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에 대한 반란

2011.02.01 09:00:00

기억은 인간의 존재를 지탱하지만, 때로는 그것이 너무 힘들어서 지워야 할 때도 있다. 그래서 기억하고 싶은 것과 기억에서 지우고 싶은 것 사이에서 소요하는 것이 우리들 삶이다.

서울 시내의 몇몇 군데 동네 명칭이 바뀌었다. 봉천동이 행운동이 되고, 신림동 일부는 신사동이 되었다. 기존의 봉천동과 신림동 내의 하위 구역들도 더러는 부분적으로 조정을 하고 그 위에 새로운 동명들을 붙였다. 이때까지 봉천동이나 신림동의 공간을 흐트러지지 않는 안정된 기억으로 보존하고 있던 사람들은 도무지 어디가 어딘지 잘 모르겠다고 고통을 호소한다. 혼란과 불편이 아주 없기는 어려울 것 같다. 봉천동이나 신림동 쪽에 우편물이나 택배를 보내야 될 사람들은 주소를 어떻게 적어야 되는지 모르겠다고 번번이 투덜거린다. 헛갈리는 일이 한 둘이 아니다. 안정된 기억의 체계에 대한 반란이 일어나는 것이다.

그런데 정말로 손해를 보는 사람은 따로 있다. 이렇게 동네 이름이 바뀌면서 기억마저도 자신이 뿌리를 내려야 할 근거 주소를 잃어버리는 경우이다. 예컨대 봉천동과 신림동에서 자라면서 다양한 성장의 기억을 가졌던 사람들(그러면서도 지금은 이곳을 멀리 떠나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그 구체적인 기억들이 이제 더 이상 반듯하게 조회되기 어렵다.

동네 이름이 바뀌어 조정되고, 그에 따라 길이나 학교, 시장, 공원, 언덕마루 등의 이름도 언젠가 조금씩 달라지면, 그들이 옛날 이곳에서 자라면서 가졌던 추억들도 고난을 겪는다. 바뀐 현실에 맞추어서 바로바로 떠올려지지 않기 때문이다. 그만큼 그 기억은 지금 그곳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과 공유하기 어려워진다. “야! 우리가 초등학교 때 귀신놀이 했던 그 신림동 절터 생각나?”, “그게 신림동이 아니라니까.” 뭐 이런 대화가 오감직하다. 그러고 보면 이름은 기억을 보존하는 창고의 열쇠와도 같은 것이다. 이름이 바뀐다는 것은 기억으로 가는 통로가 바뀐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름이 바뀌면 기억은 반란에 직면한다.

정부 부처 이름 바꾸기도 마찬가지이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중앙부처의 이름들이 바뀐다. 없어져서 다른 부처로 합병되는 정부부처의 이름도 있다. 얼마나 절박한 사정이 있어서 그리 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마도 그 부작용 또한 만만치 않으리라 생각된다. 국민을 대상으로 바뀐 부처명의 역할 정체성에 대한 이해 정도를 묻는 설문을 한다면 헛갈린 인식을 가진 국민도 상당하리라. 이 또한 기억에 대한 반란을 나타내는 것이리라.

나는 한글 맞춤법 규칙에 대해서 여러 번 기억의 반란을 경험했다. 한 번 바뀌고, 바뀐 것이 또 바뀌고, 바뀐 것이 그 이전의 것과 다시 같아지는 현상 등을 경험하다 보면, 내가 지금 현재 알고 있는 맞춤법 규칙은 아주 불안정해진다. 제대로 기억한다고도 할 수 없고, 기억 못하는 것도 아니고, 그런 어정쩡한 상태이다. 마치 쿠데타 정변이 많은 아프리카나 중남미 후진국의 정권 정체를 늘 모르고 지내게 되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이전 기억을 심하게 흔들어 놓는 것들은 기억에 대한 반란이다. 이 반란이 심해지면 사람들의 추억은 흔들린다. 순정하지 못한, 덧칠된 추억을 만들어 갈 수밖에 없다. 반란의 위세가 강하면 강할수록 기억은 차분히 안착하지 못하고 떠돌아다니게 된다. 오히려 본래의 순정한 기억보다는 반란 자체의 기억이 주인 자리를 차지한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어머니는 오래 슬픔에 젖어 계셨다. 옛날 세대이시지만 평생을 부부 중심의 핵가족 체제로 살아 오셨기 때문에 오랜 짝을 잃으신 슬픔이 짙었다. 어머니는 아버지에 대한 기억을 떠올릴 때마다 눈물 바람을 일으키셨다. 추도의 자리는 말할 것도 없고 일상의 자리에서도 아버지와 관련된 이야기 자락만 비치어도 눈물을 보이셨다. 나는 어머니의 순정한 기억에 경의를 표하고 어머니 마음의 진정은 이해하면서도, 어머니가 슬픔에 갇혀 계신 것에서는 구출해드려야 한다고 생각했다.


나는 그럴 때 아버지에 대한 기억을 감퇴시키는 쪽으로 어머니를 이끌었다. 우선 어머니 이야기에 아무런 감정을 나타내지 않았다. 어머니 이야기가 아버지 쪽으로 더 연장되는 것을 막기 위해 화제를 딴 방향으로 돌렸다. 심지어는 내가 아버지를 추모하고 싶은 정서에 들어 있을 때라도 어머니 앞에서는 그 추모의 뜻을 드러내지 않게 되었다. 나로 인해 어머니의 슬픔이 되살아 날 것을 염려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어머니를 슬픔에서 구하기 위해서 내가 하고 있는 노력이란 것이 아버지에 대한 기억을 다른 기억으로 제압하거나 대체하는 일인 셈이었다. 그렇다. 슬픔을 이기는 길은 기억을 제압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나는 어머니의 아버지에 대한 기억에 어떤 반란이 일어나기를 기대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나에게도 이렇게 하는 것이 정당한 것인가 하는 반성이 들었다. 슬픔도 그 나름의 가치를 가지는 것인데, 슬픔을 막기 위해 어떤 특정의 기억을 제압하거나 특정의 기억을 퇴출시키려 하는 것은 정당한가. 이것이 도리어 감정의 자연스러운 작용과 섭리를 가로막는 억지스러운 것은 아닐까. 어머니는 아버지 이야기에 동조하는 감정을 보이지 않는 나를 불효하고 정 없는 녀석이라 속으로 나무라지는 않았을까.

