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 - 어머니의 육아일기 | 현길언

2007.01.01 09:00:00


1
여덟 번 째 막내딸의 결혼식 전날 일흔 둘의 어머니는 내일이면 신부가 될 막내와 나란히 누워 천정을 쳐다본다. 이 딸을 낳던 그 이른 봄 쌀쌀했던 산부인과 병실에 누워있던 자신의 모습이 어제처럼 다가온다. 어머니는 성장한 딸의 어깨를 가볍게 껴안는다.
“엄마, 얼마만이예요. 저를 껴안고 자던 것이?”
“세 살 때까지 엄마의 젖을 먹었으니까, 이십삼 년 만이다.”
“제가 세 살 때까지 엄마 젖을 먹었어요? 그 때까지 엄마가 젖이….”
막내는 얼굴이 화끈 달아오른다. 세 살 때까지 젖을 먹었다니, 처음 듣는 말이다.
“세 살 때 일을 기억하지 못하는 것을 보면, 너도 천재는 아니구나.”
옆 침대에서 아버지가 장난스럽게 말한다.
“제가 세 살 때까지 엄마 품에 잤다면 아빠가 저를 얼마나 싫어했을까? 제가 엄마의 젖을 다 차지해 버렸으니?”
막내가 아버지를 향해 돌아누우면서 실눈으로 웃었다.
“아, 생각이 나요? 자다가 한밤중에 잠이 깨어보면 제가 엄마 등 뒤에 혼자 있었어요. 아빠가 절 뒤로 밀려버렸지요?”
“프로이드할아버지가 들으면 웃겠구나. 엄마를 사이에 두고 딸이 아빠와 다투었으니….”
셋은 소리 내어 웃는다.
“그런데 왜 저를 세 살 때까지 젖을 먹이셨어요? 우유가 없었어요?”
“왜 우유가 없었겠니? 네 언니들과 오빠들 중에는 엄마가 젖이 모자라 우유만 먹고 자란 애도 있었어.”
아버지가 대신 대답한다. 그렇다면 왜 나는 세 살 때까지 젖을 먹였을까?
“어머니는 너를 누구보다도 사랑했으니까, 그랬지.”
“제가 몸이 허약했었나요?”
막내는 이해할 수 없다.
“그런 것도 아니다. 세 살 때까지 엄마 젖을 먹었으니 얼마나 건강했다고….”
아버지가 낮은 목소리로 말한다. 막내는 그 음색이 유다르게 들렸다. 처음 듣는 말이다. 그 때 막내는 엄마의 흐느끼는 소리를 들었다.
“엄마가 너를 가졌다는 것을 안 때에 네 맏 언니 결혼 날짜가 잡혔던 때였지. 그래서 너는 규중이와 겨우 여덟 달 밖에 차이가 안 나지 않니?”
규중이는 큰 딸의 맏아들이다.
막내를 가졌다는 것을 안 것은 큰 딸이 약혼을 할 무렵이었다. 아무래도 몸이 이상해서 몰래 혼자서 산부인과를 찾았다. 엄마의 아기 일곱을 다 받아낸 늙은 여의사는 손으로 입을 가리면서 소리 없이 웃었다. 엄마는 덜컥 겁이 났다.
“엄만 저를 가졌다는 것을 알고서 즐겁지 않으셨군요?”
막내의 말에 어머니는 말문이 막혔다.
“그래서 일평생 네게 죄지은 심정으로 살아오셨다.”
아버지가 아내의 마음을 딸에게 전한다.
“그럼 혹시 중절수술을 생각하셨어요?”
“엄마는 겁쟁이라 그런 마음은 생각지도 못했다.” 아버지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지만 태연히 말한다. 어머니는 남편을 향해 돌아누운 막내딸의 등을 뒤로 감싸 안고 그 등에 볼을 댄다. 스물일곱의 처녀가 돌도 채 안된 아기가 된다. 늘 딸에게서 풍겨오던 젊음의 향기가 비릿한 젖 냄새로 변한다. 딸을 껴안을 팔에 힘을 준다. 토실토실 살 오른 아기가 품안으로 들어온다.

