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를 만날까, 스테디셀러를 만날까

2010.01.01 09:00:00

일 년 중 가장 많은 공연들이 홍보 경쟁을 벌이는 연말, 연초 시즌이 돌아왔다. 우리들의 마음을 울고 웃게 만든 각종 사건, 사고도 많았던 2009년을 정리하고 새해를 희망차게 맞이하기 위해서 이번 주말에는 왠지 마음을 움직이는 연극 한 편을 골라보는 건 어떨까? 낯익은 TV 스타들이 출연하는 유명 연극에서부터 대학로에서 오랫동안 스테디셀러를 기록하며 터줏대감 역할을 하고 있는 알짜 소극장 연극까지 그 선택의 폭은 넓다. 첫눈처럼 마음을 설레게 하면서도 뜨끈한 아랫목처럼 잔잔한 감동을 주는 연극의 세계로 지금부터 떠나보자.

진중한 드라마와 스타의 조합
<가을소나타>


연극 <가을소나타>는 영화를 통해 인간의 내면세계를 탐구해온 스웨덴의 거장 잉마르 베리만의 동명의 1978년 영화를 각색한 작품이다. 유명한 피아니스트인 어머니 샬롯과 어머니의 보살핌을 받지 못했던 딸 에바가 7년 만에 재회한 뒤 빚어지는 갈등을 사실주의적 표현기법으로 그려내고 있다. 이 작품은 핵심은 어머니와 딸 간에 핑퐁게임처럼 길게 오가며 펼쳐지는 애증의 대화들이다. 우리가 살면서 한 번쯤은 겪어보았을 상황이기에 무대 위의 두 여인이 만들어내는 불꽃 튀는 긴장감은 객석을 때로는 차갑게 만들었다가도 어느덧 따뜻하게 이완시켜준다. 47년 동안 무대를 지켜온 연기파 배우 손숙이 엄마 샬롯 역을 맡았고, <시티홀>, <내 여자> 등의 작품에서 열연한 추상미가 딸 에바 역에 캐스팅됐다. 배우 박경근은 에바의 남편 빅토르 역으로, <피카소의 여인들>에서 뛰어난 연기로 주목받은 신예 이태린이 샬롯의 또 다른 딸 ‘엘레나’ 역을 맡아 작품을 탄탄하게 채운다.

대중 속으로 파고드는 <연극열전>


2004년 <연극열전>으로 17만 명의 관객을 모은 후 지난해 <연극열전 2>로 다시 27만 명의 관객을 기록한 연극열전은 명실상부한 대학로의 블록버스터이다. 이번에는 <연극열전 3>이라는 시리즈가 12월 1일 개막작 <에쿠우스>를 필두로 2011년 1월까지 14개월간 총 9편의 작품 라인업을 갖추고 관객들과 만난다. 연말, 연초 시즌을 책임지는 피터 쉐퍼의 원작 <에쿠우스>는 시대를 뛰어넘는 감동의 클래식 명작으로 배우 조재현이 연출가로 데뷔하는 작품이기도 하다.
정신과 의사인 마틴 다이사트는 말 여섯 마리의 눈을 찌른 소년 알런 스트랑의 치료를 부탁받는다. 알런이 병원을 찾은 날 밤부터, 끔찍한 악몽에 시달리던 다이사트는 알런의 분노와 두려움이 매일 밤 꾸는 악몽과 관계가 있다고 생각하고, 그에 대한 왠지 모를 의혹을 품는다. 한편 알런은 다이사트를 신뢰할수록 생존에 대한 본능적인 집착이 싹트면서 감출 수 없는 분노와 예민함으로 매번 그와의 대결을 펼치게 되는데 이를 통해 뒤틀린 인간 내면의 이야기가 드러난다. 출연자는 다이사트 역의 송승환/조재현, 알런 역의 정태우/류덕환을 비롯해 장신의 남성 조연 배우들이 반라로 말(馬)을 연기한다. 아마도 최근에 공연되는 작품들 중 가장 남성호르몬이 넘치는 작품이 될 것이다.
이 작품에 이어서 <연극열전 3>의 두 번째 작품 <엄마들의 수다>는 2009년 12월 18일부터 국내 초연된다. 이 작품에는 1978년 KBS 드라마 <봄비>로 데뷔, <달동네>의 똑순이로 기억되고 있는 배우 김민희가 함께한다. 이 작품은 실제 아이를 키우는 캐나다 주부 6명이 겪은 출산, 육아에 대한 리얼한 체험담을 한국적 상황에 맞게 극화한 작품으로, 김민희 이외에도 한국 연극계의 연기파 여배우 정재은, 김로사, 염혜란, 이선희 등이 출연한다. 뉴욕주립대를 졸업하고 오프브로드웨이에서 연출가로 활동, 동서양의 정서를 가장 조화롭게 표현할 김영순의 한국 데뷔 무대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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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테디셀러 <그대를 사랑합니다> Vs. <백설공주를 사랑한 난장이>

