분히 이루어진다면 이에 대하여 불만을 갖거나 항의하는 학부모는 거의 없을 것이다.

길게 보자
교사의 열정이나 노력에 비해 당장의 교육효과가 나타나지 않는다고 절대 실망하거나 포기할 필요는 없다. 생활지도에서 눈에 보이는 교육효과가 없다고 실패한 것은 아니다. 교육에는 교육효과가 단번에 나타나는 것이 있고, 먼 훗날 나타나는 것이 있다.

또 교육효과가 빨리 나타나는 학생이 있고, 먼 훗날 나타나는 학생이 있다. 그러므로 아무리 지도해도 안 된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어떤 내용은 쉽게 바로 지도될 수 있는 것도 있겠으나 15년 이상 형성된 학생들의 태도나 습관, 가치관 등은 단기간에 고치기가 쉽지 않다. 그러나 비록 지금은 전혀 나아진 것이 없을지라도 교육의 결과가 졸업 후 성인이 되어 나타날 수도 있는 것이다.

글을 마치며
오늘날의 실업 교육이 매우 어려운 것은 사실이다. 현재의 실업계고 상황에서 교과지도도 생활지도도 제대로 실현하기가 쉽지 않다. 그러나 힘들다고, 문제가 많다고 실업교육을 그만둘 수는 없는 것이며, 이 어려움을 헤쳐 나가야만 한다. 실업계고 교사들은 앞에서도 언급한 많은 어려움 속에서도 산업 인력을 양성함으로써 국가 발전에 크게 이바지해 왔다. 앞으로도 실업계고 교사는 계속해서 자신의 역할에 충실하도록 노력해야 하며, 아울러 실업계고 교사들이 최선을 다할 수 있도록 사회와 국가가 관심을 가지고 꾸준한 지원을 한다면 실업 교육은 오늘날의 어려움을 극복하고 제자리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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