2
일곱을 낳았어도 이렇게 진통이 심하지는 않았다. 온 몸의 뼈들이 소리를 지르면서 부서지고 있었다. 아픔이 더해질 때부터 산모는 모두 제 죄 값으로 알았다. 버리려 했다가 어쩌지 못해서 배속에 안고 살아왔으니, 아기가 어머니 자궁 속에서 당한 배신을 모를 리 없을 것이다. 이제 그 앙갚음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하느님 제가 잘못했습니다. 진통이 더해질수록, 잘못했습니다. 부디 이 아기를 낳게 해 주신다면 제가 어느 자식보다 잘 키우겠습니다. 그렇게 발광하듯이 기도했다. 모진 아픔 중에서도 순간순간 그 아픔이 쉴 때가 있었는데, 그 때마다 산모는 알지도 못하는 신에게 간절히 기도했다.
그러다가 아픔에 못 이겨 잠시 의식을 잃었던가, 힘을 더 내라는 의사의 재촉에 내가 마흔여섯 해 동안 쌓아두었던 힘을 다 쏟았다. 순간, 아픔이 가시더니, 어디선가 닭울음소리처럼 가느다란 비명 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다시 두런거리는 소리를 들었다.
“딸이구나. 참 귀엽게 생겼구나. 참 너는 구사일생으로 살아났으니….”
친정어머니 목소리가 들리더니 차츰 눈앞으로 부연 공간이 트여갔다.
“정신이 드느냐? 딸이다. 넷씩 잘 되었다. 막내딸은 보배다. 이 서방이 좋아하겠구나.”
친정어머니는 목소리가 낭랑했다.
“우리 아기! 다, 다 있어요?”
산모는 확인하고 싶은 것이 있었다.
“건강한 아기예요.”
간호사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 옆에 남편이 서있었다.
“어디 봐요?”
산모는 상체를 일으키려 했다.
“가만히 누워 있으라.”
친정어머니가 아기를 싼 보자기를 풀어서 산모 앞으로 내밀었다. 산모는 아기를 받았다. 눈을 감고 발그스름하게 홍조 띈 볼이 실룩거렸다. 물속에서 튀어나온 듯이 젖은 머리가 얼굴 위에 몇 오라기 드리워졌고, 그 아래로 발그스름한 뺨 근육이 조금씩 움직였다. 이것이 생명이로구나. 산모는 아기의 얼굴에 눈물 한 방울을 떨어뜨렸다.
아기는 잠에 빠져있었다. 산모는 감겨있는 아기의 눈이 불안했다. 저 눈이 뜰까.
“어머님, 아기 발 좀 봐요.”
산모는 아기보자기를 친정어머니에게 맡기고는 아기 다리를 만져보았다. 연하디 연한 발에 손이 닿자 즉각 반응이 왔다. 어른 엄지손가락만 발이 옴지락거렸다. 발가락을 세여 보았다. 양쪽 두 다리에 각각 다섯 개씩이다. 아기의 손을 잡았다. 꼭 누르면 없어질 것 같은 연하디 연한 손이 산모의 손바닥 안으로 들어왔다.
“손가락은 다 있냐?”
친정어머니가 웃으면서 한마디 했다.
아기는 세상모르고 자고 있다. 눈을 감고 있는 아기의 얼굴색이 차츰 펴지는 것 같았다. 두 팔과 두 다리가 꼼작거렸다. 그 때마다 산모의 심장도 같이 뛰었다. 딸 셋 아들 넷을 낳았으나 이렇게 갓난아기를 눈여겨 들여다보기는 처음이다. 입술 언저리가 실룩이고, 발가락과 손가락도 이따금 미세하게 꼼틀거리는 것 같았다. 살아있는 생명의 울림이었다.
“모자란 것 없이 다 달렸다. 다리와 팔과 모가지와 눈이 멀쩡하고, 입과 코와 예쁘다.”
아기를 안은 외할머니가 산모에게 확인시키듯이 말했다.[PAGE BREAK]4
너는 한 달이 지나면서 젖살이 붙기 시작했다. 얼굴과 손과 다리에 포동포동 살이 오르더니 하루 다르게 얼굴 윤곽이 번듯해지더라. 한 번은 네 침대로 다가갔더니, 천정을 행해 바로 누워있던 네가 고개를 나에게로 돌리더구나. 사람 기척을 알고 목 가누기를 하는 것이었다. 엄마를 알아본다. 엄마는 가슴이 벅차더구나. 이제는 네가 미련한 엄마를 거부하지 않는구나. 그날부터 너는 바로 눕혀놓으면 되돌아 바로 눕기도 하고, 오른편으로 누웠다가 왼편으로 고개를 돌리기도 하고, 인기척이 나는 곳으로 눈동자를 굴리기도 했다. 손가락을 입에 넣어 빨기도 하고, 손을 허우적거리고 발을 바동거리기도 했다.