대한민국 최고의 웹툰 작가로 거듭난 강풀의 순정만화 세 번째 시리즈인 연극 <그대를 사랑합니다>는 지난 2008년 4월 초연된 후 그동안 많은 재공연을 거치며 스테디셀러로 자리매김해왔다. 새벽에 낡은 오토바이로 동네 사람 모두를 깨우며 우유배달을 다니는 괴팍한 할아버지 김만석. 이름도 없이 칠십 평생을 ‘송씨’로 불리며 살아온 ‘송이뿐’ 할머니. 이들은 아침마다 늘 마주치기만 하다가 어느 날 아침 우연히 대화를 나누게 된 뒤 서로를 걱정하는 사이가 된다. 매일 아침, 골목길 모퉁이 어딘가에서 불쑥 나타나 송씨에게 우유 한 통을 건네거나 산동네 비탈길을 내려가는 송씨의 리어카를 잡아 주는 만석과 만석이 써준 편지를 읽기 위해 글을 배우기 시작하는 송씨는 점점 서로 사랑에 빠지게 된다.

이 작품은 젊은 세대들의 이야기 일변도인 대학로에서 드물게 노부부의 진솔한 사랑을 보여줌으로써 나이가 들어도 순수한 사랑은 지속될 수 있다는 지상 최고의 로맨스를 소개한다.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공연을 보며 눈시울을 적시는 이 작품은 부모님 세대와 함께 즐길 수 있는 작품이다. <늙은 부부 이야기>의 연출을 맡은 바 있는 위성신의 노련하고 섬세한 연출과 더불어 연기자들의 생생한 연기, 나이의 많고 적음에 상관없이 모두의 공감을 얻을 수 있는 소재와 스토리도 흥행의 요인으로 꼽히고 있다.
마니아층 사이에서 ‘백사난’으로도 통하는 또 다른 스테디셀러 연극이 있으니 바로 9년째 장기흥행을 기록하고 있는 <백설공주를 사랑한 난장이>이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이 작품은 동화 ‘백설공주’ 이야기를 일곱 번째 난장이의 시점에서 재창작한 작품으로 말 못하는 난장이 ‘반달이’를 통해서 말없이 행하는 큰 사랑의 의미를 발견하고 짝사랑의 순수한 마음을 느낄 수 있는 점이 장기 공연을 가능하게 하는 요인이다. 말초적인 언어유희와 사생활 폭로로 도배된 요즘의 TV 오락 환경에 어느덧 익숙해진 우리들에게 이제 이러한 ‘잔잔한 감동’이 주는 재미의 강도가 다소 약하다고 느껴질지도 모르겠지만, 이 작품은 극장을 나서고 나서도 시간이 갈수록 마음 한 구석에 뭉클한 공감을 불러일으키게 해준다.

