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산 쇠머리대기를 찾아

2011.10.01 09:00:00

 

영산면에는 영산 지방에서 생겨나 영산 지방에서만 전승되는 독특한 놀이가 있는데 그것이 영산 쇠머리대기이다.
이 놀이는 목우전(木牛戰), 나무쇠싸움, 목우붙인다, 쇠머리 댄다 등으로 불리었다. 유래에 대한 정확한 기록은 남아 있지 않으나 영산읍을 사이에 두고 영취산과 함박산이 두 마리 소가 마주보고 겨루는 형상이어서 이 두 산의 나쁜 기운을 풀어 고을의 불행을 막고 풍년을 기원하는 의미에서 시작됐다고 한다.
나무쇠의 구조는 몸체와 머리 부분으로 이루어지며 매우 간단하고 소박하다. 머리 부분은 길이 약 10m 남짓한 통나무 세 개를 세워 위를 하나로 묶고 아래 발은 넓게 펴 큰 통나무에 엮어 맨다.
세 나무를 한데 묶어 놓은 부분에 쇠머리 모형을 깎아 세우거나 가면을 만들어 세워 쇠머리대기 또는 나무쇠싸움이란 명칭이 생긴 것이다.
몸체 부분은 머리 부분이 넘어지지 않도록 뒤에서 통나무로 떠받친다. 세운 나무 중간 두 곳에 나무를 가로 대고 엮어 튼튼하게 하고 또 사람이 잡고 사다리처럼 오르내릴 수 있게 한다.
나무쇠 밑바닥에는 통나무를 가로, 세로 6개씩 대고 새끼줄로 엮어 땅에 놓아도 안정되고 싸울 때에는 메기 좋도록 한다.
전면의 새끼줄을 감은 큰 통나무 부분은 자동차 전면의 범퍼 같은 역할을 해서 나무쇠끼리 정면으로 부딪칠 때 충격을 덜어 준다.
영산 쇠머리대기는 본격적인 싸움에 앞서 중학생들로 구성된 작은 쇠머리대기를 먼저 벌이는 데 이는 청소년들에게 자연스레 문화를 전승시켜 주고 지역 문화에 대한 자긍심을 고취하는 큰 역할을 하고 있다.
쇠머리대기는 두 패로 갈라지는 데 거주지별로 동서로 나누게 된다. 양군에는 저마다 대장, 중장, 소장 세 사람이 올라타고 지휘를 하는데 이 장군들은 읍민들의 의견에 따라 신망 있는 사람들이 선출되었으며 복장은 조선시대 군복 차림을 하고 칼을 사용해 지휘한다.
나무쇠 앞에는 양군을 상징하는 서낭대와 총사령기, 대장기, 중장기, 소장기, 오방장군기, 농기, 영기 등 수십 개의 깃발이 하늘을 뒤덮는다. 이 깃발들을 농악대의 가락에 맞추어 흔들어 대고 본격적인 싸움에 앞서 양군이 서낭대와 기들을 대면서 기운을 북돋우고 상대편의 기를 꺾으려 함성을 지른다.
쇠머리대기의 전법 자체는 단조롭다고 할 만큼 간단하고 소박하다.
청 · 장년들이 어깨에 멘 나무쇠를 어르고 다니다가 세차게 맞부딪쳐서 상대방의 나무쇠를 조금이라도 자기편 아래쪽에 깔거나 밖으로 밀어내어 상대편 쇠머리를 덮쳐 짓눌러 땅에 닿게 하면 이기는 것이다.
이 놀이는 그해 농사의 풍흉을 점쳐보는 농경 의례놀이로 이긴 마을에 풍년이 든다는 속신이 있기 때문에 격렬한 놀이판이 된다.
승부가 결판이 나면 이긴 팀의 장군들은 소를 타고 칼춤을 추면서 승리의 기쁨을 만끽한다.
영산 쇠머리대기는 1969년 중요무형문화재 제25호로 지정받았으며, 매년 3월 1일에 벌이는 영산 고을의 큰 향토 축제이다.
백만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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