엄마는 안심했다. 고개를 돌릴 수도 눈동자도 자유롭게 굴리는구나. 나와 의사가 소통되는구나. 몸의 각 부위를 자유롭게 움직이는구나. 너는 젖을 빨면서도 주변에 눈을 돌리기 시작했고, 천정에 매달린 종이비행기를 바라보면서 눈동자를 굴렸다. 내가 나지막하게 네 이름을 부르면 너는 소리 나는 쪽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안아주면 좋아라고 벙긋 웃었다.
그런 네 모습을 대하니 안심되고 감격스러우면서 누구엔지 모르지만 감사했어. 우선 네가 고마웠다. 엄마의 그 모진 마음을 알아주고 풀어주는 네 웃음과 손놀림이 고마웠다. 그 때 내가 지금 내가 믿는 주님을 알았다면 그 분에게 감사했을 것이다. 그러나 너에 대한 내 마음을 네가 그 분에가 돌려드렸다고 생각되었다.
두 달이 지나면서 너는 하루 다르게 변했다. 침대에 눕혀두면 깨어 있을 때에는 한 순간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허공을 향해 손을 허우적거리고 발짓을 하면서 울기도 했다.
그런데 그날은 특별했다.
“미연아!”
내가 네 이름을 불렀다. 그 때 너는 벙긋 웃더니만 고개를 끄덕이는 것이었다.
“우리 아가 착한 아가”
이번에는 다른 말을 하면서 일부러 눈을 크게 떴다.
그 때 너는 엄마를 향해 벙긋 웃으면서 눈동자를 굴렸다.
순간 나는 네가 무슨 소리를 듣고 반응한다는 것을 알았다. 단순한 기척에 대한 반응이 아니라, 엄마의 소리를 듣고 대답한다는 알았다.
순간 나는 가슴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네 조개껍질 같은 귀가 엄마의 말을 듣는구나.
“미연아아아!”
엄마는 크게 소리질러 네 이름을 부르면서 고개를 몇 번이나 끄덕였다. 너는 한참 내 입놀림을 바라보더니 벙긋 웃었다. 내 말에 응답하는 네가 신기했다.
그런데 엄마는 더한 욕심을 갖게 되었다. 소리를 듣기는 하는데 정말 말할 수 있을까.

엄마는 하루에 몇 번씩 너를 안을 때마다 ‘착한 미연아!’하고 큰소리로 말했다. 네가 듣기는 하는 것 같은데, 정말 듣고 말할까. 그 날도 나는 낮잠에서 깨어난 네게 젖을 먹이면서,
“오호, 착한 미연아!”
고함처럼 소리를 질렀다. 그랬더니,
“응, 응” 네가 벙긋 웃으면서 옹알거리는 것이었다. 틀림없이 내 말에 대한 의사 표시였다. 그 순간 가슴을 누르던 큰 바위가 스르르 풀려나갔다.
엄마는 목이 매였다. 말을 하는구나. 네가 이 세상에서 처음 말했던 그것이 ‘응응’이었다. 그날부터 엄마는 너와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너는 항상 ‘응응’ 대답하더니, 어느 날부터 인가 ‘응아, 응아,’ 두 음절로 바꾸어졌다.
그 뒤부터 너는 몸놀림이 아주 자유로워지면서 적극적이었다. 고개를 뻣뻣하게 세워 좀더 멀리 보려고 했고, 젖을 다 먹고는 고개를 들어 나를 쳐다보기도 했다.

5
네 몸이 하루 다르게 커져갔다. 갓났을 때보다 거의 두 배는 되었을 것이다. 그 즈음 너는 이따금 울기도 했고, 혼자서 놀다가 사람이 다가가면 좋아서인지 ‘까르륵 까르륵’ 소리 내어 웃기도 했다. 젖을 먹다가는 젖에서 입을 떼고는 한 손으로 젖꼭지를 만지작거리는 것이었다. 너무나 신기했다. 다른 애들이 자랄 때도 그랬는지 기억이 없지만, 너는 엄마의 젖꼭지에서 젖이 나와서 먹는다는 것을 알고 있는 것 같았다. 엄마가 네가 만지는 젖꼭지에서 젖을 짜내면 그것을 혀로 핥아보고는 방긋이 웃었다. 그리고는 곧 젖을 다시 빨기 시작했다.