유쾌함을 선사하는 코믹 연극들


연초가 되면 늘 있는 친한 친구들과의 모임이나 직장 동료들과의 건전한 회식 프로그램으로 함께 즐겁게 관람할 수 있는 코믹 연극들도 빼놓을 수 없다. <룸넘버13>은 여당 국회의원과 야당 총재비서의 스캔들에서 빚어진 에피소드를 유쾌하게 그린 코미디극으로, 정치인이 등장하는 심각한 주제를 유머러스하게 해석해 영국 ‘로렌스올리비에 베스트 코미디상’을 수상했을 만큼 이미 연극계에서는 흥행작으로 꼽힌다.
또한 <코믹쇼 로미오 & 줄리엣>은 국내 최초로 시도된 관객맞춤형 연극으로 매회 관객의 선택에 의해 주인공 로미오와 줄리엣이 결정되며, 관객들이 도중에 주인공도 바꿀 수 있어 색다른 재미를 선사한다. 각각 네 가지 버전으로 준비된 로미오와 줄리엣을 관객들이 그 자리에서 투표로 선택해 총 16개 조합 중 하나가 공연되는데, 로미오는 웨이터, 모델, 짐승남, 점쟁이로 구분되며 줄리엣 역시 호박씨, 킬러, 치어리더, 시골로 구분된다.
연극 <그남자 그여자>는 MBC FM <이소라의 음악도시>의 아름다운 101가지 사랑이야기로 인기를 모았고, 각각 다른 테마의 도서 3편으로 출판돼 150만 명의 독자에게 감동을 전해준 데 이어 연극으로 각색되었다. 처음 사랑을 시작한 기억부터 이별까지의 과정을 그려 연인들 사이에서 공감대가 높은 편이다. 현재 대학로와 강남에서 동시에 공연 중이다.
1999년 연우무대 초연 당시 유쾌한 만화적 상상력으로 캐릭터로 많은 사랑을 받은 <락희맨쇼>도 작가 고선웅의 연출로 다시 돌아온다. 처음부터 끝까지 웃음이 멈추지 않는 천방지축 코미디라는 평가를 받으며 관객의 뜨거운 사랑을 받았던 이 작품은 올해로 10주년을 맞이하는 장수 코미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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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동에서 보는 <베니스의 상인>


연극에서 셰익스피어를 빼놓을 수는 없다. 그가 남긴 수많은 희곡이 있지만, 그중 사랑의 운명을 가르는 단 한 번의 ‘함 고르기’와 살 1파운드를 빼앗기 위해 벌이는 희대의 재판이 어우러진 치밀한 상황극 <베니스의 상인>은 지성과 감성이 결합된 낭만희극의 수작이다.
배경은 베니스, 밧사니오는 포샤에게 청혼하기 위해 떠날 여비를 안토니오에게 부탁하고, 전 재산이 바다에 나가 있는 안토니오는 기꺼이 유태인 샤일록에게 돈을 빌리기로 한다. 샤일록은 기한 내 돈을 갚지 못하면 살 1파운드를 떼어내는 조항을 제시하고 계약은 성립된다. 한편 부와 지성을 겸비한 포샤는 아버지의 유지를 따라 남편감을 찾기 위해 벨먼트에서 ‘함 고르기’라는 관문을 내걸었다. 밧사니오는 포샤의 초상화가 들어 있는 함을 고르는 데 성공하고, 포샤와의 사랑을 확인한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 안토니오의 배들이 난파를 당해 빚을 못 갚아 위기에 처해있다는 소식이 전해진다. 재판장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샤일록은 빚을 못 갚은 안토니오에게 살 1파운드를 요구하며 진퇴양난의 길로 접어든다.
캐스팅은 호화롭다. 포샤는 중견 연극인 윤석화와 김소희가 나눠맡게 되며, 파렴치한 악인 샤일록은 노배우 오현경이, 선함과 동시에 자신의 신념에 대한 확신으로 가득찬 안토니오는 정호빈이 맡았다. 특히 이번 프러덕션은 원작의 사랑과 종교, 더 나아가 인종에 대한 세대 간의 갈등에 연희단거리패 연출가인 이윤택의 시각이 가미되어 새로운 음악극의 형태로 소개될 예정이라 더욱 귀추가 주목된다. 공연이 열리는 곳 역시 오랜 복원공사를 마치고 올해 재개관한 명동예술극장이어서 도심을 나들이하면서 함께 들를 수 있어 추운 겨울에도 화사하고 가벼운 나들이를 가능하게 해줄 것이다.

그 외의 기대작으로는 일본작가 나카타니 마유미의 원작을 각색한 <뷰티풀 선데이> 의 재공연을 꼽을 수 있다. 이번 공연에서는 패션모델로 잘 알려진 김영광이 20대 초 • 중반의 미대 대학생으로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자신이 떠나야 한다고 생각하는 게이청년 준석 역을 맡았다. 김영광의 큰 키와 미소년 같은 외모는 여심을 자극할 것으로 기대된다.
조용신 공연 전문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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