기억을 몰아내는 것은 이름을 몰아내는 것에서 시작하여 어떤 특정의 이야기를 몰아내는 것으로 완료된다. 그러므로 기억은 ‘사실’로서 존재하는 것이라기보다는 어떤 ‘이야기’로서 존재한다. 기억의 소멸은 어떤 이야기 하나를 잃어버리는 것을 의미한다. 봉천동에서 행운동으로 이름이 바뀌는 순간 이전의 봉천동이 지니고 있던 이야기들도 알게 모르게 하나씩 사라져 갈 것이다. 지금 당장 사라지는 것은 아니라 해도 언젠가는 그렇게 될 것이다. 기억에 대한 반란은 이름에 대한 반란으로 시작되는 것이다.

교과서를 통해 우리 모두에게 널리 알려진 피천득 선생의 <인연>이란 수필이 있다. 제목 그대로 피천득이 ‘아사코’란 인물과 맺어 온 인연을 소재로 한 글이다. 작가가 열일곱 살 되던 해 일본에서 함께 지냈던 초등학교 1학년 꼬마 소녀 아사코의 이야기로 이 글은 시작된다. 첫 번째 만남인 것이다. 그리고 결혼하여 어른이 된 아사코를 만나기까지 모두 세 번의 만남을 이야기한다. 우리가 이 수필에서 강렬하게 기억하는 것은 끝대목이다.

“세 번째는 아니 만났어야 좋았을 것이다.” 사람들은 이 대목에서 그윽한 듯 쓸쓸한 듯 인생의 여운을 음미한다. 또 아름답고 소중한 기억들이 인생의 향훈으로 남을 수 있음에 감사한다. 한편으로는 한결같지 아니한 인간 존재의 본원에 대해서 허전하고 아쉬운 심회에 사로잡히기도 한다. 그리고 그것 때문에 속절없이 와 닿는 막막한 그리움의 강 저편으로 우리들 삶이 흘러가는 것을 느낀다.

그러나 피천득의 ‘인연’ 이야기야말로 전형적인 기억의 반란을 말하고 있다. 작가의 가슴에 아름답고 반듯하게 자리 잡고 있던 소녀 아사코의 기억은 어디론가 내몰리고 점령당한다. 그것이 세 번째 만남의 장면이다. 기억의 반란을 겪으면서 그는 옛 기억을 보듬는다. ‘세 번째는 아니 만났어야 좋았을 것이다’는 것이 바로 그 보듬음이다. 나이 들어간다는 것은 기억들의 반란을 겪어낸다는 것이다. 그 반란이란 또 무엇이겠는가. 아픔이기도 하겠지만 살아가는 지평 하나를 처음으로 보는 것일 수도 있다. 기억의 반란을 탓하기만 할 수는 없다.

<인연>의 경우와는 다르지만 기억의 반란이 광풍처럼 휘몰아 가는 시대에 살고 있다는 느낌도 든다. 현대 사회는 기억의 반란이 불가피하다. 현대인들은 기억의 반란을 다반사로 경험하고 산다. 추억이 더 이상 순정하기도 어렵다. 추억을 오래 공유하고 지내기도 어렵게 되었다. 바뀌는 이름은 그래도 괜찮다. 새로 탄생하는 이름들은 오죽 많은가. 그것은 대부분 외국어로 상륙해 온다. 대중문화는 이 새로운 이름과 새로운 기억들을 소모품처럼 소진시키며 사람들의 순간적 욕망을 소통시키거나 소외를 자꾸 확산시켜 간다.

인간은 기억하기 때문에 존재한다. 그런가 하면 기억하기 위해서 존재하는 측면도 있다. 잊지 말아야 할 것들이 있다는 것 때문에 인생은 의미 있다. 그와는 좀 다른 차원이기는 하지만 잊을 수 없는 것들이 있다는 것도 우리의 사는 의미를 보탠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기억하기조차 싫은 일들을 만들면서 살아가는 것이 인생이기도 하다. 기억을 퇴출시키고 싶은 경우도 있다. 기억하고 싶은 것과 기억에서 지우고 싶은 것 사이에서 소요하는 것이 우리들 삶이다.

‘기억 없는 세상’을 상정해 볼 수 있겠는가. 우리들의 관계는 어디에서도 맺어지지 못하리라. 설사 간신히 맺어졌다 하더라도 맥없이 해체되고 말 것이다. 그 반대쪽의 ‘망각 없는 세상’을 상정해 볼 수 있겠는가. 우리는 어떤 관계로부터도 빠져나올 수 없으리라. 내 내면의 어떤 억압적 고통 속에서도 해방되기 어려우리라. 물론 이 극단의 상황 중 하나가 현실이 되기는 어렵다. 우리는 그저 이 극단 사이의 스펙트럼 그 어느 지점에서 살고 있을 뿐이다. 어느 쪽으로 조금 더 옮겨 가고 싶은가.
박인기 경인교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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