하루가 다르게 몸과 그 놀림이 달라졌다. 장난감을 주면 좋아라하면서 손에 쥔 채 흔들었다. 엄마가 장남감을 빼앗으면 손을 허우적거리면서 그것을 도로 달라고 울기도 했다. 텔레비전을 켜놓으면 그 쪽으로 고개를 돌려 유심히 바라보기도 했다.
어느 날 시골에서 외할머니가 올라오셨다.
“오오. 내 새끼 이렇게 컸구나!”
노인은 눈물을 글썽이면서 너를 안아 뺨에 입을 맞추는데, 네가 그만 ‘으앙’ 하고 울어버렸다. 외할머니는 멀쑥했다.
“이놈이 벌써 낯을 가리는구나!”
외할머니가 너를 방바닥에 내려놓았는데, 아니, 이게 어쩐 일이야? 네가 엎드린 채 두 다리와 두 팔로 방바닥을 쓸면서 내게로 기어오는 것이 아닌가.
“아니, 이 애가 기는구나! 기어?”
외할머니가 눈을 둥그렇게 뜨고 놀라면서 방안에 있는 사람들을 둘러보았다. 그런데 기어 다니는 것이 그렇게 쉽지는 않았다. 온 몸을 움직이다가 뒤로 나자빠지더니 ‘만세 자세’를 하더니 뭣이 마음대로 안 되는지 ‘아앙’하고 울어버렸다. 그러다가 다시 허우적거리더니 엎드린 자세가 되었다. 그런 자세로 손발을 마구 흔들기 시작했다.
“자, 어서 와라. 어서 와 와 와!”
엄마는 우는 아이를 달래지 않고 엎어져 허우적거리는데도 다가오기를 재촉하였다. 아기는 내 마음을 알아차렸는지 다시 기를 쓰고 기어보려고 했다.
“이젠 그만 해라. 됐어. 내일이나 모래쯤이면 온 방안을 기어다닐 것이다.”
외할머니는 아기의 기는 것이 기특했던지 얼른 아기를 안아서 내게 넘겼다. 나는 아기를 안고서 눈물과 콧물과 땀으로 뒤범벅이 된 아기 얼굴을 내려다보다가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사람의 얼굴을 알아봐서 낯가림을 하더니, 네가 기는구나. 팔과 다리가 온전하구나. 내가 그렇게 벽장에서 뛰어내리면서 너를 지우려 했는데도, 너는 끄떡 않고 이렇게 한 생명으로 태어나서 내 앞에서 시위를 하는구나.
엄마는 부끄럽고 감격하여 네 당찬 얼굴이 보이지 않았다.

아기는 사람이 나타나면 좋아라고 소리를 질렀고, 낯선 사람이면 낯가림을 했다. 젖을 먹다가도 장난감을 보면 얼른 젖을 버리고 기어가서 그것을 갖고 왔다. 온 방안에 아기 장난감으로 가득찼다. 우리 부부는 아기를 위해서 침대를 치웠다. 방에서 마음대로 놀도록 했다. 언니나 오빠가 쓰던 장난감들이 많은 데도 모두 새것으로 채워주었다. 아기는 잠을 자면서도 몸을 자주 뒤척였다. 반듯하게 눕혀놓았는데, 조금 있으면 엎드리기도 하고 마음 내키는 대로 몸을 움직였다.
그날 저녁 식사를 마친 다음에 식구들은 다시 이 막내의 재롱을 보려고 둘러앉았다. 할아버지와 할머니까지 우리 집으로 오셨을 때였다. 엄마 품에서 할머니에게로 기어가던 아기가 갑자기 멈추더니, 뒤돌아서 엄마의 눈치를 살폈다. 식구들이 아기를 중심으로 빙하니 둘러앉아 있었다. 아기가 뒤돌아 기려고 하다가 잠시 멈칫 하더니 오똑 일어나 앉았다. 몸이 기웃뚱거릴 때마다 아기는 손으로 방바닥을 짚으면서 중심을 잡았다.
