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침내 터득한 ‘세월의 흐름’

2006.12.01 09:00:00

이창희 | 서울 대방고 교사

오래전의 일이다. 지금은 대학에서 교수로 재직하고 있는 아주 아끼던 후배교사가 있었다. 교원임용시험을 통하여 교직생활을 시작한 첫 번째 세대였다는 것은 기억이 되는데, 정확히 몇 년 전이었는지는 가물가물하다. 첫 대면에서부터 서로에게 친근감을 느꼈던 탓에 이후로 가깝게 지내게 되었다. 풍기는 외모와 행동이 필자의 초임발령시절과 비슷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필자보다는 네 살 정도 아래였기에, 자연스럽게 형님, 아우 하는 사이가 되었다. 그런데 그 후배가 학교에 온 지 1년여가 지났을 무렵 갑자기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이었다.

“형님, 교사가 된 지 벌써 1년이 지났네요. 정말 빠르게 지난 것 같아요. 무슨 시간이 이렇게 빨리 지나는지 모르겠네요. 봉급 열두 번 받았더니 어느새 1년이 지나 버렸네요.”
“이 친구가 벌써 그것을 알아 버렸네. 조금 지나면 더 빠르다는 것을 느끼게 될 걸, 우리 지금부터 흐르는 시간을 멈추도록 하는 방법을 연구해 볼까?” 그냥 웃고 지나쳤지만 그날 이후로 세월의 흐름을 어떻게 하면 잡을 수 있을 까라는 생각은 좀처럼 지워지지 않았다.

그로부터 몇 년 후, 그때 필자는 30대 중반을 넘어 막 후반으로 넘어간 직후였다. 집 근처에 자주 이용하는 약국이 있었다. 자주 가다 보니 약사와 자연스럽게 개인적인 이야기까지 주고받을 정도의 사이가 되었다. 부친이 교직에 몸담았었고 교장으로 정년퇴임을 했다고 했다. 필자보다는 14~15년 정도 위의 연배이다. 이런저런 이야기 끝에 “요즈음 세월이 정말 빠르다는 생각이 듭니다”라고 했더니 “아직은 잘 모를 것입니다. 40대가 되면 세월의 빠르기가 마라톤을 하는 것처럼 빨라집니다. 그것이 50대가 되면 100m 달리기로 바뀌게 되지요.”

두 경우를 생각해보니 정말 그 이야기들이 맞다는 생각이 든다. 교사는 봉급 열두 번 받으면 1년이 지나고 새로운 아이들 만나서 지내다 보면 또다시 봉급 열두 번 받고 그러다 보면 어느새 또 1년이 지나는 것이다. 또 몇 년이 흐르면 새로운 학교에서 다시 둥지를 틀게 된다. 요즈음에는 그 약사의 이야기가 더 실감 있게 다가온다. 아니 그가 이야기했던 마라톤보다 훨씬 더 빠르게 느껴진다. 벌써 100m 달리기에 돌입한 것 같다.

2006년에도 필자는 어처구니없게 ‘빠른 세월을 어떻게 잡아둘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계속하고 있었다. 2006년뿐 아니라 매년 해온 생각이다. 아니 매년이 아니라 매달 해왔을지도 모른다. 언제 끝나게 될지 모르지만 생각은 계속될 수도 있었다. 그러나 2006년이 가기 전에 그 생각을 접게 됐다. 얼마 전에 그 후배교수와 전화통화를 했다.

“어이, 김 교수, 교수되어서도 세월이 빠른가 모르겠네.” “말도 마십시오. 마라톤을 하네요. 벌써 40이 넘었나 봅니다.”

그러고 보니 ‘마라톤’이라는 이야기는 약사가 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 후배도 40대에는 마라톤 하는 기분이라는 것을 깨달은 모양이다. 그러면서 한마디 덧붙였다. “그런데 형님, 이제는 세월이 왜 빠른지 조금은 알 것 같아요, 붙잡는 일 포기해야 할까 봐요. 그냥 순리대로 살아가는 것이 좋을 것 같아서요.”

아, 필자도 이제 결론을 내릴 때가 된 것이다. 아무래도 세월의 흐름과의 숨바꼭질은 이쯤에서 접어야 할 것 같다. 오늘 현재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야말로 세월을 잡기 위한 몸부림보다 그 세월을 즐기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그것을 깨닫는데 왜 이렇게 오랜 시간이 걸린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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