“아니, 아기가 앉는구나? ”
아들 집에서 막내 손녀의 재롱을 받으려던 두 노인의 눈이 커졌다.
“제가 몇 달째냐?”
노인이 모르고 묻는 것이 아니었다. 손녀의 출생년월일시까지 정확하게 알고 있는 어른이었다.
“아직 여섯 달인데 홀로 앉아?”
아기는 앉은 채로 바로 위 오빠가 던져주는 인형을 들더니 그것을 안고서 상체를 뒤틀면서 제 엄마를 찾았다. 그런데 나는 할아버지를 향하고 앉아있는 미연의 바로 뒤에 앉아 있었다. 아기는 엄마를 찾지 못했는지, 앉은 채로 움직이더라. 식구들이 박수를 쳤다. 엄마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등뼈에도 이상이 없구나. 그 때 아기는 뭣이 좋은지 두 손을 마주부딪치면서 손뼉을 쳤다. 아! 손가락들도 이상이 없구나. 엄마에게는 감격이었다.
아기가 홀로 앉기를 시작해서 두 주일쯤 지나서였다. 아기가 입을 열고 ‘압’ ‘엄’하고 그 뒷 음절을 말하려고 애를 썼다. ‘응응’ ‘으앙, 응앙’에서 다른 음절을 배우고 있었다. 어느 날 엄마는 아침 식사 후에 아기 젖을 먹이다가,
“맘마 찌찌.”
그렇게 말하고서 오른손을 가로 흔들었다. 그만 먹으라는 신호였다. 그 동안 이 신호가 엄마와 아기 사이에 이루어졌던 약속이었다.
“맘마? 엄마!”
아기가 입에서 젖을 떼더니, 엄마 목소리대로 말하는 것이었다.
“뭐야? 엄마라고!”
나는 ‘맘마’라는 불명확한 음절이 ‘엄마’로 들렸던 것이다. 그래서 버럭 고함을 지르면서 아기를 꼭 껴안았다.
“엄마라고 했니! 내가 네 엄마야!”
나는 복받치는 울음을 어금니 사이로 씹으면서 같이 울었다.
그 날부터 아기의 입에서는 집안 식구들 호칭이 계속되었다. 엄마, 아빠, 언니, 오빠, 할버지. 할니…. 그러나 그 음절들은 나의 귀에만 들리는 특별한 단어였다.
[PAGE BREAK]6
며칠 머무시다가 노인네 두 분이 집으로 돌아가신 뒷날 저녁에 아기의 온 몸이 열로 끓기 시작했다. 재어보니 39도가 오르락내리락하고 있었다.
아빠와 밤새도록 아기를 간호했다. 찬 물수건으로 열을 잡았다. 열이 38도로 내렸고, 칭얼대던 아기는 힘이 진하여선지 신음소리만 내다가 눈을 붙였다.
뒷날 병원을 찾아서 소아병동에서 이틀을 살고 나왔다.
집으로 돌아와서 아기를 방바닥 한가운데 앉혀 놓았더니 어느 새에 자기 침대로 기어갔다. 아기는 침대 모서리를 붙잡고 일어서는 것이었다. 옷을 갈아입던 남편이 소리를 질렀다.
“미연아!”
아기는 소리를 들은 척도 않고 두 팔로 자기 침대로 올라가려 끙끙거렸다. 이틀간의 외출에서 돌아온 아기는 제 침대를 찾고서 반가웠던 것일까.
엄마는 얼른 아기 침대의 한쪽 문을 열어주었다. 이런 때를 예상했던지 아기 침대의 한편을 문으로 여닫을 수 있게 만들어놓았다. 아기는 엄마가 하고 있는 것을 눈치 채었는지, 침대를 놓고 방바닥에 앉았다가 다시 일어나 열려진 문으로 가 침대를 부여잡고 일어났다.
“미연아!”
엄마가 소리를 질렀다. 며칠 고열에 신음했던 아기에게 이런 힘이 어디서 솟아났던가.
아기는 방 구석구석을 기어 다니면서 손에 잡히는 것을 의지해서 혼자서 일어나려 했다. 누구도 만류하지 않았다. 엄마는 그 애 손을 붙들고 같이 세워 걸려보고 싶었으나 참았다. 혼자 그러다가 자기 침대를 붙잡고 쉽게 일어났다. 항상 침대 문을 열어놓았기 때문에 거기를 통해서 침대 위로 올라가려고 애를 썼다. 아기는 그 침대 안에 있는 장난감을 집어내기도 했다. 이따금 젖을 먹이다가 우유병을 침대 안에 놔뒀더니 그것을 들고 젖꼭지를 빨았다. 그러다가 엄마를 쳐다보았다. 엄마의 젖 맛을 그 우유병에서 맛보았다.

젖을 먹이는데 아기의 잇몸 감촉이 예전과 달랐다. 젖꼭지에 이상한 이물질이 끼어있는 듯했다. 혹시 아기가 다른 것을 입안에 넣고 젖을 빨고 있는가 해서 물렸던 젖을 빼었다. 아기가 울었다. 그 순간 아기의 연분홍 잇몸을 비비고 하얀 젖니가 눈을 트듯이 솟아나고 있었다.
“여보!”
엄나는 아빠를 불렀다. 퇴근해서 세수하던 아빠가 놀라서 나와서는 눈을 휘둥그렇게 떴다.
“미연이가 이가…이가…?”
물렸던 젖을 다시 빼고서 아기의 두 잇몸 사이에 앞 젖니를 보였다.
“아니, 이 애가 빠르긴 빠르구나!”
아빠 엄마는 서로 쳐다보면서 웃었다.
잇몸에서 하얀 이가 돋아나면서 아기는 젖을 먹는 태도도 달라졌다. 젖을 빨다가 이따금 젖꼭지를 슬며시 물어뜯기도 했다.
“아얏”
엄마가 소리를 지르면 아기는 입술을 젖에서 떼고서 엄마를 올려다보았다.
“엄마 젖을 깨물면 어떻게 해?”
엄마는 아기에게 웃으면서 말했다.
그러나 아기가 깨문 젖이 아파도 엄마는 즐거웠다.

7
미연이가 세상에 태어나서 11개월이 되는 날이었다. 달마다 태어난 날에는 생일을 차려주기로 작정했다. 그것으로 미연에게 대한 엄마의 마음이었다.
토요일이었다. 학교 갔던 미연의 누나와 오빠들이 돌아왔다. 아버지도 일찍 퇴근했다. 오늘은 미연이가 태어난 3월 23일이었다.
모두들 함께 저녁을 먹고서 이 늦둥이를 가운데 놓고 집안 식구들이 즐기고 있었다.
미연이는 식구들을 즐겁게 하기 위해서인지 얼른 침대 모서리를 붙잡고 일어섰다. 그리고서 침대를 붙잡고 중간에 있는 침대 출입구 쪽으로 걸어갔다.
“짚고서는 걷는구나.”
누군가가 신기한 듯이 중얼거렸다.
아기는 침대 문에서 잠시 머뭇거렸다. 침대 위로 올라갈 것인가, 말 것인가, 계산하고 있었다. 그 때였다.
“미연아! 이리 아빠에게.”
아빠가 퇴근길에 사온 나팔 장난감을 흔들어 보이면서 아기를 불렀다. 침대로 오르려던 아기가 고개를 젖히고서 소리나는 쪽을 바라보았다.
“미연아! 여기 와라.”
아빠는 장난감을 흔들어보였다. 나팔 장난감 끝에는 종이 달려있었다. 침대에 오르려던 아기가 소리 나는 쪽으로 몸을 돌렸다.
“미연아! 이리 와라!”
아빠가 파랗고 노란 색이 칠해진 장난감 나팔을 흔들었다. 거기에서 종소리가 났다. 아기는 잠시 사람들 시선을 살피더니, 휘청거리면서 아빠에게도 두어 걸음을 내딛었다.
“아기가 걷는다!”
누가 고함을 질렀다. 틀림없이 미연이는 걷고 있었다.
엄마는 두 뺨으로 흘러내리는 눈물을 닦을 생각도 않고 걷다가 주저앉은 아기를 보면서 울었다. 쓰러진 아기가 다시 일어나서는 계속 나팔 종을 흔들고 있는 아빠 쪽을 향해 걸음을 옮겨놓았다. 겨우 한 걸음을 걷고는 쓰러졌다. 그리고 다시 일어났다. 두 발자국 옮겨놓더니 주저앉았다. 그러나 누구도 아기를 거들어주지 않았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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